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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송파산대놀이, 국내의 관심과 지원 절실합니다”
등록 : 2022-12-29 15:03
송파산대놀이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승되는 탈춤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명맥이 끊어질 뻔하다 1950년대 들어 복원돼,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지난 11월30일에는 한국의 탈 18종목에 포함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송파산대놀이 전승자들이 21일 송파산대놀이 제5마당 팔먹중 곤장놀이를 시연하기 위해 서울놀이마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제일 앞 곤장을 손에 든 이가 우두머리 격인 원목이다.
‘한국의 탈춤’ 18종목 중 서울에서 전승되는 유일한 가면놀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고 해서 우리에게 혜택이 오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전세계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대표해 긍지를 갖고 활동할 수 있게 돼 무척 뿌듯합니다.” 한국의 탈춤이 지난 11월30일(현지시각)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17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종묘제례악이 국내 첫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른 이후 22번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탈춤은 모두 18종목으로 서울에서는 송파산대놀이가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21일 송파구 잠실동 송파산대놀이 전수관이 있는 서울놀이마당에서 만난 이병옥 송파산대놀이보존회 회장은 “탈춤이 좀 더 빨리 유네스코에 등재됐어야 했는데, 밀리고 밀려 22번째가 됐다. 이제라도 등재돼 너무 고맙다”며 아쉬움과 기쁨을 함께 표현했다. “고려 말 사회 풍자 현상이 나타나면서 조선시대에 정착됐죠. 민중을 대표하는 먹승을 내세워 승려, 양반,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가미됐습니다. 풍자, 서민 애환, 처첩 갈등 등 5가지 주제가 탈춤 속에 담겨 있어요. 민중이 공감하고 통쾌함을 느끼며 박수를 치잖아요.”
팔먹중 곤장놀이에서 팔먹중들이 차례로 원목에게 곤장을 맞으며 퇴장하는 모습.
송파산대놀이 전승자들이 팔먹중 곤장놀이 시연을 마치고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송파산대놀이 전승자들이 서울놀이마당 내 전수관에서 연습하는 모습.
송파산대놀이에 쓰이는 다양한 얼굴 표정을 지닌 탈. 맨 아래 줄 왼쪽 둘째가 송파산대놀이에만 있는 신할미탈이고 바로 윗줄 맨 오른쪽이 무당탈이다.
이병옥 송파산대놀이보존회 회장(왼쪽)과 함완식 보유자. 이 회장은 지난 7월 명예보유자가 됐고 함씨는 2006년 보유자가 됐다.
1970~80년대 탈춤패 성행 ‘문전성시’
1990년대 이후 관심도 전수자도 줄어
“훌륭한 문화유산 계승 발전 힘 모아야” 송파산대놀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전승자가 줄어 위기를 겪는 현실은 여전하다. 현재 송파산대놀이에는 2006년 보유자가 된 함완식, 지난 7월 명예보유자가 된 이 회장을 비롯해 전승교육사(전수교육을 하는 자) 5명, 이수자(전수교육을 마친 자) 20명, 전수자(전수교육을 받는 자) 26명이 있다. 이 중 이수자는 11명, 전수자는 23명이 활동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알아줘야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고 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함완식씨는 기쁘지만 걱정스럽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전통과 역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요. 제일 무서운 일입니다. 후배들한테 전승이 끊어질 위기라서 불안감을 많이 느껴요.” 함씨는 “전수자들이 자기 돈 써가면서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전수자가 많이 줄어 송파산대놀이가 언제까지 존속할지 걱정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 공연하면 모두 열광하는데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만 모르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전수자뿐만 아니라 보유자가 돼도 탈춤으로 생계유지가 안 되는 것도 큰 고민거리다. 이 회장은 국가 지원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공연으로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했다. “겨우 1년에 한 번 정기 공연하는 것과 운영비 정도 받는 게 전부죠. 인간문화재가 매달 국가에서 받는 150만원으로는 생계유지도 힘들어요.” 더구나 요즘에는 젊은이들도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때부터 가르쳐도 중학교 2학년을 마치는 순간 안 나와요. 대학 가는 데 도움이 안 되니 부모들이 아무도 자기 자식을 보내지 않는 거죠.” 이 회장은 “입시와 서구문화에 매몰돼 전통 문화는 구닥다리라고 생각해서인지 관심이 옛날만 못하다”며 “그나마 가르칠 만하면 얼마 안 돼 안 온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보유자 지정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 종목은 인간문화재를 지정하지 않으려 해요. 전승교육사로 끝내려 하는데, 잘못된 것이죠.” 이 회장은 탈춤을 배우는 전수자에게 미래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의지가 많이 꺾였다고 했다. “처음 보유자 지정할 때만큼 보유자를 지정해주는 게 우리 바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수자들이 인품과 실력을 갖추려고 더 노력하고 송파산대놀이도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 했다. 서울놀이마당은 송파산대놀이 전승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전국에 있는 무형문화재의 발표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서울놀이마당에서 전통 공연 외 다른 공연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럴 때면 송파산대놀이 연습장인 전수관을 분장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송파산대놀이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편을 호소했다. 이 회장은 “분장실을 따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송파산대놀이보존회는 매년 국내외에서 꾸준히 공연한다. 또한 청소년, 지역주민,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체험 활동도 펼치고 있다.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송파산대놀이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이 회장은 “미래 관객이자 전승자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유치원이나 학교 등에서 송파산대놀이를 가르치고 또 가르치겠다”며 “유네스코에 등재된 탈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더 높아져, 미래 한국 탈춤을 책임질 전승자가 많이 모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