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국민 근심 덜어주는 지도자가 그리워

선우후락(先憂後樂) 먼저 선, 근심 우, 뒤 후, 즐거울 락

등록 : 2016-11-10 20:47
‘세상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세상의 즐거움은 마지막에 누린다’는 뜻이다. 학문하는 선비, 벼슬에 올라 백성을 돌보는 자, 정치에 참여하여 나라를 경영하는 자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지사인인(志士仁人,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하게 할 큰 뜻을 품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천명한 말이다.

말의 연원은 <맹자> ‘양혜왕 장구 하’편에 있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들 또한 그 군주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들 또한 그 군주의 근심을 근심합니다(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즐거워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며, 근심하기를 온 천하로써 하면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자는 없습니다.”

맹자의 이같은 가르침은 11세기 중국 북송의 저명한 개혁가이자 유학자였던 범중엄을 통해 하나의 선언으로 자리잡았다. 한 지방 장관이 동정호 악양루를 수리한 뒤 범중엄에게 중수(건축물을 손질하여 고침)를 기념하는 글을 부탁한다. 악양루는 두보가 동정호를 바라보며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물에 떠 있다”고 읊은 바로 그 정자이다. 범중엄은 <악양루기>의 결구에서 조용히 외친다.

“선비는 주어진 상황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자기의 어려운 처지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는다(不以物喜 不以己悲). 벼슬이 높을 때는 백성의 삶을 근심하고, 먼 곳으로 물러나 있을 때는 임금의 정치를 근심한다(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선비는 벼슬에 나아가도 근심하고 물러나도 근심한다. 그렇다면 언제 즐거워하는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다 즐긴 뒤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범중엄의 이 말은 관료든, 정치가든, 학자든 진정으로 백성을 걱정하는 자라면 그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엄중한 선언으로, 이후 동아시아 유가 사대부들에게 선비로서의 소명의식과 자부심을 동시에 심어주었다.

대통령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작금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선우후락하는 지사인인이 절실하게 그립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명(正名, 명분에 상응해 실질을 바르게 함)을 실천할 절호의 시기다. 국민이 더 근심하기 전에 먼저 소아를 버림으로써 국민의 걱정을 덜고, 국민이 안심하고 난 연후에 비로소 자신이 즐기는 것(정치든, 권력이든)을 즐기고자 하는 선비 정치인이 소인배 정치꾼보다 단 한 명이라도 더 많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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