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수유동 수유현대빌라는 66가구가 사는 35년 된 공동주택단지다. 소규모로 주민이 자조회를 꾸려 직접 관리해왔다. 매달 주민회의에서 관리비를 정하고 관리 방안 등을 의논한다. 2018년부터는 젊은층 가구들이 자조회 임원으로 참여하며 마을밥상, 놀이터 잔치 등 공동체 활동이 활발해졌다. 2020년에는 주민 자치모임 ‘뜰과사람들’이 만들어져 정원을 직접 가꾸고 있다. 2020년 5월 주민 울력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한산 자락 35년 된 공동주택 단지
66가구 거주, 주민 70% 60대 이상
자조회가 직접 관리, 주민회서 결정
2018년부터 젊은층 운영진에 참여
마을밥상 등 공동체 활동 펼쳐오며
정원 가꾸기도 나서, 교육으로 시작
이듬해 자치모임 ‘뜰과사람들’ 꾸려
서로 위로·격려하며 활동 이어가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우리 ‘수유현대빌라’는 1987년에 지어져 올해로 35년을 맞았다. 4개 동 66가구가 사는 아담한 공동주택단지다. 주민 70% 가까이가 60대 이상으로 연령대가 높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우리 빌라를 둘러싸고 있어 단지 첫인상은 복잡한 도시에서 순간이동으로 휴양림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정원에는 빌라 나이만큼 오래된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계절을 알리는 꽃들이 사시사철 피어나 오가는 주민들을 맞이하고 위로한다.
소규모 단지다 보니 관리를 업체에 맡기기에는 비용부담이 커 주민 스스로 하고 있다. 회장과 총무 그리고 동대표 10여명으로 이뤄진 자조회가 있다. 회장과 총무는 총회에서 선출하고 동대표는 라인별로 추천받아 총회에서 동의를 구해 뽑는다. 대부분의 일은 회장과 총무가 맡아 한다.
매달 주민회의에서 관리비를 정하고 관리 방안과 건축물에 대한 공사 여부 등을 의논한다. 규모가 큰 공사는 주민 설문조사로 의견을 모아 진행한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져 가는 시대에 35년간 꾸준히 주민회의를 끌어온 것은 우리 빌라의 자랑이다.
주민회의는 꾸준하게 이어졌지만, 주민 간에 왕래가 잦아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거주한 가구들은 왕래가 잦았지만 이사 온 가구들은 왕래가 거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새롭게 이사 온 젊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자조회 운영진을 구성하면서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2018년 서울에서 마을공동체사업이 한창일 때 자치구 공모에 신청해 마을밥상을 시작했다. 5월에 이사로 잠시 비어 있는 집을 빌렸다. 운영진과 동대표들이 잡채, 떡, 김밥 등 음식을 준비해 주민들을 초대했다. 라인별 게시판에 홍보지도 붙이고 작은 현수막도 걸었다. 17가구가 참여했다. 입주 때부터 산 어르신은 “살면서 이런 자리는 처음이다. 정말 좋고, 고맙다”는 덕담을 나눠 주셨다.
그해 바닥 아스콘과 외벽페인트 방수 공사가 있었다. 두 번째 마을밥상에서 입찰에 참여한 업체가 사업설명을 했다. 세 번째 마을밥상 역시 그해 11월에 열어 공사 결과를 보고하고 애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9년 봄가을 두 번의 마을밥상이 더 진행됐다. 봄꽃이 지고 초록의 물결로 단지가 뒤덮일 때 정원 뜰에 모여 소박한 뷔페를 차려 식사했다. 지역의 청소년 단체에서 야외용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빌려와 예쁘게 깔았다. 20여 가구가 참여해 이전보다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코로나19로 2020년부터는 마을밥상을 열지 못했다. 대신 전체 가구에 떡을 돌리며 서로의 무사를 기원했다.
2018년 11월 열린 마을밥상에서는 하수관 교체 및 바닥공사 보고회도 함께 진행했다.
