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야, 놀자

아빠도 아이처럼 마음껏 놀 수 없을까?

등록 : 2016-03-31 14:25 수정 : 2016-05-20 11:52
놀이터에 다시 봄이 왔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 말뚝이’를 해보겠다고 나선 지 꼭 1년이 지났다. 물론 놀이터와 인연을 맺은 건 만 5년 전으로 딸아이를 직접 돌보면서부터였다. 그사이 놀이터는 때 되면 먹는 밥처럼 딸에게나 나에게나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입장은 같은 듯 달랐다.

딸아이는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증명하듯 놀이터 곳곳을 쉴 새 없이 누볐다. 나도 머리로는 그 말을 열렬히 지지하며 꼭 실천하겠다고 같이 뛰다 결국 체력을 감당하지 못해 헉헉거렸다. “얘들은 도대체 언제 지치는 거야!” 여기서 끝이면 좋겠지만 늘 더 큰 복병이 기다린다. “이제 들어가자!”라고 하면 돌아오는 건 “쪼금밖에 못 놀았다고요!”라는 외침이다.

“들어가자!”는 말을 듣고 순순히 들어간다면 ‘어디 아이겠는가’ 싶지만 세 시간 넘게 놀았는데 이러면 어이가 없다. 더욱이 밀린 집안일이 아른거릴 때면 신경전은 종종 “아까 들어가기로 했잖아. 자꾸 이럴래!”라는 아빠의 권위를 앞세운 윽박지르기로 끝난다. 이럴 때마다 “어른이 도대체 애한테 뭐하는 거지!”라는 후회가 밀려든다.


이런 실랑이와 후회 사이를 오가던 어느 날이었다. 딸과 친구들이 놀이터 모래밭에서 둘러앉아 모래 놀이를 했다. 그런데 잠깐 다른 곳을 보는 사이 한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친구 어디 갔어?”

“저기 누워 있어. 병원 놀이 해. 약초 구해야 해.”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나뭇잎을 뜯어 모래와 같이 통에 넣어 친구에게 줄 약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중이었다. 아픈 척 누워 있던 아이는 약을 먹는 시늉을 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죽었다고 할까?”

“죽었으면 못 살려. 폐렴 걸렸다고 하자. 가슴 붙잡고 쓰러지는 거.”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가슴을 붙잡고 쓰러지듯 누웠다. 병원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지겨워하지 않았고 병에 걸린 아이는 진짜 병에 걸렸고 약을 만드는 아이는 진심으로 약을 만들었고 의사는 그 어떤 의사보다 진지했다.

그때 ‘나도 아이들처럼 이곳에서 마음을 다해 놀 수 있는 방법이, 좀 더 우아하게 시간을 보낼 나만의 방식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 끝에 늘 그 시간이면 그곳에 있는 놀이터 말뚝이가 되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하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같이 놀자고 할 때 같이 놀자.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자.”

지난 1년, 놀이터에서 지내며 무엇을 보았을까. 언제나 열렬히 뛰어놀 준비가 되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학원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러 치열하게 놀다 총총히 사라지는 아이들 역시 보았다.

박찬희/자유기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