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는 지난 4월 말부터 구 내 75살 이상 홀몸 노인에게 무료로 점심을 주는 효도밥상을 시작했다. 지난 23일 마포구 대흥동 우리마포복지관 5층 식당으로 효도밥상이 제공하는 점심을 먹으러 온 주민들이 참석 확인을 하고 있다.
200명 대상으로 4월 말부터 ‘시범운영’
매일 대면하면서 건강과 일상 관리
동마다 후원회 조직…주민참여형 사업
“내년엔 조리센터 만들어 1천 명 확대”
지난 23일 오전 11시를 넘기자 마포구 대흥동 우리마포복지관 5층 식당 앞에 고령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11시30분이 되자 차례로 급식판에 음식을 담아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 그럭저럭 찬밥 덩어리나 먹었지. 혼자 사는데 오죽하겠어. 누가 해주는 사람도 없고. 허리 수술을 해서 가까스로 밥해서 며칠씩 먹고 했지.”
대흥동에 사는 신명희(87)씨는 마포구가 효도밥상을 시작한 지난 4월 말부터 매일 우리마포복지관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 불편한 몸으로 하루 세 끼를 직접 챙겨 먹기가 힘들었는데 효도밥상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신씨는 점심시간이 11시30분인데도 10시30분께 미리 나와서 주위 사람들과 얘기도 나눈다. 신씨는 “지금은 여기서 매일 따뜻한 밥 먹지. 점심만 잘 먹어도 저녁은 대충 먹어도 돼”라며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강순례(79)씨도 효도밥상을 시작한 날부터 우리마포복지관에 왔다. “요즘 늙은이들이 혼자 더운밥 챙겨 먹기 힘들죠. 그럭저럭하고 넘기지. 이제 점심을 먹으니 너무 좋아요. 이렇게 먹고 나면 저녁에는 물이나 한잔 먹고 자도 괜찮아요.” 강씨는 “점심시간 30분 전부터 와서 주위 사람들과 대화한다”며 “점심도 먹고 친구도 사귀고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했다.
이날 점심은 ‘당뇨식의 날’로 찰현미밥과 콩나물, 묵은지닭찜, 새우살호박볶음, 구운김, 포기김치가 나왔다. “오늘 닭볶음탕 나와서 맛있게 먹었어요.” 점심 식사를 마친 유분득(87)씨는 “집에서 먹는 것보다 이곳이 반찬도 잘 나오고 좋다”며 “여기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고 했다.
마포구는 지난 4월24일부터 효도밥상을 시범 운영하는데, 지역에 사는 75살 이상 홀몸 주민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한다. 민선 8기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공약사업으로 서울 자치구에서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다.
효도밥상을 차리는 곳은 아현노인복지센터(공덕동 1호점), 아현실버복지관(공덕동 2호점), 용강노인복지관(용강동 1호점), 마포아트센터(염리동 1호점), 우리마포복지관(대흥동 1호점), 밤섬한식부페(신수동 1호점), 시립마포노인종합복지관(사강동 1호점) 등 7곳이다.
고령자들은 ‘귀찮아서’ 또는 ‘입맛이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점심을 거르기 쉽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효도밥상은 균형 잡힌 점심을 제공해 자칫 조금만 소홀해도 건강을 잃기 쉬운 고령자들에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밥심’을 준다. 임은주 마포구 대흥동 주민복지팀장은 “효도밥상은 단순하게 점심만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자 주민이 일상생활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고령자들이 식사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은 고령자가 겪는 우울감이나 고독감을 이겨내는 데 힘이 된다”고 했다.
참석 확인을 한 주민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게다가 하루라도 점심을 거른 주민이 연락이 안 될 때는 동 주민센터에서 직접 집으로 방문해 안부를 묻는 등 일상을 돌본다. “식사하러 오지 않은 어르신에게는 빠짐없이 전화해요. 왜 점심 시간에 안 오셨는지 이유도 꼼꼼하게 기록해요.” 자원봉사자 유명희씨는 “전화 통화가 안 되는 어르신은 동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전달하면 곧바로 집으로 찾아가서 확인한다”고 했다.
급식소마다 보건소 건강 담당자와 동방문 간호사가 월 1회 나와 건강 상담, 기초 건강상태 검진, 만성질환 검진, 영양 상태 진단, 건강교육 등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이곳에는 혈압측정기와 당뇨측정기가 있어 스스로 간단히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급식소와 가까운 복지관 등에서 강사가 나와 여가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마디로 효도밥상은 ‘노인 복지 통합서비스’인 셈이다.
마포구 인구는 올해 5월 기준, 36만5283명으로 노인 인구는 5만6446명이다. 이 중 효도밥상을 받을 수 있는 75살 이상 홀몸 노인은 6846명으로 남성이 1521명, 여성이 5325명이다. 효도밥상은 우선 고령자순으로 200명을 선정해 점심을 제공한다. 이미 경로 식당, 도시락 배달, 반찬 배달 등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주민은 제외됐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다양한 식단을 구성해 급식하는데, 효도밥상 대상자가 아닌 일반인은 4천~5천원을 내야 한다.
“예산도 그렇고 급식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75살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효도밥상을 제공할 수가 없어 나이가 많은 순으로 우선 선정했습니다.” 강은영 마포구 어르신동행과 어르신정책팀장은 “예산 문제도 있지만 급식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효도밥상은 주민참여형으로 운영한다. 개인과 기업이 후원해 급식 비용 일부를 충당하고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돕는다. 구는 올해 효도밥상에 예산 6억3천만원을 들이는데 구비 3억3천만원에 후원금은 3억원으로 잡고 있다. 4월까지 기관·단체 80곳, 개인 485명이 총 2억3천만원 넘는 후원금과 물품을 기탁했다.
동마다 20명 정도로 구성된 후원회도 조직했다. 효도밥상 제공 기관에 인력이나 쌀, 김치, 후원금 등을 지원한다. 각 동에서 모인 효도밥상 자원봉사자 300여 명은 조리, 배식을 돕고 노인들의 말벗이 되기도 한다.
효도밥상은 균형 잡힌 식단과 함께 밀착형 돌봄으로 홀몸 노인의 결식과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해 건강한 노년의 삶을 지원한다. 강 팀장은 “2013년에 돈 있는 집 아이들에게 공짜로 점심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학교 무상급식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상급식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75살 이상 어르신에게 무료로 점심을 주는 효도밥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효도밥상은 75살 홀몸 노인을 위한 보편복지인 셈이다.
구는 내년에는 대형 조리센터에서 음식을 만든 뒤 식사 장소로 배송하는 방법으로 효도밥상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강 팀장은 “지금은 예산이나 여건이 부족해 75살 이상 어르신 모두에게 효도밥상을 드릴 수 없지만 내년에는 효도밥상 규모를 1천 명까지 늘리는 등 앞으로 규모를 계속 확대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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