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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훈련생 66%가 취업 성공”

발달장애인-기업 ‘취업 다리 역할’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

등록 : 2023-06-08 15:13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이 1일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에서 밝게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지자체 최초로 발달장애인 취업 지원

잡코치가 함께 근무하며 ‘적응력’ 도와

중증 장애 딸 보며 더욱 힘내서 추진

“기대 안 했는데, 큰 도움” 평가에 ‘기쁨’

“비장애인은 대학을 마치면 취업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 발달장애인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은자(52)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은 1일 “우리 사회도 기업이 장애인과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좋겠다”며 “앞으로 발달장애인이 취업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 평범한 일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강서구는 2019년 이 센터장의 제안으로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발달장애인 취업을 지원하는 강서퍼스트잡 사업을 시작했다. 이 센터장은 사회적경제협동조합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를 만들어 강서퍼스트잡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강서구 입장에서는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죠.” 이 센터장은 “일반 장애인을 취업시키기도 힘든데 중증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취업시키려 하느냐는 얘기도 있었다”며 “하지만 2020년 강동구에 이어 올해는 강북구에서 이런 센터를 만들 만큼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이 센터장이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를 만들기 전인 2018년 국내 장애인 고용률은 30% 정도인 데 견줘 발달장애인 고용률은 이에 못 미치는 20%를 밑돌았다.

“교육·훈련 현장과 취업 현장이 분리된 구조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일하기 어려운 구조였죠.” 발달장애인은 잘 준비된 훈련 현장에서는 교육받은 대로 일할 수 있지만 장소가 바뀌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발달장애인은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이런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강서퍼스트잡은 발달장애인을 채용할 의지가 있는 기업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 근로지원인(잡코치)이 함께 근무하도록 지원한다. 이 센터장은 “3개월 동안 훈련생으로 근무한 뒤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며 “지난해까지 강서퍼스트잡 지원을 받은 훈련생 110명 중에서 66명이 취업에 성공해 일반 기업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취업성공률이 무려 60%가 되는 셈이다.

이 센터장이 발달장애인 문제에 열심인 데는 스물다섯살 된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의 영향이 컸다. “딸이 ‘밥 먹어요’ ‘마트 가요’ 등 기본적인 언어 표현만 할 수 있어요.” 이 센터장의 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수학교에 가려 했지만 자리가 없어 가지 못했다. “국가가 특수학교에 진학할 학생 수가 늘어나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아무 대책이 없었던 거죠.”

이 센터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4월 강서장애인학부모회를 만들었다. “제일 먼저 한 게 가양동에 서진학교(특수학교)를 만든 일이었죠. 토론회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무릎 꿇어가면서 만들었습니다.”

이 센터장은 당시 국가의 책임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 인식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장애인 혐오가 너무 심하더라고요. 국가가 아무리 제도나 정책을 잘 만들어도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장애인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센터장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나 직장에서 발달장애인을 자연스럽게 만나면 인식이 바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강서퍼스트잡이었다.

효과는 컸다. 일반 기업 취업을 포기한 중증 발달장애인이 강서퍼스트잡을 통해 일반 기업 취업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직업 훈련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던 중증 발달장애인이 일하게 될 현장에서 직접 훈련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비장애인 잡코치가 직접 직업 훈련, 직장 예절, 출퇴근 관리 등 업무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중증 발달장애인은 청소하더라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에게 ‘이곳을 깨끗이 청소하세요’라고 하면 청소가 되지만 중증 발달장애인은 달라요.” 그래서 잡코치가 청소 순서라든지 해당 장소에 적당한 청소 도구 등을 알려준다. “쓸어야 할지, 닦아야 할지, 걸레질해야 할지, 빗자루로 쓸어야 할지를 알려주고 순서도 정해줘야 해요.” 이 센터장은 “잡코치는 장애인 채용을 꺼리는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며 “중증 발달장애인을 채용한 기업의 만족도가 높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효과도 나타난다”고 했다.

“기업은 사실 벌금이나 아니면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장애인을 채용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어요.” 이 센터장은 “기업체에서 ‘전혀 기대를 안 했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장애인도 좋고 기업도 손해 보는 일이 아니죠.” 이 센터장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지만 벌금을 내는 게 더 편하겠다고 여기는 곳도 있는 듯하다”며 “기업도 불편하지 않게 하는 강서퍼스트잡과 같은 시스템이 있으니 장애인 채용에 좀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