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실상사작은학교 배움지기 조의제씨.
노조활동 해고 뒤 토목기사로 살다가
큰아이 공동육아 보내며 ‘새 세상’ 접해
아이 대안학교 보내려 이사도 여러 번
09년 실상사 주지 스님 만나 귀촌 결심
2010년 귀촌, ‘지리산 작은마을’에 정착
생협·작은학교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내려놓으면 편해진다”는 원리 깨달아
“기운 있을 때 귀촌하는 게 좋아요” 조언
조의제(56)씨는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있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으로 귀촌했다. 그가 산내면으로 온 지 올해로 13년이 됐다. 조씨의 귀촌살이를 듣기 위해 지난 5월 말 실상사행 버스를 탔다.
조씨의 고향은 전북 임실군으로 지금 사는 산내면과 가깝다. 3녀4남 중 막내인 그는 나이 든 어머님이 집안일 하는 걸 돕던 아이였다. 지금도 요리하거나 살림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건 어릴 적 경험 덕이다.
1993년 조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해 공장에 취업했다. 노조 활동으로 해고돼 3년간 복직 투쟁을 하고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지인이 토목기사 자격증을 따길 권했다. 1997년 1년을 공부해 토목기사가 돼 건설회사에 취업했다. 현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 아내와 평등한 관계를 맺고 싶어 성을 뺀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길 제안했다. 부부는 놀랍게도 여전히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1999년 조씨 부부는 첫째를 낳고 4년 뒤 아이를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했다. 그러면서 대안적 삶을 접하게 됐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아이 낳기 전에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공동육아 하면서 제대로 살아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아이가 제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줬다고 생각해요. 고맙죠.”
다음해 남한산초등학교가 좋다는 말을 듣고 그 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산속 마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대안학교인 하남 푸른숲학교 이야기를 듣게 됐다.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는 조씨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내기 어려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2005년 시험에 합격해 학교 시설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그의 아내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다음해 공무원이 됐고 첫째는 푸른숲학교에 입학했다.
2009년 조씨 부부는 둘째를 낳고 남원 실상사 주지 스님이자 ‘생명평화순례단’ 단장으로 하남을 방문한 도법 스님을 만났다. 부부는 도법 스님에게 큰 감흥을 받아서 자연스레 실상사 근처로 귀촌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씨는 2010년 가족과 남원 산내면으로 이사했다. 첫째는 산내초등학교로 전학했고, 조씨는 공동체가 만드는 ‘지리산 작은마을’ 땅을 분양받아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20가구가 들어서는 마을에서 조씨는 초대 마을 대표를 맡았다. 마을을 새로 만들려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다음해 아내가 복직하면서 둘째 육아를 그가 맡았다.
실상사 입구에 있는 인드라망생협 지역매장 느티나무 모습.
2012년 첫째는 실상사작은학교(당시엔 중등 과정, 현재는 중고등 5년 과정)에 입학했다. 조씨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생협 매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활동가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맞벌이라 집 지을 때 빌린 대출금을 갚으면서 규모에 맞게 생활할 수 있었다. 생협 매장에서 3년 일하고 산내들 방과후 교사로 3년 일했다. 2018년부터는 실상사 농장에서 일했다. 첫째는 실상사작은학교를 졸업하고 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다녔다. 첫째는 2년 전부터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목금토공방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는 지난해 실상사작은학교에 입학했다.
조씨는 올해부터 순환근무로 인해 실상사작은학교에서 배움지기(교사)로 일한다. 학교는 그의 집에서 3분 거리다.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전면에는 교실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오른쪽에 교무실이 뒤편에는 도서관이 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오후의 학교 풍경은 평화로웠다. 학교를 나서는데 재활용분리수거장이 보였다. 안에 들어가니 비닐까지 씻어 말리려고 줄에 걸어둔 모습이 보였다. 이런 학생들만 있다면 탄소 중립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았다. 분리수거장을 나오니 생태화장실이 있었다. 양변기 없는 화장실은 냄새나지 않게 잘 관리돼 있었다. “생태화장실이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데 가장 큰 진입 장벽이죠.” 조씨가 말하며 웃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생태화장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일 거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중고등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 교실 전경.
선생님들을 포함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가들의 급여는 풍족하지 않지만, 숙식을 함께 해결할 수 있어서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주 1회 열리는 교육에 참여한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귀촌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3박4일 ‘전환캠프’를 열고 있다. 귀촌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인 거 같다.
귀촌하고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초기에 마을 만들 때 의욕이 앞서서 1~2년은 갈등이 있었어요. 마을 수익 사업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요. 그때는 좀 힘들었는데 점차 내려놓고 사니까 지금은 편해졌어요. 지금은 1년에 서너 번 정도 친목을 위해서만 모여요. 사실 과거처럼 할 일도 별로 없고요.”
귀촌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저는 더 바랄 게 없죠. 서울에 산다면 이렇게 넓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기 어렵잖아요. 사실 농촌이 도시보다 더 바쁠 수 있어요. 도시에서는 관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많다면 농촌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많으니까요. 아이들을 보면 새로운 고향을 찾아줬다는 데 만족감을 느껴요. 더는 꿈꾸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이 행복하죠.”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농사만으론 생활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기운 있을 때 내려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도 지금 내려왔으면 10년은 고생해야 할 텐데 안 그래도 되니 다행이죠. 무엇보다 소비 수준을 도시에 살 때랑 똑같이 하면 안 된다는 거랑. 자식 교육에 대해서 내려놓는 게 필요하죠.”
집 한 채를 사려고 평생을 바치는 도시인의 삶에 비하면 귀촌인은 그 짐에선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자식 교육에 대한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다른 선택지가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말’이 아니라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란 사실도 잊은 건 아닌가 싶다.
나이 든 어머니의 살림을 도와주던 막내는 아빠가 되어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제대로 된 삶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고민은 결국 조씨를 귀촌으로 이끌었다. 조의제씨는 지금 천왕봉이 보이는 집에서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삶을 꾸린다.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98@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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