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문화재단은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8월에 출범했지만 주민의 필요를 미뤄둘 수 없기에 출범 당시부터 직접 찾아가는 문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경애 중랑문화재단 대표이사. 중랑구청을 포함해 다섯 개의 구청 등에서 40여년간 공직생활을 한 행정전문가이다.
코로나 시기인 2020년 8월 출범했지만
“주민·예술인 목마름에 즉각 응답” 위해
‘직접 찾아가는 문화 서비스’ 적극 시작
‘생애주기별’ 프로그램 구축에도 힘쏟아
일대일 진행 치유 프로그램 ‘명랑 중랑’에
할머니, ‘눈물 글썽’이며 “평생 첫 경험”
역사·지리 특성 활용한 프로그램 다양
‘취학 전 천 권 읽기’, 국무총리상 수상
중랑문화재단은 서울시 자치구 문화재단 중 가장 젊다. 그렇기에 주민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이나 공간이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8월에 출범해 적극적으로 역량을 펼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주민의 필요를 미뤄둘 수 없기에, 직접 찾아가는 문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문화 여가 환경에 대한 주민과 지역 예술인의 목마름에 즉각 응답하는 것이 올바른 재단의 사업 방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랑의 대표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예술테이블 ‘명랑 중랑’은 지역아동센터, 요양원, 노인복지관, 장애인 시설 등 중랑구 내 곳곳을 직접 찾아가는 문화예술 사업이다. 주민과 예술가가 만나는 예술테이블에서는 자수, 노끈공예, 펠트, 그리기, 게임, 이야기 등 다양한 예술과 놀이 활동이 진행된다. 일대일로 진행되기에 참가자는 평소 드러내지 못했던 아픔이나 소망을 해소할 수 있다.
커다란 성과보다는 개인의 만족에 주목하며 시작한 사업이지만, 지난 1년간 참여한 구민만 해도 벌써 800여 명이다. 이 중에는 팔십 평생 이런 활동은 처음 접해보았노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할머니, 가슴속이 뻥 뚫려 시원했다는 어린이 등 위로와 소통을 경험한 참여자가 가득하다.
재단 출범 때부터 재단을 이끄는 유경애 초대 대표이사는 “각 연령, 세대마다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중랑이 되고자 한다”며 “모두가 함께하는, 모두가 연결되는, 모두가 흥겨운, 모두를 위한 중랑문화재단”의 비전을 설명했다. 재단은 지역예술가와 구민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소통의 장을 만들어 문화 소외 구민에게 정서적 안정과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중랑구청을 포함해 다섯 개의 구청·상수도사업본부 등에서 40여년간 공직생활을 한 행정전문가이다. 새로 시작하는 조직을 맡은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후발주자로서 어떻게 차별성을 가질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 때문일까? 중랑문화재단에는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서울장미축제’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장미터널을 중심으로 해마다 5월 중랑천변에서 다채로운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이곳에 장미를 처음 심은 것은 지역의 안타까운 사정과 관련이 있다. 장마와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중랑천이 범람하고 뚝변이 허물어지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덩굴장미를 심어 토사가 내려오는 것을 막자’는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가 5.15㎞의 장미터널로 발전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예쁜 축제’라 손꼽히지만, 유 대표는 “어찌 보면 구민들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용마폭포문화예술축제’도 마찬가지다. 용마산 중턱의 용마폭포는 돌을 캐던 채석장을 인공폭포로 개조한 것이다. 살풍경이던 장소가 동양 최대 규모 인공폭포로 변모한 이후 연못까지 설치해 폭포공원이 조성됐다. 주민들이 모이기 좋은 넓은 공간이라 문화 체험과 축제의 공간으로 활용됐다. 지난 10월8·9일 이틀간의 축제에서는 중랑재능콩쿠르, 어린이 나눔 페스티벌, 버스킹 공연과 프리마켓, 중소기업 우수상품전, 중랑문인협회 시화전 등이 용마폭포를 배경으로 진행됐다.
봉화산 자락의 ‘옹기테마공원’은 40년 넘게 폭약과 불꽃류를 저장했던 화약고가 재탄생한 곳이다. 구민들이 지속하여 화약고 이전을 요청한 결과다. 1990년대 초까지 옹기점과 옹기가마가 남아 있던 점에 착안해 지어진 ‘옹기테마체험관’에선 옹기 체험과 목공예, 한지공예, 가죽공예 등의 교육이 높은 인기를 얻으며 진행되고 있다.
‘문화엔(N)중랑’의 ‘망우열전’에서는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영면한 문화예술인의 작품과 이야기를 발굴해 공연화했다. 2021년부터 방정환 선생의 단편소설 ‘만년샤쓰’를 각색한 낭독공연부터, 시인 박인환 편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영화감독 노필 편 ‘붉은 장미의 추억’, 화가 이중섭 편 ‘이중섭의 편지’, 소설가 김말봉 편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등이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앞으로도 새로운 공연을 지속해서 준비 중이다.
중랑구는 주거지역으로 어린이 참여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지역 내 어린이가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관이 매우 한정적이기에 중랑아트센터와 옹기테마체험관에서 진행하는 전시·교육프로그램 수요가 높다. 더불어 ‘이중섭 어린이 미술대회’ ‘중랑사랑 동요사랑’ ‘2022 용마폭포문화예술축제’ 어린이 나눔 페스티벌에서의 ‘어린이 나눔기획단’ 등 다양한 어린이 대상 참여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취학 전 천 권 읽기’ 사업을 주도한 중랑숲어린이도서관은 ‘2022년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에서 대한민국 ‘국무총리상’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취학 전 천 권 읽기’ 사업은 전국 9개 지역에서 벤치마킹해 운영 중이다.
취학 전에 천 권이면 너무 양적인 부담이 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유 대표는 “태교로 배 속에서 아이와 함께 읽는 것도, 그림만 있는 책도, 장난감처럼 만지는 책도 모두 포함하기에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며 “책을 언제나 놀이처럼 가지고 놀며 만족감을 갖게끔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중랑구립도서관 취학 전 천 권 읽기 & 초등 천 권 읽기 하루독서.
이제 막 3년 차를 시작하는 재단은 다음 스텝으로 ‘생애주기별’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한 문화 공간 확보에 힘쓰고 있다. 중랑아트센터에 서울 동북권 최초로 실감미디어 상설관을 조성한 것은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 실감미디어는 현실 세계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 3D 입체 영상, 가상현실 등을 활용한 전시 형태다.
마침 인터뷰 당일에 실감미디어 ‘계절산책’ 전시 준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중랑의 사계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중랑의 대표 장소를 배경으로 계절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객에게 몰입형 영상으로 펼쳐진다. 전시실에서 참가자가 이동하면 상징물이 따라오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계절 산책’은 11월9일부터 2023년 9월1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면목동에 조성 중인 행정복합타운이 완공되면, 청소년과 청년들이 끼 있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등을 다채롭게 구성하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유 대표는 “남은 임기 동안 조직 운영과 기존 사업을 안정화하고 거창한 성과를 이루기보다 현시대와 요구에 맞게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업을 진행하고자 한다”는 다짐을 밝혔다.
유진아 객원기자 jina6382@naver.com
사진 중랑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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