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는 ‘보랏빛 여의도’에서 ‘함께할 미래’를 외쳤다

40만 명 몰린 ‘BTS 데뷔 10주년 페스타’ 17일 여의도 현장 취재기

등록 : 2023-06-22 15:40
브링 더 송 체험을 마치고 나온 외국 아미들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10주년 행사 ‘서울시와 협업’해 꾸며져

서울은 12일부터 보랏빛으로 물들어

여의도 행사가 정점…31도 무더위에도

‘전시와 체험’ 현장마다 긴 줄 이어져


성별·연령·국적 초월한 팬층 ‘눈길’

멤버 참여 특별 프로그램으로 피날레


“30주년까지 해체 않고 활동했으면”

‘그 가수 그 팬’…현장 뒷정리도 완벽

폭염보다도 뜨거운, 역대급 생일잔치였다. ‘21세기 팝 아이콘’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는 이들의 1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전세계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덤)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이날은 ‘BTS 10주년 애니버서리 페스타’(BTS 10th Anniversary FESTA)의 핵심 일정인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가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당일이었다. 방탄소년단은 매년 데뷔일(2013년 6월13일)을 기념하며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인 ‘BTS 페스타’를 펼쳤는데, 올해 행사는 데뷔 10주년을 맞은 만큼 서울시 등과 협업해 더욱 특별하게 꾸몄다. 이에 따라 서울시 전역은 지난 12일부터 방탄소년단과 아미를 상징하는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서울 주요 명소에 보랏빛 경관을 연출하는 행사는 25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BTS 10주년 애니버서리 페스타 앳 여의도’ 행사가 있던 17일 낮 12시30분께 한강공원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저마다 보라색 아이템으로 치장한 팬들이 기자 눈에 띄었다. 한껏 상기된 표정을 한 이들을 따라 행사장에 들어서니 본격적으로 보랏빛 물결이 펼쳐졌다. 공원 일대는 보라색 의상, 보라색 가방이나 액세서리 등 드레스코드를 맞춰 방문한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에도 방탄소년단의 10년을 축하하기 위해 수만 명의 팬이 운집했다. 이날 현장에는 주최 쪽 추산 외국인 12만 명을 포함해 4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다채롭게 마련된 전시·체험 공간은 구역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증명하듯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트로피 등 10년 역사를 담은 ‘BTS 히스토리 월’과 지난해 부산 콘서트에서 멤버들이 착용한 ‘달려라 방탄’ 무대 의상을 관람하기 위한 줄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에마뉘엘(58)은 “2016년부터 아미인 22살 딸과 함께 왔다. 딸은 한국에 오기 위해 4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고, 돈을 벌었고, 꿈을 실현했다”며 “원래 오늘 다른 일정이 있었지만 딸을 위해 일정을 변경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BTS를 위해 이곳에 방문하는 것을 보니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아미 최슬기(왼쪽)씨와 김정윤씨가 행사 기념 대형 조형물 앞에서 멤버들을 응원하는 슬로건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인 ‘BTS Presents Everywhere’(BTS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형 조형물 앞에서 보라색 티셔츠를 일행과 맞춰 입고 기념사진을 찍던 최슬기(32)씨는 “오늘 아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와서 신기했다. 노래 ‘상남자’ 발표(2014) 때부터 좋아했는데, 10주년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최씨가 “특별 프로그램에 당첨돼서 조금 있다 남준이(멤버 RM) 보러 간다. 너무 설레서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왔다”고 하자 일행은 “나도 보고 싶다”며 부러움을 표했다. 10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기자의 말에 김정윤(45)씨는 “죽어서도 아미 할 거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무얼 하든 계속 응원하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일행도 “평생 가자” “디너쇼 약속 지켜줘야 해”라며 함께 눈물지었다.

행사장 한편에서 경쾌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서울홍보부스에서 경품 이벤트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했다. 1등 상품을 수령하고 나오던 40대 초반의 송아무개씨는 “12시에 와서 이 부스만 2시간을 기다렸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친구들이 모두 아미다. 여기 못 와서 너무 슬퍼하길래 대신 사진 찍어 보내주려고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며 “활기차고 외국인도 많고 분위기가 아주 좋은 것 같다. 저는 BTS로 인해서 친구들의 삶이 바뀌는 걸 직접 봤다. 프랑스 친구는 우울증을 고쳤고, 한 친구는 음악 기자로 진로를 바꿨다. 방탄소년단이 사람들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 같아서 저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아미 이다민(13)양이 엄마와 함께 BTS 타투 스티커 체험을 하고 있다.

