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림자 다리 건너에서 기다리네

화장품 브랜드와 현대미술 작가가 들려주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 ‘설화문화전’

등록 : 2016-10-27 15:39 수정 : 2016-10-27 15:40

#견우직녀 #칠월칠석 #오작교. 어떤 사진이 펼쳐질지 모를 해시태그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색을 하면 뜻밖에도 예술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나온다. 오작교를 떠올리게 하는 벤치, 멀고도 먼 견우와 직녀의 간격을 나타내는 파란 리본 물결들이다. 전해지는 수많은 설화 가운데 대표적 사랑 이야기로 꼽히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현대 작가들이 작품으로 재해석한 <설화(說話): Once upon a time-견우 직녀> 문화전이다.

11개 팀이 참여 실험적 작품 선봬

설화문화전은 2006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이 진행해온 문화 메세나(기업이 문화예술 분야에 지원해 사회 공헌을 하고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것) 활동이다. 자사의 대표 브랜드인 설화수에 영감을 준 한국의 전통미를 널리 알리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세대 간 공감과 교류를 이끌겠다는 게 전시의 목적이다.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견우와 직녀 설화(說話)가 테마다. 기획과 진행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맡았으며, 미디어 작가 김준, 조애리, FriiH 등 주목받는 현대미술 작가 11팀이 참여했다. 2016 설화문화전은 강남구 도산대로 설화수 플래그십스토어와 도산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에 들어서면 안창호 선생 동상 옆에 놓인 설치물 ‘그림자 다리’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작품은 일 년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를 상징한다. 까치와 까마귀 문양을 새겨 넣은 설치물과 벤치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매일 오후 3시30분에 딱 한 번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직접 봐야 이해가 되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시간 맞춰 공원을 찾는 방문객도 있다.

그림자 다리 옆으로는 기하학 모양을 한 벤치 두 개를 연달아 볼 수 있다. 고분벽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흑회색과 황색 벤치, 붉은 심장을 옮겨 놓은 듯한 벤치는 작품이지만 직접 앉아 쉴 수도 있다.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만날 수도 있고, 서로 볼 수 없는 작품은 관람객에게 견우와 직녀의 처지와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도산공원을 가로지르는 바닥에는 색색의 형광 테이프가 기하학적 무늬로 붙어 있다. 설치미술가 전가영의 작품 ‘공간 접기’는 ‘종이접기’처럼 방문객의 상상으로 무늬를 접어보게 하는데, 색이 예뻐 아이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설화문화전은 도산공원 바로 옆 설화수 플래그십스토어로 이어진다. 6점의 전시 작품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공간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플래그십스토어인 만큼 휴게 공간도 넉넉해 느긋하게 보는 재미가 있다. 설화수 전 제품을 테스트하고 살 수도 있다.


작품이 들려주는 풀벌레 소리는 힐링의 기회

스토어 출입구부터 파란색 리본이 격자무늬 황금색 철제에 붙어서 휘날린다. 철제의 차가움은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의 처지를, 파란 리본은 끝없이 이어지는 파도로 만남을 상징한다. 매장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활짝 핀 커다란 꽃봉오리 두 개는 패브리커 김성조와 김동규의 작품 ‘이음 일루전’이다. 버려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온 두 작가는, 화려하지만 한번 입고 버리는 웨딩드레스를 재활용해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을 피워놓았다. 관람객들이 오랜 기간 머물며 사진을 찍는 작품이다.

3층에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힐링 공간이 있다. 김준 작가의 ‘자自-연緣; 스스로 이어지다’는 이끼 위에 나무만 슥 보고 지나치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소리를 채집해 나무마다 다른 소리를 넣어뒀기 때문이다. 나무에 귀를 대면 이 나무는 풀벌레 소리를, 저 나무는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은하수가 눈앞에 쏟아질 거 같은 4분짜리 영상 ‘시각적 운동학 No.20: 시간의 존재 방식’도 바로 옆에서 상영된다. 소파가 있어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설화문화전은 휴관 없이 다음 달 13일까지 열린다. 날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입장료는 없고, 도슨트의 해설 역시 언제든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맑은 날과 흐린 날, 아침과 저녁 등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작품의 그림자나 색 등이 다르게 보여 여러 번 방문해도 볼 때마다 다르게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도 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사진 아모레퍼시픽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