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 문학기행

지옥 같은 세상을 소풍 온 것처럼 살다 간 시인

수락산 아래 ‘귀천’의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등록 : 2016-11-24 22:14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이라는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이 시 구절을 외며 수락산 자락을 찾았다. 천상병 시인은 수락산 자락에서 살았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공원과 시를 새긴 나무판이 수락산 자락에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터

1967년은 천상병 시인에게는 지옥 같은 해였다. 이른바 ‘동백림(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한자로 적은 지명) 사건’에 연루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 6개월 가까운 기간 옥고를 치렀다. ‘동백림사건’은 1960년대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간첩단 사건으로, 사건과 연루된 200여 명을 조사했고, 사형을 포함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지만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6개월 가까운 기간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해야 했던 천상병 시인은 몸과 마음이 다 무너졌다.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 영양실조 때문에 서울 시립정신병원 신세까지 져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서 나오게 됐고, 목순옥씨와 결혼을 하면서 둥지를 튼 곳이 수락산 자락이었다.

목씨 조카의 말에 따르면 수락산 자락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이 ‘백인(운)동’이었다. 그는 정확한 주소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백인동 혹은 백운동으로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1년을 채 살지 못하고 상계동 1117번지로 이사했다. (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 김병호 부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천상병 시인이 살던 상계동 1117번지는 지금 주소로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42나길 27이다. 지금은 빌라가 들어섰다. 천상병 시인은 1980년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그때 쓴 시 중에 ‘수락산변’이라는 시도 있다.

목씨 조카는 천상병 시인이 상계동을 떠나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이사한 집이 있는데 그 주소는 기억하지 못했다. 천상병 시인은 그 집에서 잠깐 살았다. 그리고 장암동 379번지(나중에 384번지로 변경)로 이사했다. 그곳이 천상병 시인이 살았던 지상의 마지막 집이었다.


수락산 자락에 있는 천상병 시인의 흔적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로 돌아서 조금 가다 보면 2층에 롯데리아 간판이 보인다. 그 건물을 끼고 우회전 후 직진하다 보면 극동아파트 103동이 보인다. 그 앞 경서레디빌 B동이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시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표시 하나 없다. 골목길 빌라 앞에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큰길로 나가 수락산 방향으로 걷는다. 도롯가에 세워놓은 시설물에 ‘수락문’이라는 글이 보인다. 그곳부터 한신아파트 101동 전 ‘시인 천상병 공원’까지 가로등 기둥에 천상병 시인의 시를 새겨놓았다.

시 한 편 읽고 걷고 또 한 편 읽고 걷기를 반복하며 시인 천상병 공원에 도착했다. 시인의 시 ‘귀천’에서 이름을 딴 정자 귀천정이 있고 ‘귀천’을 새긴 시비와, ‘수락산변’을 새긴 시비도 보인다.

천상병 시인의 상도 있다. 시인의 팔을 잡고 떼를 쓰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는 또 다른 아이 그리고 천상병 시인 모두 환하게 웃는다. 고무신 한 짝이 벗겨진 시인은 맨발이고 벗겨진 고무신은 강아지가 가지고 논다. 그 옆에는 타임캡슐이 있다. 2130년 1월29일 타임캡슐은 열린다. 과연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 후세 사람들에게 시인의 마음을 전할까?

공원을 지나 수락산 등산로 방향으로 걷는다. 시인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길 오른쪽 옆으로 계곡이 흐른다. 계곡을 건너지 말고 직진해서 올라가다 보면 화장실이 나온다. 화장실 앞부터 천상병 시인의 시를 새긴 나무판이 등산로를 따라 놓여 있다. (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에서 수락산 자락에 살았던 천상병 시인을 기념하려고 만든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시 ‘수락산변’을 적어놓은 나무판도 보인다. ‘풀이 무성하여, 전체가 들판이다./ 무슨 행렬인가 푸른 나무 밑으로/ 하늘의 구름과 질서 있게 호응한다.// 일요일의 인열(人列)은 만리장성이다./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막무가내로 가고 또 간다// 기후는 안성마춤이고 땅에는 인구(人口)/ 하늘에는 송이구름’

귀천

수락산 자락에 있는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사동에 있는 찻집 ‘귀천’이 생각났다. 목씨가 살아 있을 때 몇 번 찾아가 모과차를 마셨다. 마지막으로 모과차를 마신 게 아마도 초겨울 즈음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따듯한 모과차가 담긴 찻잔을 들고 손을 녹이며 목씨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귀천은 현재 목씨 조카가 운영하고 있었다. 모과차를 시켰다. 찻집에는 찻집의 공기가 있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 실내에 퍼지는 온기 머금은 수증기, 모과 향, 커피 향, 주문한 탁자마다 올려놓은 잔에서 피어나는 차 향이 그윽하다.

밤이 내린 거리로 나서면서 내일 밝을 때 오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귀천에서 차 한잔 마시며 목씨 조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목순옥씨와 천상병 시인 부부를 생각했다.

“시를 쓸 때는 책상에 앉아 원고지에 직접 쓰셨는데, 한 편의 시를 막히지 않고 써 내려가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말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억지로 꾸미지 않은 말투로 말을 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이들도 좋아했어요. 천상병 시인은 성정이 맑았습니다.”

차향 퍼지는 귀천에 앉아 살아 있을 때, 천상병 시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살았다던 소풍 같은 세상, 어떤 누가 그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