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송파구 삼전동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공개된 ‘100세 마당’은 2025년으로 다가온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응하는 서울시의 노력이 결실을 본 자리다. 서울시가 2014년부터 추진해온 ‘인지건강 디자인 사업’의 결과를 더욱 발전시킨 모델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집 근처 15분 거리에 있는 자투리땅을 인지건강을 위한 공공디자인 아이템으로 꾸리는 것이다. 1 ‘100세 마당’의 14개 디자인 아이템 중 ‘신체강화’를 위한 운동기구를 하는 어르신들. 앞쪽 어르신은 물결 모양 봉을 이용해 ‘어깨근력 강화운동’을 하고 뒤편 오른쪽 어르신은 ‘손가락 운동’을 하고 있다. 또 뒤편 왼쪽은 ‘바른 자세 운동’을 하는 어르신 모습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시 2014년부터 공공디자인으로 ‘치매 예방 아이템’ 준비
집 근처 소공간 활용…“매일매일 방문”
복지관 벽 허물어 주민들도 사용 가능
“내년 4곳 추가 뒤 25개 구 전체로 확산”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작지만 큰 발걸음.’
지난 13일 송파구 삼전동 송파노인종합 복지관에서 공개된 ‘100세 마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 인구 20%가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지만 그에 대비한 사회적 준비는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100세 마당 공개는 초고령사회 대비와 관련해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시 디자인정책담당관 공공디자인사업팀(팀장 강효진)이 그동안 진행해온 ‘공공디자인’을 통해 초고령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치매 예방과 관련한 하나의 해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초고령사회 대비가 늦은 것은 무엇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탓이 크다. 우리나라는 2018년(14.4%) 고령사회로 진입한 뒤 7년 만에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오스트리아(53년), 영국(50년), 미국(15년), 일본(10년)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다.
‘100세 마당’ 전체 구성도. ‘신체강화’ ‘정서힐링’ ‘사회교류’의 세 기능을 가진 14개 디자인 아이템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제공
문제는 사회가 이렇게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가면서 치매환자 증가율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노인인구는 2013년 613만 명에서 2024년 984만 명 수준으로 60% 넘게 증가하지만 치매환자는 같은 기간 57만 명에서 101만 명으로 무려 77% 늘어난다. 이는 2030년이 되면 우리나라 노인 7명 중 1명이 치매 환자가 될 거라는 얘기다.
이날 공개된 100세 마당은 약 60평(200㎡)의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이 치매 문제에 대응해보려는 의지와 노력으로 빼곡했다. 마당 안에는 ‘신체강화’ ‘정서힐링’ ‘사회교류’ 세 기능을 모두 지닌 14개 디자인 아이템이 갖춰져 있다. 서울시 공공디자인사업팀은 그 이유에 대해 “다수의 학자가 ‘셋 중 한 가지라도 결여되면 치매가 빨리 올 수 있다’고 밝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정서·사회교류 활동을 매일매일 골고루 체험하게 함으로써 치매 예방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개장식날 100세 마당에는 송파노인종합복지관 회원인 어르신들이 마당에 설치된 ‘신체강화’를 위한 운동기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운동기구라고 하지만 청년들이 하는 격한 운동용 기구들과는 차이가 있다. 치매예방을 위한 ‘인지 건강을 위한 운동도구’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운동’ 기구 앞에 선 한 어르신은 운동기구에 파여 있는 홈을 따라 두 손가락을 벌려 교차하면서 한 칸씩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운동’을 반복했다. 옆에 있는 ‘어깨근력 강화운동’ 기구를 사용하는 어르신은 둥근 손잡이를 잡고 물결 모양의 봉에 손잡이가 닿지 않도록 하면서 옆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르신의 무릎이 물결 모양 봉에 맞춰 자연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운동이지만 노인들의 경우 이 운동을 매일 반복하면 치매 예방에 일정 정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운동 모습을 지켜보면서 운동방법을 가르쳐주던 정영숙(82) 인지건강리더는 “이 운동을 꾸준히 하면 계단 오르기, 휴대폰 버튼 누르기, 가사일 등에도 도움이 된다”며 “집에 돌아가서도 일상생활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동료 노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었다.
