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해 질 녘 낙산공원 성곽길은 호젓함으로 물든다
한양도성길 낙산·남산·북악산 구간 걷기
등록 : 2016-11-24 14:40 수정 : 2016-11-24 16:22
낙산, 전현주 문화창작자
혜화문~낙산(낙산공원)~흥인지문(동대문)~광희문(3.3㎞ / 1시간 30분) “하루에 다 걸을 수 있나요?” 독일에서 왔다는 마이크 슈바이처(47)씨가 내게 물었다. 흥인지문 공원에 있는 ‘한양도성박물관’에서 만났다. 전시관 속 서울과 도성 모형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업차 출장 왔다가 이틀 시간 내어 서울 구경에 나섰거든요. 동대문 보고 신기해서 걸어왔다가 여기까지 성곽길이 이어져 들어왔어요. 정말 인상적이네요.” 마침 기획전시실에서 ‘푸른 눈에 비친 한양도성’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1886년 퍼시퍼 로웰이 쓴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 기행문이 전시관에 소개됐다. 한양도성의 의미와 8개의 문을 두고 ‘웅장한 건축물이라 감탄했다’는 기록이었다. 마이크 슈바이처 씨가 말을 이었다. “저는 뮌헨 출신인데, 거긴 이런 형태의 조형물이 없으니까요. 동대문과 한양도성은 친절한 서울 사람들과 닮았어요.” 혜화문에서 출발해 동대문을 거쳐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낙산 구간’은 언덕이 완만하다. 걷기가 편해서 대부분 목적 없이 나왔다가 동대문까지 이른다. 해 질 녘 엘이디(LED) 조명이 밝히는 ‘낙산 구간 성벽 야경’은 서울 10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힌다. 성곽길 줄기마다 장수마을, 이화동 벽화마을, 창신동 봉제마을 등의 성곽마을이 포도송이처럼 달렸다. 밝은 달이 오르면 호젓한 마을 정취가 살아난다. 새로 이사 온 젊은이들도 작은 공방과 카페로 골목을 꾸몄다. 때문에 서울을 탐방하는 친구나 커플 여행객,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홍콩에서 온 스물두 살 동갑내기 친구 퍼시와 카이윈도 마찬가지였다. “이화동 벽화마을에 왔다가 길 따라 왔어요. 쇼핑·먹거리만 기대했는데, 서울에 이런 평화롭고 귀여운 길이 있을 줄 몰랐어요” 하며 성곽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올라온 동네 주민 이소연(48)씨도 창신동을 바라보며 머물고 있었다. “친구와 지나가다가 한 시간째 걷고 있어요. 혜화동에 사는데, 성곽길을 정비하고 복원 중인 모습이 보기 좋아요.” 일제강점기 시절 전찻길을 낸다고, 동대문 양옆의 성벽을 부순 흔적이 있다. 상처가 길이 되어 버스와 화물차, 상인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오간다. 남산 구간(숭례문) 광희문~목멱산(남산타워)~숭례문(5.2㎞/3시간 30분)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예부터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기도 했다. 현판 글씨에 압도되어 주눅 드는 한편, 서울을 실감하고 뿌듯해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지난 2008년 문루 2층이 불에 타 무너지던 모습을 침통하게 바라봤던 시민들이 여전히 이 주위에서 성곽 답사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경기도에서 온 황미(52)씨 가족은 4인이 오붓하게 해설사와 걷고 있었다. 광희문에서 시작해 남산을 넘어 숭례문을 향하며 ‘한양도성 스탬프 투어’를 시작한 참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이 될 것 같아 서울시 한양도성 누리집에서 ‘해설사’ 신청을 했어요. 이른 아침에 시작해 4시간째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더 좋아하네요.” 정말일까? 둘째 딸 김나연(11)양에게 힘들지 않으냐 물었다. “하나도 안 힘들어요. 새로운 걸 많이 보니까 재밌었어요. 겨울방학 안에 한양도성길 다 걷고, 배지도 받을 거예요.” 반나절 동안 가족과 동행한 문화해설사 신성덕씨는 “강단에서 은퇴한 뒤 10년째 서울시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어요. 한양도성길은 4년째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서울을 걷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하며 아이의 말에 뿌듯해했다. 한양도성도감의 심말숙 과장은 “남산 구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남산타워 부근은 태조가 처음 성곽을 쌓을 때 쓴 돌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비가 내리는 날은 유독 아름답습니다” 했다.
숭례문 초소에 마련된 스탬프 찍는 장소, 전현주 문화창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