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리큐 정원의 하이라이트 쇼킨테이(松琴亭) 다실. 지붕이 세 가지 형태를 갖고 있어 보는 방향에 따라 정자의 모습도 다르게 보인다.
17세기 초 일본 왕족이 2대 걸쳐 조성
‘정원 만들기’를 예술 경지로 끌어올려
‘일본 정원의 출발점이자 귀착점’ 평가
1930년대 유럽 소개…‘세계적 명성’ 얻어
연못을 중심으로 서원·다실·정자 배치
시점마다 달라지는 ‘변화된 풍경’ 감탄
‘동양 전통에 유럽풍 가미’ 디자인 유명
화재 피해 없어 ‘창건 모습’ 그대로 보존
만약 여러분이 교토에서 딱 한 곳,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티켓을 가진다면 나는 가쓰라리큐(桂離宮) 별장을 추천하고 싶다. 17세기 일본 왕실 이궁(離宮)인 가쓰라리큐는 ‘정원의 나라’ 일본에서도 첫손에 꼽는 정원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종합예술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 별장은 사전예약을 해야 볼 수 있다. 당일 접수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도 헛걸음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가쓰라리큐는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최고위 왕족(도시히토 친왕)이 1615년 짓기 시작해 아들(도시타다 친왕) 대인 1660년대에 현재와 같은 규모가 갖춰졌다고 한다. 가쓰라리큐의 영향을 받아 1659년 완성된 또 하나의 왕실 별장인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와 함께 오늘날 일본 가정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적 미의식과 생활문화가 결합한 ‘일본식 정원’의 전형을 창조했다.
가쓰라리큐는 왕실 소유란 ‘폐쇄성’ 탓에 20세기 초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33년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1880~1938)에 의해 유럽에 소개된 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타자의 눈’을 역수입한 일본은 이때부터 조상들이 만들어온 정원의 역사와 작정법(作庭法)을 세밀히 분석하기 시작해, 오늘날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일본 정원의 미학과 감상법을 ‘재창조’해냈다.
가쓰라리큐는 교토 서남쪽 가쓰라가와 강변에 있다. 2만여 평 대지에 네 동의 어전(御殿)과 커다란 연못, 못 둘레를 따라 점점이 세운 다실 등으로 구성된 회유식 정원이다. 회유식 정원은 중앙에 있는 연못을 중심으로 거닐며 자연을 완상하고 심회를 나누는 정원 형태이다. 9세기 중국 당나라 시인 백낙천이 처음 발상해 근세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가쓰라리큐는 이 일본 회유식 정원의 결정판이다. 그러면 관람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
먼저 어전군은 서원을 비롯한 네 동의 건물이 마치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듯한 형태로 배치돼 있다. 마당에 서서 달의 이동을 따라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달에 몰입해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정원 전체가 바라다보이는 연못 쪽으로는 수면에 흐르는 달빛을 보며 술잔도 기울일 수 있도록 넓은 마루를 내놓고 쓰키미다이(월견대)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건물 내부 장식으로는 칸이 서로 엇갈린 형태의 선반인 ‘가쓰라다나’가 유명하다. 슈가쿠인리큐의 가스미다나, 산보인 절의 다이고다나와 더불어 일본인이 ‘천하 3대 선반’이라고 거품을 무는 명품이다.
정원의 중심을 이루는 회유식 연못. 연못을 거니는 동안 정원 풍경이 마치 감춰놓은 듯 시야에 나타난다.
회유식 정원의 중심은 연못이다. 어떤 연못인가가 정원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가쓰라리큐의 연못은 바다이다. 연못의 들쑥날쑥한 정선(汀線, 호수면(또는 연못가)과 육지가 맞닿는 선) 한편에 각종 자연석과 석물을 배합해 모래톱과 등대 같은 실경과 상상이 넘나드는 해변을 묘사해 놓고 있다.
연못 속의 섬들은 각각 흙과 널빤지, 돌로 만든 다리로 이어져 있다. 배를 타고 달빛 속을 항해하고 여러 형식의 다실에 이르러 정원 속에 들여놓은 대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발상이다. 교토 북부 해안의 명승지를 옮겨다 놓은 것이라는데, 말 그대로 절경을 그린 한 폭의 동양화이다. 그 동양화를 감상하는 5개의 ‘시점’(視點)이 있다.
선실 같은 겟파로(月波樓) 다실. 출렁거리는 파도를 타고 달빛 속을 건넌다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토 슈이치(1919~ 2008)는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일본의 정(庭)’이란 멋들어진 수필에서 “가쓰라리큐라는 우주에는 5개의 중심이 있다”고 썼다. 어전군의 달, 겟파로(月波樓)의 바다, 쇼카테이(賞花亭)의 숲, 쇼이켄(笑意軒)의 시골집, 그리고 쇼킨테이(松琴亭)의 산수화.
