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엄마를 미워하기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홍보관 물건 사재기에 빠진 엄마 때문에 속 끓이는 여성 “만류하면 불같이 화내는 엄마 어떡하죠?”

등록 : 2016-11-17 14:15 수정 : 2016-11-18 15:44
 
Q) 친정엄마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저희 엄마는 74세이고, 80세이신 저희 아버지와 두 분이 사시는데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고, 엄마는 아버지 안 계신 동안 특별한 일과 없이 시간을 보내는데, 요즘 ‘홍보관’이란 곳에 다니신 지 2달여 되어갑니다. 나이 드신 분들 모아 공연 보여드리고, 즐겁게 해주며 온갖 물건을 시중가보다 몇 배나 비싸게 파는 곳입니다.

삼사 년 전에도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사오시기에 가시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화를 내셨고, 70만 원 상당의 전기장판 4개를 사서 우리까지 쓰라고 하셨는데 저희가 안 쓰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엄마 것 1개를 제외한 3개를 환불하게 되어 그곳을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곳(홍보관)은 물건 사는 할머니들을 여왕 대우해주며 띄워주지만, 물건을 안 사거나 반품하면 망신을 줘서 못 다니게 됩니다. 몇 년이 지나서도 엄마는 그때 저희 때문에 거기 못 다니게 된 걸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합니다.

저희가 동네에서 가까운 문화센터나 노인대학 등을 알아봐드리고 심지어 반려견까지 권해도 무조건(아주 강력하게) 싫다고만 하시다가 요즘 다시 그곳에 다니시며 2달여 동안 쓰신 돈이 할부까지 해서 400여만 원이나 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살 물건이 없으니 그만 사고 재미 삼아 놀러다니겠다 하시기에, 그러면 다니시되 제발 물건은 그만 사시자고 약속했음에도 다시 정수기를 60개월 할부로 200만 원 넘는 것으로 사오셨습니다.

왜 이러시냐고, 어째서 약속을 안 지키시냐고 해도 소용없고 오히려 더욱 역정을 내며 다른 자식들은 좋은 물건 많이 사오라고 돈도 많이 준다는데 너희들만 못 가게 한다고 100만 원이라도 줘보라고, 사고 싶은 게 많은데 돈 없어 못 사고 있다고 화를 내십니다.


친정엄마는 무척 부지런한 성격이지만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못하는 분이기에 저희 삼 남매는 나름 조심하며 엄마를 대합니다. 귀가 어두워서 더 이상의 의사소통이 불가하여 보청기를 하자 했더니 자신은 너무 잘 들린다고 하시고, 아니라고 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자신이 맞다고 합니다. 매사가 그런 식이어서…. 자신은 평생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바르게 잘 살았으니 당신 귓구멍에 대고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말라 하십니다.

어떤 잘못도 인정 안 하고 당신 멋대로만 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저희 삼 남매는 너무 지칩니다. 이번 홍보관도 더 만류하면, 이젠 욕설이 아닌 자해를 하실 거 같아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증세도 보이는데 병원에 가서 상담 치료를 받아보자고 말씀드렸더니 불같이 화만 내십니다. 가을나무

A) 어머니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지 보내주신 사연만 읽어도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어머니 처지도 이해가 되네요. 아마 어머니는 치매 남편과 살아가는 노년의 삶이 무척 우울하셨을 겁니다. 희망 없고 침체된 노부부의 삶이 주는 고독감을 혼자 감내하시고 있었겠지요.

그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때가 어머니에게는 바로 물건을 사면서 돈을 쓰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24시간, 365일 중에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시간은, 주눅 들지 않는 분위기에서 물건을 소개받고, 그걸 살까 고민하고, 그리고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카드를 결제하는 그 순간 말이지요. 어머니 처지에서는 그 순간이 아주 소중하고 간절했을 겁니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기회가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이 그런 마음을 몰라주고, 소비의 결과에 대해서만 문제 삼으며 자신을 골칫덩어리로 대하니 화내시는 것이지요.

여기서 저는 가을나무님과 어머니의 관계를 묻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어머니를 좋아하고 사랑하시나요? 혹시 어머니의 고집과 일방성 때문에 어린 시절 상처 입어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해 전전긍긍할 때는, 특히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애를 쓰고 있을 때는 잠시 멈춰서 우리 행동을 돌아봐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중요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 상대의 잘못에 매달려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이를테면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미움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어서, 죄책감이 느껴져서 우리는 부모가 얼마나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부모가 얼마나 미움받을 행동을 하는지 증명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저는 가을나무님의 사연 글 곳곳에서 어머니에 대해 냉정해지는 당신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엄마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당신 자신밖에 모르는군요’ 하는 마음이요.

중요한 것은, 어머니에 대해 그토록 노심초사하게 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을 어머니로 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 속에 어머니가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내 감정과 내 삶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당신 돈으로 물건을 사는 거라면 그 일에 너무 많이 개입하지 마세요. 사실 아무리 간섭해도 어머니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고,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게 실패든 아니든, 어머니도 어머니의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자식들이 그 부담을 지고 있다면 소비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시고 그 이상은 양보하지 마세요.

그리고 가을나무님은 어서 자신의 인생을 사셔야 합니다. 어머니로 향했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셔야 합니다. 고집 세고 이기적인 어머니 때문에 상처 입었던 마음을 누구보다 당신이 위로하고 치유해주셔야 합니다. 당신도 어머니처럼 아니, 어머니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하셔야 합니다.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로 사연을 보내 주세요.

글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