내 삶의 주인 되기

기다려주세요, 엄마를 이해할 때까지

오래전 이혼한 엄마 “대학 1년 딸이 이웃집 아줌마 대하듯 해 속상해요”

등록 : 2016-10-06 14:42
 
Q. 오래전에 이혼하고 자녀와 단절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고3이던 지난해부터 연락했습니다. 딸은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어떤 표현도 하지 않습니다. 옆집 아줌마 대하듯 합니다. 올해 대학생이 됐구요. 절대 연락을 먼저 안 하구요. 제가 문자를 보내면 ‘응’ ‘아니’로만 답합니다. 전화하면 잘 안 받구요. 통화되면 정말 귀찮다는 듯 전화를 받아 화가 나게 합니다. 먼저 연락할 때는 돈 달라고 할 때입니다. 걱정과 관심을 표현하면 애가 귀찮아합니다. 저도 같이 모른 척해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 관심을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제가 무슨 자격이 있느냐고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런 맘이 있는 것 같구요. 관계 개선을 위해 뭔가 해야 할 것은 같은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답답한 마음에 두서없이 상담 부탁드립니다. 마리

A. 시대가 달라져서 요즘 부부들은 이혼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이혼에도 치러야 할 대가가 많으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쓰디쓴 대가라면 아이들 문제일 것입니다. 아이들을 혼자서 맡자니 경제적인 어려움과 양육이 막막하고, 떠나보내자니 안타깝고 그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부모 관점의 고통일 뿐입니다. 이혼 당사자인 부모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큰 충격과 고통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부모님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혼을 그린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부모가 슬픔과 분노로 쩔쩔매는 동안 아이들은 제 아픔을 끌어안고 숨죽인 채 이 과정을 겪어냅니다. 부모가 저렇게 힘든데 내 아픔까지 말할 수 없어, 그들이 헤어지는 건 내 잘못인지도 몰라, 와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그 나이의 사고방식으로 해석하고 또 상처 입습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고통이 적은 것도 아닙니다.


복잡한 감정 정리까지는 시간이 필요

마리 님, 딸아이가 내 마음 같지 않아 속상하셨나요? 아마 따님은 엄마가 낯설고 어색할 겁니다. 어색해서 긴장되고, 그러다보니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그건 엄마를 아직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일 수 있습니다. 마리 님은, 아이가 자신에 대해 ‘엄마로서 무슨 자격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셨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이혼의 사유가 무엇이었든 아이는 떠나간 부모를 원망한다고 하지요. 아마 지금도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을 겁니다. 엄마에 대한 불신이 사라질 때까지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하겠지요. 그런 심정일 때는 엄마가 친밀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최대한 숨기려고 입을 다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감정이 너무 복잡해서 어떤 표현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오래전 이혼하셨다고 했는데, 그동안 아이가 엄마를 그리며 했던 생각과 감정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원망과 죄의식, 그리움과 미움 등 온갖 상반되는 감정이 얽혀 아직 정리가 안 되는 상태일 겁니다.

그럴 나이입니다. 지금 따님은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들어섰습니다. 그때는 생각과 감정이 아주 다양해지고 복잡해지지요. 자신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모두 고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상반된 생각들을 조화롭게 통합시키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겁니다.

그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엄마도 이해하게 될 때 말이지요. 이를테면 이혼 여성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다든지, 결혼하거나 아이 엄마가 되어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볼 날이 올 겁니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서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마리 님도 엄마로서 준비하시면서요.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과 그 대처 방안을 다루는 책들이 시중에 꽤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꼭 읽어보세요.

이혼 후 몇 년간 따님과 관계가 단절됐던 만큼 당신이 엄마로서 미숙한 상태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셔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함께 성장합니다. 아이 때문에 웃고, 아이 때문에 속을 끓이면서 그 시기 아이에 대해,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해 이해해가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그 아이의 변화에 맞춰 소통 방법을 지속해서 발달시켜야 했는데, 마리 님의 경우는 그 시기를 놓치신 겁니다.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어야

미안한 마음에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도 문제지만 원격으로 잔소리를 하시면 아이와 소통할 가능성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걱정과 관심을 보인다고 하셨는데, 걱정은 잔소리처럼 들릴 겁니다. 그보다는 그냥 허용적인 태도로, 이해하기 위해 지켜봐주세요.

어쩌면 딸과 관계에서 가장 먼저 하셔야 할 것은, 부모로서 뼈아픈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아이를 만나지 못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겠지만, 어찌 됐든 아이들이 겪는 부모 단절의 고통은 온전히 부모들의 책임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네가 정말 힘들 때, 고민이 있을 때 엄마에게 와라. 언제고 기다릴게. 너를 만날 생각을 하며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는 못 기다리겠니, 라고요. 아이가 응답하기를 기대하지 마시고, 아이의 무반응에 지치지 마시고 가끔 안부 인사를 전해주세요. 한번 시작하시면 아주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아이에게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지금은 따님에게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복잡한 심경을, 공격 대상을 잃어버린 분노를 해소할 시간을 딸에게 허용해주세요. 그리고 마리 님은 지근거리에 서서, 말없이 그리고 흔들림 없는 태도로 딸아이의 그 시간을 지켜봐주세요.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로 사연을 보내 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박미라 심리상담가·<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