어전군에서 볼 때 연못 건너편에 서 있는 쇼킨테이는 가쓰라리큐 ‘시점’의 하이라이트다. 이 정자에 서면 어전군 지붕 위로, 만월 속으로 기러기가 날아가는 상상에 빠질 것 같고, 고개를 돌리면 문득 해변의 파도 소리를 들었다고 우길 것만 같다. 세 가지 형태의 지붕을 가진 쇼킨테이 자체도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손님을 맞이한다. 정자 안의 청백색 바둑무늬 장벽은 가쓰라다나와 더불어 이른바 가쓰라리큐의 ‘모던’을 대표한다.
외관이 시골농가 같은 쇼이켄(笑意軒) 다실. 장지문 위에 각각 다른 무늬를 한 6개의 둥근 창이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쇼킨테이가 정자에서 달을 본다면, 어전군 앞의 겟파로는 배 안에서 파도를 타며 달구경을 하는 콘셉트이다. 입구엔 만경창파의 배 그림을 빛바랜 채 그대로 걸어놓았고, 누각의 지붕은 배의 밑바닥처럼 대나무로 엮었다. 난간 손잡이는 노의 모양. 월파(月波)라는 글씨가 걸린 ‘선실’ 창에 기대어 연못을 바라보면, 어두운 바다를 건너 피안을 찾아가는 구도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것도 같다.
쇼이켄과 쇼카테이도 각각의 독자적인 아름다움과 의장을 갖추고 있다. 시골농가처럼 지은 쇼이켄은 세상과 절연한 소이부답(笑而不答)의 왕자가 살고, 정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쇼카테이에는 깊은 숲속에서 문득 나와 다시 고개 너머로 사라지는 나그네의 심상이 있다.
정원 초입에 무대 커튼처럼 내부 경관을 가려놓은 소나무.
다시 정원 구경의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가쓰라리큐의 응접실 격인 소토코시카케 초막은 연극의 커튼이 열리기 직전의 시간 같은 공간이었다. 이 휴게소에서 관람 준비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정원 산책이 시작되는데, 정원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자연석과 인공석이 절묘하게 배합된 돌판길이 깔렸고, 길 끝에는 이정표처럼 석등을 세워놓았다. 이 돌판길은 그 독특한 양식으로 이 정원이 동양적 전통과 당시 일본에 소개된 ‘서양식’의 조화를 추구함을 암시하기 위한 복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정원은 소토코시카케 초막을 나서기 전까지는 전체적인 풍경을 짐작하지 못한다. 정원길을 따라 걸으면서 새로운 풍경을 하나씩 만나도록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다. 연못이 돌연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혹은 불쑥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새 높이 올라와 내려다보고 있거나, 물가에 서서 다실을 바라보는 등 그 변화무쌍한 풍경에 놀라게 된다. 처음 정원에 들어설 때 무심코 지나쳤던 소나무 한 그루도 계산된 가림막의 하나였다. 소나무는 입구 안쪽 길을 막듯이 서 있는데, 정원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서야 비로소 그 소나무가 무대의 커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쇼킨테이 다실 내부의 청백색 바둑무늬 장벽은 ‘가쓰라다나’ 선반, 소토코시카케 초막의 돌판길과 더불어 가쓰라리큐 별장의 ‘모던 디자인’을 대표한다.
가쓰라리큐의 ‘작정자’ 도시히토 친왕과 그 아들 도시타다 친왕은 당시 궁정문화를 선도하는 리더로서 대단한 교양과 미의식을 갖춘 인물들이었다고 하는데, 정치에 대한 좌절, 아니면 미련을 끊기 위해서인지 부자가 대를 이어 이 가쓰라리큐 정원 조성에 몰두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도쿠가와 막부의 니조성(세계문화유산)이 권력자의 화려장대한 건축물의 절정을 보여준다면, 가쓰라리큐는 그런 권력을 냉소하듯이 오히려 스키야(다용도 초가 다실)풍의 소박한 실용성에 경물의 기려함을 무심한 듯이 조화시키고 있다. 탈권위적이면서 문화적 세련미를 극도로 끌어올린 이 정원 양식은 당시 권력의 중심을 이루던 상층 무사계급과 부유한 마치슈 계층에도 파급돼 각 계급이 추구하는 자신들의 미적 감각을 더하게 됐고, 점차 일반대중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통사람의 ‘일본식 정원’을 탄생시켰다. 일본 소학관 발행의 <일본미술대전집>이 가쓰라리큐에 내린 총평은 “근대 일본 정원의 정형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이자, 일본 정원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원미의 귀착점”이다. 가쓰라리큐는 창건 이래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화재 피해를 입지 않아 창건 당시 모습을 거의 완전하게 오늘에 전하고 있다고 한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