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있는 유대교 회당. 1938년 일부 훼손됐으나 다행히 다 타지 않고 남아 있다. 이재인 제공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종 불평등론>과<19세기의 기반>에서 고비노와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인류를 높고 낮은 인종으로 구분하고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백색 인종으로 둔갑한 아리아인의 우월함은 이후 국가사회주의의 뿌리가 된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만행까지 이 책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케케묵은 고서에서 발췌한 궤변의 일부에 나르시시즘을 입혀 진리로 둔갑시키고, 그것으로 권력의 칼을 갈아 휘두른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사상, 나치즘이야말로 추악한 이단의 전형이다.
1938년 11월7일, 17살의 폴란드계 유대인 청년 헤르셸 그린슈판은 파리 주재 독일 외교관 에른스트 폰 라트를 암살한다. 외교적으로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아리아인이 분명했던 라트가 결국 사망하게 되는 이 사건은 나치들에게 아주 좋은 선동의 기회가 된다.
“우리 독일 민족이 이 일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직도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우리의 상권을 점령하고 삶을 누리며 독일인에게 집세를 받아 챙기고 있는 와중에, 밖에서는 같은 족속의 인간들이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독일 외교관을 쏘아 쓰러뜨렸다. (…)”
결국 이 사건은 1938년 11월9일부터 10일 사이에 벌어진 11월 포그롬, 일명 ‘크리스털의 밤’을 촉발한다. 폭력과 방화로 1400채가 넘는 유대교 회당이 불에 타고 집과 상점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여자들이 농락당하고 남자들이 고문에 쓰러지는 가운데, 그 기간에만 4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고 이후 3만 명이 강제 수용되는 비극을 낳은 것이다.
1938년 11월9일 오전, 독일 만하임에서 한 소녀가 목격한 장면이다. “산산이 부서진 식료품 가게의 유리창으로 사람들이 통조림 깡통들을 밖으로 나르고 있었다. 2~3층쯤 되는 곳에서 피아노 한 대가 떨어져 부서지더니 다른 창문으로는 라디오가 날아와 처박혔다. 차도며 보도며 온통 부서진 유리와 도자기 조각들로 뒤덮였다. 창문 유리만이 아니다. 한구석에 베이클라이트로 만들어진 빗이 떨어져 있었다. 값비싼 물건이었다. 내가 그것을 주우려 하자 엄마는 내 손을 탁 치며 나를 잡아끌었다.”
거리를 뒤덮은 유리 파편들이 가로 등불 밑에서 빛나던 밤, 크리스털의 밤 풍경이 그려진다. 그 이름마저 조소에 찬 크리스털의 밤, 이날의 참상은 과연 유대인들만의 비극이었을까?
소방관들은 지옥으로 변해가는 도시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유대인을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소리치며 죽어가는 이들을 방치해야만 했다. 유대인을 위해서는 사망진단서를 발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날을 회상하며 아픔에 눈물짓는 것은 정부가 아니다. 소방관이며, 의사들이며, 할머니가 된 어린 소녀들이다.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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