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성북구 숭덕초교에서 정릉2동 마을총회가 열렸다. 주민 100인 원탁회의에서 시장 활성화, 에코 체험 관 활용 방안, 청소년 인권 등을 주제로 조별 토의를 하고 내용을 공유했다. 성북구청 제공
주민이 직접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사업을 계획하고, 마을의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성북구가 그 실험을 하고 있다. 김영배 구청장은 2015년을 ‘마을민주주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주민과 함께 지역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구청장이 큰 의지를 갖고 마을민주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민주주의의 핵심 사업은 ‘마을 계획’이다. 마을 계획은 주민이 직접 마을의 현안을 파악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행정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수립된 계획의 실행 여부는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마을총회에서 결정한다. 2015년에는 길음1동, 월곡2동을 포함한 6개 동에서 시범 실시했으며, 올해는 동선동과 종암동으로도 확대한다.
마을 계획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다양한 교육도 제공된다. 구청에서는 주민 리더 양성 아카데미를 운영해 마을 민주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주민을 길러내고, 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 간의 소통을 위해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미디어 활동도 적극적이다. 성북마을방송 <와보숑>은 주민들이 직접 성북구의 다양한 일상과 사건들을 촬영하고 녹음해 주민에게 전달한다. 마을미디어가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이 중심이 돼 마을 자치를 넓혀가는 변화에는, 주민뿐 아니라 구청의 노력도 있었다. 성북구청은 2015년에 전국 최초로 마을담당관 제도를 마련했다. 2016년에는 마을민주주의과로 확대 개편해 마을기획, 주민참여, 마을미디어 등 주민자치 활성화를 돕는 사업을 하고 있다. 기존의 부서들도 업무를 과제 중심으로 바꿔 부서 간 협업을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
주민과 관료 사이의 간극을 행정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도 있다. 성북구 마을·사회적경제센터는 주민이 행정력을 좀 더 쉽게 이용하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마을공동체나 사회적 경제에 복무하는 실무가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주민이 구정의 주요 정책을 토론하고 제안하는 ‘주문주답'(주민이 묻고 주민이 답하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쓰레기 절반 줄이기를 주제로 110여 명의 주민과 전문가들이 모였다. 주민의 의견을 골고루 듣기 위해 토론회 참석자를 전체 주민 중에서 무작위로 뽑아 구성했다. 이는 추첨제 민주주의의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성북구의 마을민주주의 사업은 관료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수평적 협력관계로 변화시키고 있다. 관료는 시민사회가 주민과 직접 활동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적극 받아들이고, 시민사회는 구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견제하며 협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북구의 사회적협동조합 ‘함께살이성북’의 이소영 이사장은 “주민들이 구청 안으로 깊게 들어가서 구정을 바로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과장급 공무원들이 주민들과 함께 워크숍을 열어 4시간씩 서로 터놓고 비판하고 역제안을 하기도 한다”고 성북구의 변화를 설명했다.
마을민주주의로 향한 성북구의 변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청이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주민들을 움직이다 보면 주민들이 수동적으로 변하거나 힘에 겨워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소리다. 시민정치는 주민들의 일상과 필요 속에서 시작해야 하며, 민과 관 모두 끈기를 갖고 함께 해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김찬우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조현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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