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록 노원구청장이 지난 4일 오전 노원중앙도서관 지하 1층 휴먼카페에서 ‘노원휴먼라이브러리’ 등록 사람책으로 청년 2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원구가 젊은층이 살 만한 곳인지에 대한 질문에 오 구청장은 관련된 정책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책 개념 확장, 열람자와 마주해 대화
‘직업·인생’ 21개 주제로 814명 등록
초등 5학년 이상 연간 2천여 명 이용
소통, 지식·경험 나눔의 장으로 활용
특화 전문도서관으로 발전해갈 계획
‘노원휴먼라이브러리’가 운영 12년차를 맞았다. 2012년 3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 구립 사람책 도서관이다. 지난 4일 열람신청을 받은 ‘오승록 노원구청장 사람책’이 독자와 만났다. 구청장 사람책은 ‘정치인의 덕목, 공감 그리고 열정’이라는 주제로 정치학 분야에 사람책으로 등록돼 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2000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사회운동이다. 사람이 한 권의 책이 돼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살아 있는 도서관을 말한다. 독자(열람자)가 원하는 ‘사람책’을 선택하면, 그와 마주 앉아 대화하며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열람하게 된다. 대화를 통해 편견·선입견 등을 깨고 소통이 이뤄지도록 한다.
이날 20대 전규민씨가 상계동 노원중앙도서관 지하 1층 휴먼카페에서 ‘구청장 사람책’과 5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전씨는 “활자가 아닌 눈빛으로 책을 읽는 경험이 재미있었고 노원구에 대한 구청장의 진솔한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씨는 지난달 같은 봉사단 회원인 장태기씨와 함께 열람신청을 했다. 조만간 독립해 노원구로 이사하고 앞으로 결혼해 아이도 키울 생각인데, 노원구가 괜찮은 곳인지 궁금했다. 사람책에도 관심이 있어 열람해보고 싶던 차에, 노원구를 가장 잘 알 것 같은 ‘구청장 사람책’ 열람을 신청했다.
사실 전씨의 질문엔 서울 외곽에 있는 노원구가 젊은층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자신도 모르게 깔려 있을 수 있다. ‘구청장 사람책’은 진솔하게 얘기를 풀어가며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도왔다. 지역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 노원구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뛰어난 자연환경과 아이돌봄센터, 산후조리 지원, 청소년 체험시설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적극적인 청소 행정으로 동네가 깨끗해지고,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늘어나면서 생긴 지역의 변화도 이야기했다. 오 구청장은 “정주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거환경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며 “재건축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덧붙였다.
814명의 사람책 프로필을 볼 수 있는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 서가.
장태기씨는 30대이다. 노원구민으로 공동체 활동에 관심이 있는데, 대부분 주중 업무시간에 이뤄져 늘 아쉬웠다. 직장인도 참여할 수 있게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열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오승록 구청장은 예산 문제 등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을 커뮤니티 공간부터 토요일 정도 운영될 수 있게 보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열람 시간이 끝나자 사람책과 독자 모두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며 아쉬워했다. 사람책 오승록 구청장도 “그간 펼쳐온 행정 서비스와 저의 구정 철학과 구상, 고민을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현재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814명의 사람책을 소장하고 있다. 열람 시간을 맞추면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책은 이 가운데 60% 정도다. 임미경 관장은 “참여하는 사람책 대부분은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등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사람책들은 공모나 스스로 도서관 누리집에서 신청해 등록 절차를 거쳐 재능 나눔을 하고 있다. 구청장 사람책은 다음번에는 ‘문화도시 노원’ 만들기에 관심 있는 독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일방통행 정책이 되지 않게 구민과 소통하며 방향을 점검하고, 놓치는 점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사람책 이용자 연령대는 초등 5학년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사람책과 독자는 지역에 제한이 없다. 현재 사람책의 30%, 이용자 10%는 다른 지역 주민이다. 이용자가 열람을 신청하는 사람책의 주제도 다양하다. 청소년은 직업 관련, 성인은 인생 관련 주제를 주로 이용한다. 트렌드 변화도 있다. 지난해엔 나희덕, 유현아 등 시인 사람책 열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임 관장은 “코로나19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이웃 등 관계 단절을 회복해나가는 데도 일조했다”며 “지난 한 해 2천여 명이 사람책 100여 명을 열람했다”고 전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대화를 통해 생활 속 편견을 해소하는 자리도 마련해왔다. 지난해 열린 북토크에서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을 돕는 경단녀, 육아하는 아빠, 학교밖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 등 사람책 3명이 참여해 독자 30여 명과 얘기를 나눴다. 온라인 생중계로 300여 명이 접속해 함께했다. 2021년엔 사람책의 스토리를 예술가가 형상화해 만든 작품 전시회도 열었다.
올해는 주민 참여 전시회를 11월쯤 열 계획이다. 생활 속 편견을 모아 지역 예술가와 주민을 매칭해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청년층 사람책을 늘려가는 목표도 있다. 현재 사람책의 평균연령은 50대다. 60대, 40대 순으로 많다. 인생 경험이 다양한 사람책 모집도 추진하면서 독자도 열람 약속을 잘 지키도록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임 관장은 “미래세대가 사람책으로 참여해 자기 얘기를 나누고 독자로서도 참여해 간접경험을 많이 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2년 뒤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100평의 독립공간을 마련해 특화 전문도서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예정이다. 지하철 4·7호선 노원역에 청년주택이 들어서며 생긴 기부채납 부지다. 임 관장은 “대화로 편견·선입견·고정관념을 깨는 사람책 도서관의 가치를 실현해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오승록 구청장은 “사람책 도서관을 잘 키워나갈 수 있게 인력충원도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노원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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