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소리에 몸 들썩이면 마음은 ‘아픔의 문’을 연다”

현대인을 위한 힐링 ④ 음악치료 : 구수정 음악치료사(‘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저자)

등록 : 2023-04-20 16:13 수정 : 2023-04-21 11:12
구수정 음악치료사가 지난 14일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음악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고 있다. 구수정 치료사 주변에 음악치료에 쓰이는 다양한 악기들이 전시돼 있다. 왼쪽부터 가야금, 우쿨렐레, 한 음씩 분리되는 실로폰, 젬베, 레인스틱(빗소리를 내는 악기).

20년 해금 연주자의 ‘독립연주자 꿈’

손 긴장 증상에 포기…눈물로 지새우다

치료사 된 뒤 ‘음악의 새 세계’ 접하게 돼

마음 다친 이에 ‘치유’ 선사하는 날 보내


청각은 인간의 최초이자 최후의 감각

원시시대 ‘자연 소리와 감정’ 연계 이뤄


소리 따라 몸 상태 달라지며 ‘치유 효과’

“한국형 음악치료 개발 위해 박사 공부”

“청각은 오감 중 유일하게 차단할 수 없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4일 구수정(39) 음악치료사에게 ‘음악치료의 효과가 강력한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다.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청각은 엄마 뱃속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는 감각이면서, 심장이 멈춘 뒤에도 2시간까지 남아 있는 가장 늦게 사라지는 감각”이라며 “더욱이 시각·후각·촉각·미각은 자기 의지로 제어가 가능하지만 청각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라도 차단이 어려운 열려 있는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소리를 들은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하게 돼 있어요. 어떤 소리가 싫으면 그 소리를 없애달라는 반응이라도 할 거예요. 치료의 시작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인데, 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치료는 다른 치료보다 소통의 접점이 큰 게 우선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 치료사는 지난 10년 동안 음악치료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오랜 시절을 연주자로 활동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음대에서 학부·석사를 마친 뒤 박사과정에 다닐 때까지 20년 동안 그는 해금 등을 연주했다.

그런데 2010년 세 번째 박사과정 독주회를 마친 뒤 ‘국소이긴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손이 부분적으로 이상하게 긴장하는 증세다. ‘영아티스트’에 선정돼 2년간 국가 지원을 받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그는 손 긴장 증세 탓에 독립연주자로서 활동하려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무너졌던 ‘연주자 구수정’을 다시 일으켜세운 것도 음악이었다. 구수정씨는 2014년 음악치료사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다. ‘연주자 구수정’이 음악 애호가들에게 연주로 감동을 주는 존재였다면, ‘음악치료사 구수정’은 서울여성보호센터 등지에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선사하는 날을 이어가고 있다.

구수정 음악치료사가 지난 14일 서초구 국립국악당에서 가야금을 들고 서 있다

음악치료사로서 보낸 지난 10년은 음악의 힘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골절이 되어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던 어르신이 흥에 겨워 소고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치는 모습, 엄마가 안고 있어도 종일 울던 37개월 된 아이가 음악치료를 받은 뒤 엄마 손을 잡는 모습 등을 경험했다”며 “이런 일은 음악치료가 만들어낸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기적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우선 인류의 탄생 초기인 먼 옛날로 돌아가보자. 여러 학자의 얘기를 종합하면, 원시 인류는 컴컴한 밤 동굴 속에 있어도 ‘차단할 수 없는 청각’을 통해 천둥소리나 빗소리, 지진 등 자연에서 발생한 여러 소리를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소리는 공포와 희망 등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내면적 감정을 일으키는 소리에 반응하고 흉내 내면서 음악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 음악을 하늘에 지내는 제사 등에 활용하게 된다.

구 치료사는 “동양 고전인 <예기>나 서양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도 음악이 감정과 연관된 부분에 주목했다”며 “이에 따라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음악을 통해 백성을 교화할 수 있다고 봤고, 서양의 그리스 시대 때는 정신의 발달을 추구하는 ‘예술과 음악’을 교육에서 기본 교과로 삼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악치료가 현재와 같은 틀을 갖춘 것은 2차대전 이후다. 구수정 치료사는 “전쟁 뒤 미국에서 부상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악인들이 병원에서 연주했는데, 이때 예상치 못한 긍정적 효과를 발견하게 됐다”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병사들의 얼굴이 밝아졌고, 생각보다 빨리 상처가 아물었다”고 설명했다. 음악치료는 이후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나 카를 융(1875~1961)의 심리학이나 버러스 스키너(1904~1990)의 행동주의 이론 등을 토대로 점점 더 정교해졌다.

