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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된 ‘풀뿌리 마을 민주주의’…금천구 주민자치 총회 ‘6년 성과’

우리 동네 사업 직접 선택하는 ‘금천구 독산3동 주민총회’ 현장
주민자치사업 상정 안건 6건, 사업 제안 발표 뒤 투표로 결정

등록 : 2023-07-13 15:30
“주인 의식 높아 의견 내는 주민 늘고, 민주주의 성숙도도 깊어졌죠”

‘끼리끼리’ 인식 바꾸고 투명성 향상

남성·젊은이 참여 등 다양성 확보 과제

“마을 대표 민주주의 플랫폼 될 것”

금천구는 6월21일부터 7월7일까지 구 내 10개 동마다 주민자치회 자치계획을 결정하는 주민총회를 열었다. 6월30일에는 독산3동 주민자치회가 주민센터 4층 대강당에서 주민총회를 열었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주민총회에 참석해 주민총회의 의미를 설명하고, 참석한 주민을 격려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 덥죠.” “오셨어요. 비가 갑자기 쏟아붓더라고요. 이제 좀 그쳤네요.”

주민총회 시간이 다가오자 금천구 독산3동 주민들이 총회 장소인 주민센터 4층 대강당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너나없이 반갑게 악수하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주민총회장에는 원형 탁자 10여 개가 놓여있고 강당 벽에는 ‘주민자치와 함께 성장하는 다문화 마을 독산3동’이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렸다.

지난 6월30일 오후 2시, 금천구 독산3동 주민센터 4층 대강당에서 ‘독산3동 주민자치회 주민총회’가 열렸다. 2024년 주민 제안사업을 주민투표로 정하는 날이다.


주민총회에 상정된 2024년 독산3동 주민자치활동지원 제안사업은 ‘다양한 문화와 함께하는 독산3동 요리교실’ ‘독산극장 시즌 10’ ‘찾아가는 독산3동 평생학교’ ‘독산3동 청소년과 함께하는 사람 책 도서관’ 등 4건이다. 금천구 공동의제로는 ‘돈도 벌고 지구도 살리는 탄소중립운동’, 독산3동과 4동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발빠른 우리동네 소식통 스마트 전광판’이 올랐다.

공동의제는 10개 동 전체에 주민총회 의제로 상정된 것이고,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이웃한 동과 협력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독산3동 주민자치활동지원 제안사업은 4개 중 1개를 선택하면 되고, 금천구 공동의제와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찬반을 결정하면 된다.

2024년 사업 제안 발표가 끝난 뒤 각 테이블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사업을 제안한 주민의 발표가 이어졌다. 먼저 장현아씨가 ‘다양한 문화와 함께하는 독산3동 요리교실’ 사업을 제안했다. 남문시장 근처에서 쌀국숫집을 운영하는 장씨는 20년 전 한국에 온 이주민으로 8년 전 귀화했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문화 차이였습니다. ‘다문화 요리교실’은 이주민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업입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씨는 “월 1회 이주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요리교실을 진행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장으로 만들겠다”며 “이를 통해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두 번째 사업 제안자로 나선 주민은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에 다니는 황재윤군이다. “이 사업의 키워드는 주민과 함께하는 평생학습입니다.” 황군이 제안한 ‘찾아가는 독산3동 평생학교’는 독산3동에 있는 경로당 7곳을 방문해 ‘웃음치료’, 치매 예방 및 스마트폰 등 기기 활용 교육 등으로 노인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황군은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아 불편한 삶을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평생학습의 장을 만들어 편리한 일상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투표 결과를 촉진자(퍼실리테이터)가 모아 정리하고 있다.

이날 제안사업 6건에 대한 발표가 끝나자 촉진자(퍼실리테이터)가 주민총회 참가자에게 투표방법을 설명했다. 촉진자는 원형 탁자마다 1명씩 앉아 주민총회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제안사업 1~4번 중에서는 하나만 선택하고, 금천구 공동의제와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동의’나 ‘비동의’, 또는 찬반으로 표기하면 돼요.” 10번 그룹 촉진자인 이원화씨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설명했다.

