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어느 쪽이에요?” 길에서 수시로 받은 질문이다. 서울시에서 나눠준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를 들고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백악곡성, 북악마루, 남산 포토아일랜드처럼 뾰족 솟은 곳이라면, 사람들은 ‘야호’를 외치는 대신 청와대를 찾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옛 기록을 보니, 도시락을 싸서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일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놀이였다. ‘순성’이라 했다. 당시 도성 안팎의 사람들을 그린 풍속화가 박물관에 남아 있다. 오늘이야 서울이 차 한 번 타면 금방이지만, 서울이 궁금했던 옛사람들은 모처럼의 서울을 기억하려고 새벽녘 출발해 해 지면 돌아오는 순성을 했다. 트레킹화로도 쉽지 않은 길을 짚신이나 고무신을 신고 하루 내내 걸었다. 산꼭대기마다 궁궐이 보이면 “여기가 그 서울이구나”, “저기 우리 임금이 산다”며 감탄했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큐레이터가 일러준다.
그 풍속이 21세기 오늘날 서울과 겹쳐 보인다. 남산 자락 전망대에서 진주 출신 대학생이 “여기가 서울이네. 저쪽에 대통령이 산다는 거지?” 하며 여자친구에게 운을 뗐다. 커플이 떠난 자리를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들이 채웠는데, 대뜸 “하야!” 하고 소리를 질러 주변 어른들이 웃기도 했다.
인왕산을 오를 때는 어귀마다 의경들이 가방을 좀 보자는 일이 있었다. 주변에 계시던 시민 두 분이 분개하며 소리쳤다. “나쁜 놈들! 여자 가방은 전두환 시절에도 그렇게 막 안 열었다!” 나중에 길에서 다시 만난 두 시민에게 한양도성을 순성하는 이유를 물으니, 허허 웃으며 “청와대가 뭐하나 보러 왔다”고 했다. 장난과 진담이 섞인, 정확히 17번 들은 ‘도성 여행의 동기’였다.
구간을 여러 번 나눠 걷다 보니 약 27㎞ 정도를 걸었다. 한국인 38명과 외국인 17명을 만나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눴다. 한양도성길을 걷는 이유를 물었을 때, 수치상 72%의 시민이 “청와대 구경 왔다”고 답했다. 구경하며 무엇을 했는가 물었더니 “뭐 한 것 없다. 그냥 좀 봤다”고 한다.
환경보호단체 소속 아이들을 이끌고 온 교사 한 분은 한양도성 사대문의 이름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임금 된 도리를 뜻하는 ‘인의예지’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는 것을 설명하며 “여긴 대통령이 한 바퀴 걸어야 하는 길이죠” 했다. 11월 둘째 주부터 셋째 주까지, 한양도성길을 걷던 일부 시민들의 순성기다.
•서울 한양도성을 걸으며 도장 4개를 모으면 ‘완주 기념 배지’를 준다.
•‘흥인지문 관리소’, ‘강북삼성병원 정문 보안실’, ‘말바위안내소’, ‘숭례문 초소’ 총 4곳에서 지도를 얻을 수 있고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다.
•말바위안내소와 숭례문 초소는 월요일에 쉰다.
•북악산 구간에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서울시 한양도성 누리집에서 해설사 예약을 하면, 도성길 내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예약 사이트와 문의 안내
중구청: tour.junggu.seoul.kr/02-3396-4623
전현주 문화창작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