야외 단지 놀이터에서 여는 작은 잔치는 이어갔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열린 행사에서는 주민들이 안 쓰는 물건을 기증받았다. 알뜰 장터와 함께 자전거 수리, 혈압 측정과 건강 상담, 비누 만들기 등도 곁들였다. 다른 동네 주민들도 유모차를 끌고 와 장터에 참여했다. 우리 단지의 놀이터 장터가 마을 장터로 넓어졌다. 2020년에는 100살 생신을 맞은 어르신을 위해 조촐한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3살 아이부터 100살 어르신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르신의 기뻐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로나19로 함께하기는 어려웠지만 단지 분위기는 서먹했던 이전과 달랐다. 아침저녁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주민이 늘어나고 음식을 나누는 주민이 많아졌다. 몇 번 안 되는 마을밥상이었지만 함께 밥을 먹었던 힘은 대단했다. 밥만 먹는 게 아니라 변화를 이야기하고 동네 일을 도모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빌라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정원이다. 오래 함께해온 주민들의 나무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많다. 해마다 정원 관리를 업체에 맡기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나무를 정리해야 하니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이 적잖았다. 2019년 마을밥상 겸 11월 자조회의에서 주민들이 직접 정원을 관리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땅도 살리고 수종도 다양하게 가꿔보기로 했다. 조경업체 위탁은 2년에 한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2020년 주민 울력 날짜를 잡아 게시판에 안내지를 부착하고 자조회보에 안내하며 홍보지를 만들어 가구 우편함에 넣어놓고 문자도 돌렸다. 첫해에 주민 20명이 모였다. 나무 주변으로 넓게 골을 내어 거름을 뿌리고 흙으로 덮어주는 작업을 하고, 잔디를 깎고, 풀을 뽑고, 죽은 나무들을 걷어 냈다. 그다음 해 전지작업을 앞두고 업체의 조언을 받아 잘라내는 것이 좋을 만한 나무들을 골라냈다. 나무들을 잘라낼 것인지를 두고 주민들 간에 갈등이 생겼다. ‘30년 된 나무를 어떻게 베어낼 수가 있느냐’ ‘1층 베란다 앞을 가리고 있는 큰 나무 때문에 1년 내내 낮에도 전등을 켜놓고 살아야 하느냐’ 등 이해관계에 따라 주민들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결국 주민회의에서 기준을 정하고 주민들이 직접 둘러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정리됐다. 갈등을 기회 삼아 정원 관리의 작은 규칙이 만들어졌다.
주민 울력은 해마다 한두 번 이뤄진다. 부부가 함께 오기도 하고 엄마와 아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거름 주고, 화초 심고, 풀 뽑고, 장미 아치 심고, 놀이터 벤치 페인트칠하고 등 3시간여 공동작업을 한다. 끝내고 20여명의 주민이 바닥에 둘러앉아 먹는 자장면은 꿀맛이다. 우리 스스로 단지를 가꾸고 있다는 자부심과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긍지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순간이다.
2019년 봄부터 화초 가꾸기 강좌를 시작했다. 주민 10명이 참여해 기초에서는 실내식물 관리 방법에 대한 강좌를 듣고 심화에서는 정원수 식재 방법, 관리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나무 전지를 하고, 거름을 주고, 정원에 사는 수종에 대해 배웠다. 난각 칼슘을 만들어 영양분을 공급하고 해충을 방지하는 약도 만들어서 뿌려주기도 했다.
정원을 가꾸는 것뿐 아니라 자투리 공간을 화단으로 바꾸는 작업도 했다. 빌라 입구의 분리수거장을 내부 쓰레기가 보이지 않도록 하고, 주변도 단정하게 정리하고 화초를 심었다. 바닥을 걷어 내고 새롭게 흙을 덮고 물길도 만들었다. 늦가을에 조성했던 터라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음해 꽃이 피고 제법 무성하게 자랐다. 외출하고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이 먼저 가는 곳이다.
2020년엔 ‘뜰과사람들’ 정식 모임을 만들고 주민정원사로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정원을 가꿨다. 여름엔 7시까지 더 했다. 12~3월까지, 그리고 8월 한 달은 쉬고 매주 모인다. 시간 되는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나와 정원을 가꾼다.
주민정원사들에게 항의하는 이웃들도 있었다. 집 앞 화초 하나가 없어져도 주민정원사를 의심했고, 꽃이 하나 부러져도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하니까 꽃이 부러진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속상했지만 서로 위로하며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덕분에 정원에 철마다 다양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수선화며, 옥잠화, 수국, 튤립, 쑥부쟁이. 이름 모르는 꽃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우리 주민들처럼.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수유현대빌라 자조회·뜰과사람들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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