‘100세 마당’ 바닥에 그려진 윷판. 어르신들이 짬을 내 함께 놀이할 수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정 리더는 100세 마당 공개에 맞춰 양성한 13명의 인지건강리더 중 한 명이다. 정 리더는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 시간씩 의사와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강사진의 강의를 들었다”며 “처음에는 나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남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어르신 중에서 인지건강리더를 양성함으로써 어르신 눈높이에 맞게 사용방법을 안내해 운동효과를 높이고 상호공감을 통해 어르신들의 우울감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리더는 ‘신체강화’ 디자인 아이템에 이어 100세 마당 내에 있는 ‘정서힐링’과 ‘사회교류’ 디자인 아이템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광장에 있는 △작은 무대인 ‘모두의 무대’ △원예프로그램과 연계한 ‘화단’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 △24절기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24절기 기억안내사인’이 어르신 정서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라면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는 ‘인지시계’ △길 가는 사람들도 함께 앉을 수 있는 ‘소통벤치’ 등은 사회교류의 폭을 넓히기 위한 디자인 아이템이다.
‘인지건강 바닥 그래픽’. 어르신들이 바닥에 그려진 숫자를 따라가면서 몸의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서울시 제공
이러한 100세 마당의 치매 예방 효과는 ‘마당의 개방성’에 의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00세 마당은 지난 10월 서울시의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닫힌 공간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의 디자인 개선 작업은 이 벽을 허무는 데서 시작됐다. 벽이 없는 현재의 마당은 주민이나 행인 등 누구나 함께 편히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공공디자인사업팀은 “많은 어르신이 2020년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복지관이 문을 닫았을 때는 갈 곳을 잃었다”며 “이렇게 바깥 활동이 위축되고 사회적 교류가 줄면 어르신들의 신체·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노인 우울증도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100세 마당은 설사 복지관이 다시 문을 닫더라도 어르신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존재함을 상징한다.
100세 마당이 이렇게 짜임새 있게 구성된 데에는 서울시가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공공디자인 정책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 100세 마당에 적용된 14개의 디자인 아이템은 서울시가 2014년부터 추진해온 ‘인지건강 디자인 사업’의 결과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인지건강 디자인 사업이 바로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치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통해 모두 77종의 인지건강아이템을 개발했다. 77종의 아이템은 주택(‘사람을 잇는 길반장’ 등)과 아파트(‘단지 내 기억둘레길’ 등), 공원(‘24절기 대표 식재를 활용한 오감자극 콘텐츠’ 등) 등 장소적 특징에 따라 인지건강에 효과가 있게 개발된 디자인 아이템들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인지건강에 대한 근거를 중시하며 진행된 ‘인지건강 디자인 사업’의 근거중심디자인(EBD)적 가치는 국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코로나19 이전까지 진행된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도시관리과정 연수’ 때도 인지건강디자인 사례에 대한 답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100세 마당은 이런 77종의 인지건강 아이템 중에서 다시 한번 추리고 보완·발전시킨 것이다. 이때 핵심적인 조건은 어르신들의 거주 생활권 내 작은 공간에 인지건강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100세 마당’ 조성 전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시 공공디자인사업팀은 이를 위해 7개월 전인 지난 4월8일 100세 마당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전미자 한국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한 외부 자문위원과 이경수 송파노인종합복지관 관장과 복지관 직원들, 이정희씨 등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 정책 모니터링단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프로젝트 설명회, 현장답사, 정기회의, 워크숍 등 10여 차례 회의 끝에 ‘100세 마당이라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전미자 이사장은 100세 마당 모델의 중요성을 평가하면서 “노인들이 거주지에서 15분 안에 다다를 수 있는 자투리땅을 활용했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전 이사장은 “노인들이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크고 넓은 공원이나 체육시설 등을 이용할 가능성은 낮다”며 “노인들이 날마다 갈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작은 유휴공간을 활용한 모델이 실질적으로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의 경우 국토가 넓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우리만의 치매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한다”며 “100세 마당은 한국형 치매 예방 공공디자인의 좋은 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0세 마당’ 조성 후 사진. 조성 전에는 두꺼운 벽에 갇힌 공간이었지만 조성 뒤에는 주민과 행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이에 따라 앞으로 100세 마당의 확산에 주력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3월까지 금천노인종합복지관, 노원노인종합복지관, 마포시니어클럽, 서초잠원근린공원 등 4곳에 추가로 100세 마당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미 각 기관 관계자들이 지난 8월 말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제3차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년에 만들어질 4개의 새로운 100세 마당이 제1호 100세 마당의 판박이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의 지역적 특색과 해당 지역 복지관 관계자들이나 이용하실 어르신들의 의견까지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더 나아가 100세 마당 디자인을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사업인 ‘어르신 놀이터’와 연계해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어르신 놀이터’ 사업은 현재 가이드라인 수립 중인데, 서울시는 100세 마당 디자인을 가이드라인에 반영해 자치구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100세 마당 공개에 맞춰 송파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한 오세훈 시장은 “앞으로 25개구 전체로 확대해 어르신들이 정신적·육체적·사회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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