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함께 행복한 사회, ‘동행’하면 가능합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모범으로 정치하는 풍토 만들어야 지방분권도 가능,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 기여하기가 꿈

등록 : 2016-11-24 14:37 수정 : 2016-11-24 14:38
지난 8월 대동경로당을 고쳐 새로 문을 연 공동작업장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한 김영배 구청장(가운데 사진). 성북구가 최초로 시작한 사업 대부분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중앙정부까지도 배워서 할 만큼 모범으로 손꼽힌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 하는 것. 성북구는 25개 자치구 가운데서도 유독 ‘최초’ 기록이 많다. 대한민국 최초 유니세프 선정 ‘아동친화도시’, 서울시 최초 ‘친환경 무상급식’, 전국 최초 청년지원팀 신설과 청년지원 기본조례 제정, 1인 기업인을 위한 공공원룸 ‘도전숙' 마련, 사회 양극화 해소 위한 ‘생활임금제도' 시행 등 성북구가 내놓은 정책들은 지방정부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정책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다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많은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행(同幸)계약서’를 통해 상생하는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는 김영배(49) 성북구청장을 성북구 길음동 ‘어르신 공동작업장 4호점’에서 만났다. 어르신들은 “손주들에게 줄 용돈을 벌게 해준 고마운 구청장”이라며 김 구청장을 반겼다.

세대가 화합하는 공동작업장

“여기가 원래 대동경로당이었어요. 길음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아파트 단지에 경로당이 생겼잖아요. 경로당 수요가 줄었지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경로당을 일터로 바꾸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가 네 번째죠.” 경로당은 지난 8월 개조해서 ‘친환경먹거리사업단 제조판매장’으로 바뀌었다. 길음종합사회복지관이 관리를 맡은 작업장은 청년기업 밈컴퍼니와 성북구 마을부엌협동조합 등 4곳에 요일별로 일을 나누어 맡기고 있다.

경로당이 작업장으로 바뀌면서 어르신들의 손에는 시간 보내기용 화투장 대신 “손주에게 줄 용돈”을 버는 작업 봉투가 들리게 됐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통장을 들어 보이며 “월급 받는 할머니”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작업장은 어르신의 일터로만 쓰이지 않는다. 어르신 세대와 청년 세대가 함께 꿈을 키우는 공간이자, 지역사회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게 만든 힘이었다.

1992년 학생운동의 핵심 조직인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 연합) 중앙위원을 지낸 김 구청장은 2010년 성북구청장에 선출됐다. “서총련 때는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정치는 늘 진실을 피해 간다는, 일종의 적대감을 갖고 있었거든요.”


김 구청장은 대학을 졸업할 즈음 청년운동과 노동운동, 일반 기업 세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 일반 기업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취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18개월 동안 회사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보람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1997년 전국 최연소 구청장 비서실장으로 세상을 바꾸는 자리로 돌아왔다. 새벽 6시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벅찬 업무지만 몸은 생생하고 마음은 즐거웠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일하게 됐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직접 나서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민선 5기 지방선거에 성북구청장으로 입후보해 당선됐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구민이 구정에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참여자치 실현”이라는 김 구청장의 당선 소감은 당시만 해도 낯선 구호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요? 친환경 무상급식 아닐까요” 2010년 김 구청장이 성북구 관내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논란을 일으키며 사회적 화두로 등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주민투표까지 시도하다가 결국 그만뒀잖아요.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면서 보편적 복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죠. 그런 의미에서 성북구가 새 시대로 가는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좌우명을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꼽은 김 구청장은 정치를 “공존을 위한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자치구를 책임지는 구청장이 맞닥뜨려야 하는 대한민국 정치 시스템은 공존과는 거리가 멀다. 성인기에 접어든 지방자치만 해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각자가 각자의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야말로 성숙한 사회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보다 분권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김 구청장은 다양성과 대표성이 보장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우선 두 가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당 시스템은 다양성이나 대표성을 보장할 수가 없어요. 정치는 기본적으로 민심에 기초해야 하는데, 현재의 지방의회는 민심에 기초하기 어려워요. 당 위원장이나 국회의원의 눈치를 안 볼 수 없거든요.” 김 구청장은 현재의 정치를 “여의도에 꽃만 화려하게 핀, 그러나 뿌리가 없어서 말라 죽어가는” 모습에 비유했다.

뿌리를 든든하게 하려면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자기 삶과 관련해 다양한 요구들이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을 비롯한 여러 갈등을 해결하는 대안을 만들려면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가 필수적이지요.”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의를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화이부동을 좌우명으로 갖고 있는 김 구청장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존이 보장돼야 하고, 공존은 경쟁과 협력을 인정하는 민주적 의사 결정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부정적 의견이 많은 지방의회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가 획일적인데다 지방 권력과 중앙 권력이 너무 위계적이라고 전제하며 “민주주의는 선출직이 중요해요. 자치구나 서울시부터 의회중심주의를 채택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구의원 중에서 구청장이 나오고, 시의원 중에서 시장을 뽑는 거지요. 시장 하고 싶은 사람들이 시의원에 나서고, 구청장 하고 싶으면 구의원에 나서야 하는 구조가 되면 지방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김 구청장은 “구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역할을 높이는 등 기초의회를 활성화하는 길이 분권을 강화하는 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동행계약서로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 확인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보다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시대의 요구라는 김 구청장은 “모범으로 정치하는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서로 협력하고 위로하고 보듬는 것이 정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하는 사람을 서로 칭찬하고 세워주는 것을 모범으로 삼아 정치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모범으로 정치하는 풍토를 당당하게 강조할 수 있을 정도로 성북구는 많은 걸 이미 이뤘고 또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성북구 상월곡동 동아에코빌 아파트에서 시작한, 경비원 등 취약계층과 더불어 함께 행복하자는 ‘동행계약서' 쓰기 정책 역시 서서히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김 구청장은 명함에 동행 구청장이라고 새길 정도로 동행계약서 확산에 열심이다. “자기 돈을 쓰면서 즐거워하잖아요. 사람은 경제적 유인으로 움직인다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입증한 거죠. 호혜성과 협력성 등을 증명한 동행계약서야말로 공존을 모델로 한 인간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 거죠.”

김 구청장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당시 ‘온전한 지역 공동체 복원’을 목표로 ‘더불어 사는 성북, 사람이 우선되는 성북’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동행은 이 약속이 지역을 바꾸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 ‘구청장이 간다’ 연재를 마칩니다. 인터뷰에 협조해주신 25개 자치구청장과 관계자, 관심 가져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