구수정 음악치료사가 음악치료에 쓰이는 다양한 악기들을 펼쳐놓고 음악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음악치료의 원리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음악을 통한 신체의 변화다. 구수정 치료사는 “가령 몇 시간을 조깅할 때나 러닝머신 위에 있을 때 음악을 들으면 시간 가는 게 좀더 즐겁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 한 예”라며 “음악을 듣고 흥이 나면 호르몬의 변화를 통해 몸이 더욱 활성화되고 평상시에는 팔을 들 수 없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팔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때 음악치료사는 어떤 역할을 할까? 구 치료사는 “음악을 통해 발생하는 변화를 촉진하고 잘 마무리될 수 있게 하는 가이드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가량 음악치료 기법의 하나인 즉흥연주를 보자. 신체기능과 자신감이 떨어진 어떤 이가 음악치료를 받게 됐다. 음악치료사는 그에게 큰 소리를 내라고 한다.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다. 머뭇거리던 이 내담자가 마침내 크게 “악” 하는 소리를 냈다고 하자. 음악치료사는 그에 맞춰 북으로 “두둥” 하면서 호응해준다. 이렇게 음악치료사는 그 내담자가 낸 외마디 외침에 음악적 소리로 응답하면서, 그가 토해낸 외마디 외침이 무의미하지 않게 느끼게 한다. 이렇게 되면 내담자는 ‘이 사람 믿을 수 있겠네. 함께 좀 놀아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하고, 다음의 음악적 행동을 이어간다.

구 치료사는 최근 몇 년간은 ‘한국인에게 맞는 음악치료는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음악치료가 유럽과 미국에서 왔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를 다 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서양에서 보는 인간 심리의 근본 문제는 불안인데, 한국 사람은 불안보다는 억눌림과 화가 더 바탕에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한국인에게 맞는 음악치료는 외국 것과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이런 생각은 그가 민요에 관심을 가지면서 더욱 커졌다. 구 치료사는 “우리 조상들은 민요에 자신의 신세 한탄을 담아 표출하는 등 민요가 정서적 배출구 구실을 한 경우가 많았다”며 “민요는 서양과는 다른 우리 민족 치유 노래의 원류”라고 지적했다.

한국적 음악치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커지면서 그는 2019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음악학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게 된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구 치료사는 “죽은 사람의 넋을 천도하는 굿인 ‘함경도 망묵굿’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인을 위한 음악치료 개발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또 최근 음악치료사로 활동한 경험을 다룬 에세이집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문학수첩 펴냄)를 출간한 구 치료사는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치료를 알려나가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모든 감각 끊으면 ‘소리’가 말을 건다”

구수정 음악치료사의 ‘추천 음악치료’

불안과 스트레스, 억눌림과 화가 많은 현대인이 스스로 시도해볼 수 있는 음악치료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구 치료사는 “음악치료사를 찾는 내담자들은 우울 등의 진단명을 받고 전문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반 현대인도 점점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구 치료사는 현대인이 간단히 해볼 수 있는 치유력 강화 기법으로 ‘침묵 속에서 소리 듣기’와 ‘자신의 18번 목록 만들기’를 제안했다.

‘침묵 속에서 소리 듣기’는 깊은 밤 창문을 열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때 불을 끈 채 눈을 감고 편한 자세로 눕는 게 좋다.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감각은 의도적으로 끊는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신호등 소리, 차 소리, 사람 소리에 집중한다. 구 치료사는 그러면 “괴로운 마음을 비롯해서 잡스러운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며 “이런 소리 듣기는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스위치 구실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구 치료사는 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한 뒤 가장 좋아했던 노래의 목록을 만들고 이를 반복해 듣는 것도 좋은 자기치료행위라고 설명했다. “기분 좋은 순간에 들었던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기분을 마법처럼 되살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