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박물관이 <동의보감> 간행 410년을 기념해 약초를 주제로 ‘동의보감 속 약초 민화전’을 10월8일까지 연다. 한 관람객이 지난달 27일 허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 전시된 작품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민화 작가 46명 참여 50여 점 출품
도자기·한복·휴대폰케이스 등 다양
무병장수 기원하며 약효 쉽게 각인
“세계 속 ‘케이아트’로 육성할 만해”
“박물관이라고 하면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라 분위기가 다소 어두운데, 밝으면서 강렬한 민화 전시로 눈이 즐겁지요.”
지난달 27일 방문한 강서구 허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들머리에 청화백자 한 무리가 눈에 띄었다. 직접 만든 접시, 꽃병, 찻잔에 약초 박하를 표현한 작품 <휴식>(강명희 작가)이다. 다소곳하게 있는 모습에서 차 한잔 즐기며 쉬는 여유를 떠올려볼 만했다. 박하(조선시대 약초명 영생이)는 두통, 발열, 눈 충혈, 현기증, 복통을 다스리는 데 쓴다. 허준박물관이 <동의보감> 간행 410년을 기념해 약초를 주제로 ‘동의보감 속 약초 민화전’을 10월 8일까지 연다. 김쾌정 허준박물관장은 “민화도 알리고 약초도 알리고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약재가 1212종 나온다. 이 가운데 할미꽃, 둥굴레, 모란, 구절초 등 우리에게 익숙한 50여 종을 주제로 현대 민화 작가 46명이 회화, 도자기, 직물(패브릭), 생활용품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창작 민화 작품을 선보였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 민화 작가들이 그린 개성 넘치는 다양한 약초 민화 작품에서 약으로 사용하는 약초의 효능을 이해하고 민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김 관장은 “민화는 순수하고 소박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표하는 장르로 약초와 민화의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 약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연과 건강, 약초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뜻깊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김쾌정 허준박물관장이 도자기에 그린 약초를 설명했다.
회화, 도자기, 부채, 한복, 휴대폰케이스 등 소재와 표현 기법도 다양했다. <바램>(강효숙)은 쥘부채에 ‘닭의장풀’(달개비꽃)을 그렸다. 다양한 효능을 지닌 달개비꽃의 청초한 모습을 벌과 함께 부채에 오롯이 담았다. 한자 전서로 목숨 수(壽)를 세 가지 형태로 넣어 건강과 장수도 염원한다. 달개비는 모든 부위를 약으로 쓰고 혈변, 혈뇨, 이질에 좋다. <오미자>(고은진)는 오미자화채를 표현했는데, 오미자를 우려낸 과즙에 꿀이나 설탕을 넣고 배를 모양내어 띄워낸 음료로 강한 신맛이 피로와 갈증 해소에 도움을 준다. 오미자 열매는 눈을 밝게 하고 기침, 빈뇨, 요실금, 피로, 가슴 두근거림에 쓴다.
한복에 염색한 <좋은 봄날>(박은영)은 내면의 열정을 단아하게 피워내는 연꽃을 표현했다. 청초한 모습처럼 몸과 마음의 피로가 가벼워지길 바라는 소원을 담았다. 연꽃은 꽃과 잎을 모두 약으로 사용하는데, 마음을 안정시키고 몸을 가볍게 한다. 발열, 복통, 출산 후 어지럼증, 수종에 쓴다. <용담>(윤은정)은 한지에 혼합재료를 사용했다. 웅담보다 쓰다 하여 ‘용의 쓸개’라 불리는 용담을 입체감 있게 표현해 용의 신비스러운 기운을 받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더했다. 용담은 황달, 배뇨 곤란, 충혈, 난청, 고열, 경련에 쓴다.
<대조(대추)>(이혜원)는 한지로 만든 소반, 차반, 정과반, 직과반에 대추를 표현했다. 대추꽃과 열매를 한 줄기로 구성하고 책표지에 능화판을 밀어 디자인했던 동의보감의 실제 책표지 제작기법을 따라 만들었다. 능화판은 우리나라 옛 책의 표지에 다양한 무늬를 박아 넣는 데 사용된 목판을 가리킨다. 대추는 속을 편하게 하고 오장을 북돋는다. 귄태감, 식욕부진, 불안감, 불면증, 기침, 복통에 쓴다.
<소망>(안옥자)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상다리 모양이 호랑이의 다리 모양으로 된 소반’인 호족반에 소나무를 표현했다. 송화와 송홧가루는 풍 제거와 지혈, 원기보충에 쓴다.
필통, 볼펜, 엽서, 테이프 등 다양한 용품에 의인화한 인삼을 재밌게 표현했다.
엠제트(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진생토피아>(장윤영)는 많은 사람의 건강을 기원하며 십장생도를 배경으로 인삼을 그렸다. 인삼을 의인화해 재밌게 표현했고, ‘팝아트’도 살짝 더해 요즘 유행을 반영했다. 진열장 안에는 휴대폰케이스, 열쇠고리, 볼펜, 엽서, 셀로판테이프 등에도 인삼이 앙증맞게 표현돼 있었다. 김 관장은 “아주 재밌는 작품이 나왔다”며 웃었다.
“무병장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이자 욕망입니다. 우리 조상은 약초를 민화를 비롯해 도자기, 필통, 자수, 베개 등 공예품과 건물 벽, 창문 등에 그리거나 수놓았죠. 특히 민화에 약초를 활발하게 그려 생명 유지력과 마인드컨트롤(스트레스 조절법)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이 전시회와 관련한 논고 ‘민화 속의 약초꽃’을 쓴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장의 설명이다.
옛 민화 속에는 삼(인삼), 황기, 하수오, 더덕, 도라지, 둥굴레, 칡 등 익숙한 약초가 많이 등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백합, 모란, 부용화, 승검초, 천궁, 능소화 등 화려한 꽃도 약재로 그렸다. 신선, 십장생 등 옛 민화를 대표하는 장생도에도 대부분 약초가 그려져 있다.
민화에는 소원 성취를 바라는 ‘주술 원리’도 숨어 있다. 김 관장은 “약초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며 “자연 속 약초의 밝은 색감은 우리에게 무한한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데, 약초의 효능까지 생각하면 더욱 특별한 에너지를 전달받게 된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 세계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질병의 위력과 건강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약초로 가족과 이웃을 살리고 전염병과 맞서 싸우던 조상의 지혜를 배우고 지금도 여전히 건강과 웰빙에 중요한 약재, 식품으로 활용하는 약초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김 관장은 “10년 전만 해도 민화 인구가 20만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30만~40만 명을 헤아린다”며 “케이(K)아트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데, 민화도 ‘전통에 기반한 케이아트’ 역할을 당당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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