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체인저.’
미국 보스턴의과 대학의 정신의학 교수인 데니스 슬로안과 브라이언 마르크스는 자신들이 개발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법’인 쓰기노출치료(WET)를 이렇게 평가했다. 두 사람이 지은 저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쓰기노출치료>(윤지애·최경숙 옮김, 하나의학사 펴냄)는 왜 WET가 PTSD 치료에서 게임체인저로 불리는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PTSD는 전쟁·고문·자연재해·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며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PTSD 환자는 해당 사건을 감추고 억누르려 하지만,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어떤 매개체에 접하면 다시금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라 고통받는다. 그리고 이때 떠오르는 것은 온전한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이다. 그래서 치유에 이르지 못하고 고통만 지속되는 것이다.
여러 치유법이 있지만, 중심 원리는 ‘그 기억을 온전하게 여러 차례 드러내고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다. 그럴 때만 피해자는 그 악몽 같은 일이 자기 탓이 아니라고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드러냄 또한 고통이며 완전한 치료에 이르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 가령 기존의 인지처리치료(CPT)는 매주 1시간씩 진행되는 12회기의 치료 기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WET는 5회기 동안 20분의 대면요법과 30분의 글쓰기로 이루어진다.
방법은 PTSD 내담자가 지침에 따라 설명을 들은 뒤 30분 동안 PTSD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집중해서 서술하는 것이다. 내담자가 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치료자가 시간을 체크한다. 회기마다 글을 쓰기 전과 글을 쓴 뒤 느끼는 고통을 0에서 100까지의 척도로 평가하게 한다.
내담자는 5번만 글쓰기를 하지만, 12회를 진행하는 기존 인지처리치료 등의 치료 효과에 견줘 열등하지 않은 치료 효과를 얻는다. 오히려 치료 중단율은 기존 치료방법에 비해 훨씬 낮다. 지은이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갖는 편안함을 지적한다. “치료자에게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말하는 일을 포함하지 않는 방식은 내담자가 치료 상황을 더 편안하게 느끼고 노출을 잘 견디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또한 WET는 CPT와 달리 첫 번째 회기부터 과거 경험을 노출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공포심을 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치유 효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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