팬들은 포토존으로 꾸며진 방탄 가족사진전, 멤버들의 손글씨 플레이리스트를 뽑을 수 있는 브링 더 송, 타투 스티커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돌며 추억을 쌓는 모습이었다.

폭넓은 팬층을 자랑하는 BTS답게 남성 팬도 많았다. 친구와 함께 방문한 7년차 아미 김해누리(21)씨는 “생각보다 사람이 엄청 많은데, 너무 재밌다”며 “요즘은 정국이 형이 ‘최애’다. 10주년까지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공원 곳곳은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팬들로 가득했다. 특히 대형 화면으로 방탄소년단의 무대 영상이 송출되는 ‘BTS 라이브 스크린’ 구역은 아미 대화합의 장이었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환호 소리와 함께 떼창이 이어지곤 했다.

세계 각국의 아미들은 피부색도 언어도 다르지만 하나 된 모습으로 축제를 즐겼다. 2주 전 이스라엘에서 여행차 한국에 온 루드밀라(57)와 줄리아(26) 모녀도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있었다. 줄리아는 “이 라이브 스크린 프로그램이 제일 재밌다”며 “엄마가 BTS를 정말 좋아한다. 이런 축제는 모든 곳에서 개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퍼미션 투 댄스’ 곡에 맞춰 춤 영상을 찍는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송승훈(26)씨와 이원영(24)씨는 각각 2017년, 2019년에 ‘입덕’한 아미 커플이다. 송씨가 “다 함께 영상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게 참 좋다”고 하자, 이씨도 “다른 분들도 저희랑 같이 춤추고 싶다고 오시기도 하고, 재밌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BTS 히스토리 월’ 전시를 관람하려는 아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5시에는 리더 RM이 팀을 대표해 추첨으로 선정된 3천 명의 아미와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이후 저녁 8시30분부터 진행된 불꽃쇼가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수십만 인파가 몰린 탓에 혼잡할 법도 했지만, 아미들은 “우측 보행 부탁드립니다” “멈추지 말고 천천히 이동해주세요” 하는 스태프의 안내에 충실히 따르며 안전을 지켰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최선주(28)씨와 서나윤(28)씨는 “외국 아미들이 많이 와서 정말 페스타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탄이 ‘월드스타’라는 게 확 체감된다”며 “굉장히 붐벼서 놀라긴 했지만 질서정연하게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아미라는 팬덤의 특성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 기간에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이들은 “몸 건강하게 (군대에)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10년 동안 잘해왔듯이 다음 10년, 다다음 10년도 행복하게 활동했으면”이라고 말했다.

‘소우주’를 시작으로 방탄소년단의 히트곡들과 함께 불꽃놀이가 열리자 사람들 사이에서 연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펼쳐진 30분 동안 다리 위를 지나던 버스들이 느릿해지는 광경도 연출됐다. “까만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처럼 아무것도 없었던 저희의 밤을 밝게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우리의 2막을 함께 열어볼까요?” 멤버 정국의 내레이션과 함께 최근 발매된 팬 송 ‘테이크 투’(Take Two)가 마지막 곡으로 울려 퍼지자 눈물을 훔치는 아미도 적지 않았다. 불꽃쇼 막바지, 눈꽃처럼 아미들에게로 흩어져 내리는 보랏빛 불꽃에 가슴이 찡해왔다.

이날 기자가 만난 아미들은 10주년 소회에 대한 답으로 모두 ‘미래’를 이야기했다. 여자친구를 이끌고 온 5년차 아미 유보현(28)씨는 “20주년, 30주년까지 해체하지 않고 쭉 방탄소년단으로 오래오래 활동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에서 온 미카(40)씨도 “모두 (군대에서) 돌아오면 다시 지금처럼 오래갔으면 좋겠다. 10주년 축하하고, 앞으로도 힘내요”라는 응원을 보냈다. 40만 명이 몰린 행사였음에도 아미가 떠난 자리에는 쓰레기 하나 남지 않았다. 아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팬 문화가 더 빛났던 행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깨끗한 한강 변 모습에서 BTS를 향한 아미들의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글·사진 이화랑 객원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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