주민총회마다 참석했다는 안영미(68)씨는 ‘찾아가는 독산3동 평생학교’를 선택했다. “뭘 모르는 어르신이 많아요. 스마트폰을 활용할 줄 몰라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나이 먹은 사람들이 똑똑해져야 동네 아이들도 잘 돌볼 수 있어요.” 안씨는 “지적질 받는 어른이 많다”며 “나이를 먹어도 여러 가지 교육을 많이 받아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했다.

박순선(54)씨는 공동의제와 주민참여예산 사업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지구도 살리고 탄소도 줄이고 돈도 벌고 좋은 것 같아요. 구청이나 우리 동네 소식을 빨리 알면 좋겠죠.” 박씨는 “탄소중립도 예전에는 주민들이 잘 몰랐는데, 시대가 변하면 알아야 하는 게 많아진다”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게 이익인지 잘 판단해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태경(70)씨는 이번에 처음 주민총회에 참석했다. 김씨는 “독산3동이 여유롭지 않은 동네라서 먹고살기 바쁘니 관심이 좀 떨어진다”며 “내 손으로 우리 동네 사업을 직접 제안하고 선택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뿌듯해했다.

최종 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주민총회는 독산3동 총인구 2만3900명 중 사전투표와 현장투표를 합쳐 2085명(8.7%)이 투표했다. 주민자치활동 지원사업 투표에서는 ‘독산극장 시즌 10’이 1위, ‘다양한 문화와 함께하는 독산3동 요리여행’이 2위, ‘찾아가는 독산3동 평생학교’가 3위, ‘독산3동 청소년과 함께하는 사람책 도서관’이 4위를 했다. 공동의제와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모두 찬성이 많았다.

금천구는 6월21일부터 7월7일까지 구 내 10개 동마다 주민자치회 자치계획을 결정하는 주민총회를 열었다. 2018년 이후 6회째다.

주민총회는 동마다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립한 자치계획을 주민들이 소통하며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이다. 주민총회에는 해당 동에 거주하는 주민뿐만 아니라 해당 동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 직장인(자영업자 포함), 외국인도 참여할 수 있다.

각 동 주민자치회가 주민총회에 상정한 자치계획은 ‘주민자치회 운영 및 자치회관 운영계획’ ‘2024년 주민자치활동 지원 사업 및 주민참여예산 사업계획’ 등이다. 금천구 각 동 주민자치회는 올해 초부터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설문조사와 ‘찾아가는 의제 제안’을 받았다. 또한 동마다 주민, 행정기관 등 각계각층이 공론장을 열어 열띤 토론을 거쳤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돼 제안받은 의제를 분류하고 검토해 사업계획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사업계획은 동마다 개최하는 주민총회에 상정해 주민투표로 최종 결정했다. 현장 참여가 어려운 주민을 위해 5월26일부터 7월5일까지 동마다 온·오프라인 사전투표장도 운영했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사진 왼쪽부터), 양재호 독산3동자치회장, 안희진 독산3동장이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주민 제안 사업이 실효성 있게 실행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끼리끼리가 많이 줄었죠. 주민자치회도 주민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네들끼리 하려고 했던 인식이 많이 바뀐 게 가장 큰 성과죠.” 김일식 금천구 자치행정과 주민자치사업단장은 “그동안 다소 폐쇄적이었던 주민자치회가 개방적이고 투명해진 게 6년 동안 이룬 성과 중 하나”라고 했다. 김 단장은 “주인 의식을 갖고 의견을 내는 주민이 늘어났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치, 협력하는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단장은 “남성과 청년, 젊은 ‘육아맘’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하고 있다”며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가 부족한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금천구 주민자치회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앞서가는 주민자치회라고 생각합니다. 6년간 주민자치회 평가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주민자치에 필요한 지원사업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게 당면한 과제입니다.”

김 단장은 “성과 평가와 발전 방향에 대한 용역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며 “마을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에서 맏형이나 플랫폼 구실을 할 수 있는 주민 대표기구가 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