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서울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안규철 서울시 공공미술단장 “채우는 게 능사 아냐. 미술은 소통하는 도시의 한 방식”

등록 : 2016-10-20 20:50
서울시 공공미술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안규철 교수가 엄청난 과밀도시인 서울을 랜드마크식 대형 조형물로 채우기보다는 잘 비우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도시 공간을 장식하는 조형물이나 공공시설의 디자인 등 공공미술 수준이 그 도시의 예술적 안목을 반영한다면, 서울은 세계 도시들 가운데 어느 수준에 있을까?

서울시는 지난 6월 “시의 공공미술 수준과 격을 획기적으로 높여 서울 전체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따라 공공미술자문단을 구성하고, 자문단장에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한 명인 안규철(6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위촉했다. 그에게 박원순 시장이 기대하는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밑그림이 어떠한지 들어봤다. 안 교수는 “개인적으로 공공미술이 시민에게 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는 시혜 개념에 반대한다. 이게 예술이고, 이게 좋으니 봐라는 식의 접근은 옳지 않다”는 소신을 밝혔다.

 공공미술은 판단의 잣대가 다양해 그만큼 말도 말고 탈도 많다. 어려운 자리를 맡은 것 같다.

 “공공 영역을 채우는 미술작품들은 그 사회의 문화적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지한 작가들이 공공미술 분야에 작품을 내지 않는다. 나도 2010년에 한 번 참여해봤는데, 제약이 너무 많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이 그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외부에 자문하길래 이런저런 ‘과격한’ 지적을 해주다가 결국 일을 떠맡게 됐다.”

 - 평소 생각해온 바람직한 공공미술 운영 방향은?


 “가능한 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제출되고 반영되도록 하겠다. 일관된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젊은 작가들이 의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고, 저명한 기성 작가들도 들어와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 6월에 자문단이 출범했는데, 그동안 한 일은?

“이미 수립된 사업들 가운데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수정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모든 사업이 우리 자문회의를 통해서 계획되고 진행되기 때문에, 그 운영계획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올해는 12월에 여는 공공미술 국제 콘퍼런스를 주목해주기 바란다. 서울의 공공미술 환경에 대한 주요 관점들과 해외의 모범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 공공미술 작품들을 선정하고 진행하는 새로운 기준이나 원칙이 있다면?

 “서울은 엄청난 과밀도시다.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처럼 엄청나게 많은 시각적 공해 물질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공간을 비워서 좀 쉬게 해줄 필요가 있다. 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잘 비우는 데도 초점을 맞추자고 얘기하고 있다. 랜드마크식의 대형 조형물 설치는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하겠다.”

 - 시민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올해 사업 중 ‘공공미술 시민발굴단’이란 것이 있다. 일반 시민 100분을 선정해 10팀으로 나눠 전문 큐레이터의 지도 아래 주제별로 주말 답사를 다니고 있다. 연말에 그 결과물을 시민들에게 보고하고 전시도 할 예정이다. 공공미술에 시민들의 다양한 시각과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장치인데, 저도 처음 하는 일이라 상당히 결과가 궁금하고 기대가 많이 된다.”

 - 올해 사업 중에 소개할 만한 것은?

 “봉제공장, 철공소 등 소규모 공장이 밀집한 도심 제조업 지역은 환경이 열악하다. 그곳에 젊은 미술가들이 들어가 공공미술을 통해 환경을 개선해보려는 ‘아트 플랜’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 철공소 밀집 골목의 위생 환경을 공공미술 차원에서 바꿔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잘 이뤄지면 공공미술이 단순히 동네 골목길을 치장하고 벽화를 그려주는 차원을 넘어 시민들의 삶과 도시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외국의 모범 사례를 꼽는다면?

 “자주 드는 사례가 있다. 독일에 카셀이라는 인구 20만의 소도시가 있다. 5년마다 한 번 우리의 광주비엔날레 같은 미술전람회가 열리는데, 요셉 보이스란 작가가 떡갈나무 7000그루를 도시 곳곳에 심는 프로젝트를 출품했다. 그가 죽은 뒤까지 계속된 이 나무 심기로 30년 뒤 카셀은 완전히 떡갈나무 숲의 도시가 되었다. 미술이 어떻게 도시를 바꾸고 사람을 바꿀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미술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미술이 꼭 그 형태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보수적인 생각이다. 미술은 이제 더 이상 장식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생활 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세계 미술계의 추세다. 이런 변화는 크게 보면 새로운 소통 방식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조각이 미술의 한 소통 방식이라면 미술이 숲이나 공원 같은 환경으로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다.”

끝으로 한 사람의 작가로서 해보고 싶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느냐는 질문에 안 교수가 “지금은 심판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며 웃음으로 대신하자, 동석한 변태순 서울시 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장이 답변을 대신했다. “안 교수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처음 시도되는 바로 이 자문단장 활동이 아닐까요?”

 임기를 마치는 2년 뒤에는 안 교수의 안목과 식견이 서울이라는 ‘도시 미술관’을 새롭게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