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시장골목에 들어선 ‘젊은이들의 아지트’

관악구 ‘샤로수길’

등록 : 2023-03-09 16:04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는 서울대가 없다’는 말이 있다. 역에서 학교까지는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할 만큼 멀어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는 멀지만, ‘샤로수길’은 바로 코앞이다. 샤로수길은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사이에 있는 600m 남짓한 골목길이다. 샤로수길 명칭은 서울대 정문 모습을 얼핏 보면 한글 ‘샤’와 닮았는데, 이 ‘샤’와 ‘가로수길’을 합성해 만들었다.

샤로수길에는 가로수도 없고 명품 매장도 없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관악구청 방향으로 가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나오는데, 바로 옆 골목이 샤로수길 입구다. 막상 골목에 들어서면 일반 주택가와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지지만 조금만 걷다 보면 골목 양쪽으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파는 식당과 카페들이 기다린다. 지하나 골목 구석구석에는 분위기 좋은 주점도 있고 고즈넉한 소품 가게나 가죽 공방도 곳곳에 숨어 있다.

샤로수길은 원래 채소, 청과물, 정육점, 분식집 등이 모여 있던 시장골목이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젊은 사장님’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이곳에 오면서 현대적 감성을 가진 식당이 하나둘 들어섰다. 지금은 각양각색 수십 개 점포가 있는 서울의 대표상권으로 자리잡았다. 관악구도 상권 형성에 힘을 보탰다. 푯말과 출입구 등을 설치해 샤로수길을 널리 알렸다.

샤로수길만의 특색을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도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감성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정제되지 않은 다양성이 눈에 띈다. 늘 거리에서 보이던 프랜차이즈 상표가 아닌 처음 보는 이름의 간판들. 6평 남짓의 공간에 꾸며진 듣도 보도 못한 소품과 주인장의 인생 이야기 등이 숨어 있다. 이렇듯 샤로수길은 한 분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모여 있는 ‘잡화점’처럼.

청년 인구 1위 도시답게 샤로수길에서도 청년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은 대부분 청년 사장님과 종업원들이다. 청년들은 전국 각지에서 이곳에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들의 꿈을 키웠고 기존에 있던 오래된 터줏대감 상점들도 청년들이 흘리는 땀에 힘입어 상권을 지키며 신구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상권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해결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갑갑한 회색 건물과 인스턴트커피에서 잠시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가 지면 붉은 벽돌집과 다세대 주택 등을 개조해 문을 연 골목 안 술집들도 일제히 불을 밝히고 다양한 세대가 모여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지트’가 된다.

요즘은 서울이라는 곳이 점점 차갑게 느껴진다. 모든 공간은 현대화되고 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쉼 없이 변해간다. 하지만 샤로수길은 날 선 편리함으로 우리를 효율로 내몰았던 것들에 지쳐가는 내면을 치유해주는 작은 ‘마을’ 같다. 하나하나의 날것들이 모여 서로를 보듬어주는 이곳은 카페거리도, 먹자골목도 아닌 하나의 길, 관악구 샤로수길이다.


김성은 관악구 홍보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관악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