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거두면 나누리, 마르쉐 장터
‘도심의 농촌’ 꿈꾸는 이들의 한국형 파머스마켓
등록 : 2016-11-24 14:43
지난 13일 동숭동 마로니에광장에서 열린 마르쉐 장 풍경. 매달 둘째 주 일요일엔 혜화에서, 넷째 주 일요일엔 명동성당 1898광장에서 열리는 장은 7000~8000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하다.
13일 장터의 주제는 ‘토종’. 30여 종의 토종 벼와 온갖 종류의 콩·팥·수수·옥수수·밀·조 등 잡곡, 토종 김장 재료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온갖 토종 고구마·감자·박·호박 등이 올라왔다. 장의 중심은 아무렴, ‘싸전’. 토종 벼를 알리고 보급하기로 의기투합한 10명의 농부가 운영한다. 대전 ‘더불어농원’에서 7종, 홍성 ‘자연농’에서 5종, 고양 ‘우보농장’에서 20여 종을 냈다. 싸전 앞에는 그날 도정한 토종 쌀로 밥을 짓는 밥통이 하나씩 올라 있는 상이 열차 객실처럼 늘어서 있다. 손님들은 버들벼(대전 더불어농원), 알큰차나락(완주 송광섭 농부), 금도(공주 황진웅), 조동지(홍성 이연진), 자광도(김포 박재선), 졸장벼(나주 김도우), 대관도(군포 김재규), 흑갱(홍성 금창영), 백석(경기도 광주 김석우), 자치나(고양 우보농장) 쌀밥을 1500원에 3종씩 골라 먹을 수 있다. 플레이트에 밥을 배식받은 이들은 동화박스프, 토종콩함박, 강냉이범벅, 생강지짐, 자염부석태, 청국장, 토종콩커리 등을 파는 요리 부스로 발길을 옮긴다. 그 옆에는 앉은뱅이밀 난, 토종쌀 그래놀라, 조동지현미 디저트 등 각종 토종 디저트 부스가 줄지어 있다. 각지의 농부들이 자신이 가꾼 작물로 개발한 음식들이다. ‘싸전’ 옆에는 ‘잡곡전’. 얼룩배기찰옥수수·검은찰옥수수·노랑메옥수수(양양 김혜영 농부)·잿팥·붉은팥·녹색팥·개골팥(논산 신두철 권태옥)·남도장콩·흰제비콩·검은동부·청태·쥐눈이콩(장흥 허이숙)·청차조·메조·붉은기장(제천 정연석)·까치수수(고양 맹추농장) 등 생전 처음 듣고 보는 우리의 옛 잡곡들이 모여 있다. 김장 채소전에도 구억배추·연길무(고양 이상린 농부), 이천 게걸무·개성배추(여주 송기봉), 달롱파·삼층거리파·무릉배추(논산 신두철), 월동갓(파주 김명희), 진안대파(남양주 이명희) 등 순 토종들만 있다. 이 밖에 조롱박·동아박·토종박·떡호박·애호박·돌호박·약호박·맷돌호박·희물고구마·자주감자·초석잠·흰계란가지 등이 좌판에 앉아, 할머니들이 오래전 들려줬을 법한 옛날 우리 음식 이야기를 전한다.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토종 나눔 마르쉐@혜화에서는 김혜영 농부 중심으로 3월부터 2개월에 한 번씩 토종씨앗나눔 행사를 해왔다. 오는 이들에게 거저 주는 행사였다. 그때 나눈 씨앗들이 이렇게 장성해 열매로 돌아오기도 했으니, 농부들에게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회가 새롭다. 이 땅에서 수백, 수천 년 동안 우리 기후와 토양에 맞게 뿌리내린 토종들이 더 널리 더 많이 퍼져 이웃들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 토종씨앗나눔이들의 꿈이었다. 밥을 먹는다는 건, 단지 배를 채우고 입맛을 채우는 게 아니라, 바람과 비와 햇빛과 농부의 땀과 기도를 함께 먹고 느끼는 것. 나와 이웃 그리고 자연에 이로운 성실한 밥상이야말로 더 사람다운 세상,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고 마르쉐 사람들은 믿는다. 그날 야외공연장에서는 작은 밴드 ‘푼돈들’이 밥과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다목적 홀에서는 김신효정 농부가 ‘할머니의 비밀스런 토종레시피’를 전수했다. 해가 바뀌지만 농부들에게는 사라지는 게 없다. 이어지고 또 이어질 뿐. 그사이 마디마디에는 수더분하고 따듯하고 고소하고 든든하고 질긴 장터가 있었다. 글·사진 김재광 이근이 김진아 도시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