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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2.6㎞, 서울 역사탐방로 되살아난다

서울시 정동 일대 ‘대한제국의 길’ 명명, 2018년까지 조성

등록 : 2016-10-20 12:50
서울 정동 일대의 길이 ‘대한제국의 길’로 거듭난다. 오른쪽 주황색 지붕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된 대한성공회성당, 왼쪽 덕수궁 첫 번째 건물은 고종 황제가 돌아가신 함녕전이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 1897년 10월12일, 고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환구단(원구단)으로 나아갔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고종은 이곳에서 조선이 새로운 근대적 자주독립 국가임을 세계에 알리는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선포했다. <독립신문> 10월14일치는 “황제 즉위식을 위한 어가행렬 앞에는 태극기가 먼저 가고, 고종황제는 황룡포에 면류관을 쓰고 금으로 채색한 연(임금이 타던 가마)을 탔다. 경운궁에서 환구단에 이르는 길가 좌우로 어가를 호위한 군사들의 위엄은 장대하였다”라고 전했다. 열강의 위협 속에서 근대화와 자주의 길을 모색했던 대한제국의 빛나는 장면이다.

#. 1905년 11월17일, 고종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중명전(고종의 집무실) 안팎은 일본군으로 겹겹이 둘러싸였다. 일본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는 중명전에 모인 대신들을 상대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할 것을 압박했다. 고종은 이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명전에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토는 조약에 반대하는 참정대신 한규설 등을 끌어낸 뒤, 이완용·박제순 등 5명의 대신한테서 찬성을 받아냈다. 다음 날 새벽 1시 ‘을사조약'으로 알려진 한일협상조약은 결국 체결됐다.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1910년 소멸했지만, 사실상 1905년 11월에 일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대한제국의 그늘진 모습이다.

이처럼 대한제국 13년의 영욕이 펼쳐진 공간이, 덕수궁이 있는 서울 중구 정동 일대다. 영국·러시아 공사관, 정동제일교회, 성공회성당, 배재학당 등 정동의 많은 문화유산들은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 가운데 러시아공사관은 근대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다.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여자 옷으로 갈아입고 두 대의 가마에 나눠 탄 뒤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왔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시해되고 일본이 득세하자 러시아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궁궐 밖의 러시아 군대는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시켰고, 그 뒤 1년여 동안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바로 ‘아관(러시아공사관)파천'이다. 당시 러시아공사관은 규모가 상당히 컸으나 6·25전쟁 때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첨탑만 남아 있다.

서울시가 이런 정동 일대 2.6㎞를 2018년 말까지 ‘대한제국의 길'로 조성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대한제국이 추구했던 자주, 독립, 개혁, 국민 등의 가치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미국 보스턴의 독립 명소를 둘러보는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과 비슷한 ‘대한제국의 길'(Korean Empire Trail)이라 지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구상을 발표하면서 “대한제국의 역사는 ‘대한'이라는 국호, ‘국민'이라는 지위, ‘국민주권국가'를 태동시킨 개혁의 역사”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대한제국의 길'에 5개의 코스를 조성할 방침이다.(그래픽 참조) 1코스는 새로 만들어지는 ‘세종대로 역사문화특화공간’(옛 국세청 별관 터)을 출발해 성공회성당, 세실극장, 영국대사관을 둘러볼 수 있는 길로, ‘배움과 나눔'이라 이름 지었다.

2코스 ‘옛 덕수궁역'에선 구세군 중앙회관, 정동공원(옛 러시아공사관) 등을 만날 수 있다. 3코스 ‘외교타운'은 정동공원부터 정동제일교회까지로, 미국 대사관저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4코스 ‘신문화와 계몽'은 서울시 서소문청사와 대한문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5코스 ‘대한제국의 중심'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서울광장, 환구단(프레지던트호텔 옆)을 거쳐 역사문화특화공간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양병현 서울시 역사도심재생과장은 “대한제국 국장(國章, 한 나라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표장)을 활용한 바닥돌 표시를 따라 걸으며 정동의 대표 역사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연간 400만 명 이상이 찾는 ‘프리덤 트레일' 같은 대표적인 역사 탐방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