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복지재정 부담 민간투자로 푼다

목표 달성하면 인센티브, 미달해도 사회공헌활동…서울시 사회성과보상사업 본격화

등록 : 2016-12-08 14:09
11월30일 서울시청에서 ‘2016 사회성과보상사업 국제 콘퍼런스’가 열리기 전 주요 참가자들이 좌담을 하고 있다. 곽제훈 팬임펙트 코리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제러미 킬 유타대 정책연구소 이사, 안드레아 필립스 메이콤캐피털 대표, 아서 우드 토털임팩트캐피털 대표(위 왼쪽부터).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 복지 수요는 계속 느는데, 재정은 늘 부족하다. ‘사회성과보상사업’(SIB, Social Impact Bond)은 이러한 어려움을 풀기 위한 새로운 실험이다. 민간투자로 공공사업을 추진한 뒤 성과 목표를 달성하면, 공공의 예산으로 투자원금과 보상금을 주는 방식이다. 이 실험은 2010년 영국 피터버러교도소의 단기 재소자의 재범률을 낮추는 사업에서 처음 시도됐다. 올해 6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미국, 호주 등 15개 나라에서 60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11억1000만원 모아 8월에 첫 사업

서울시는 2014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사회성과보상사업을 도입했다.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사업 심의위원회를 구성한 뒤 2015년 시의회가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의 아동을 교육하는 1호 사업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투자구조를 짜고 사업비 관리를 맡는 사업총괄기관과 사업을 시행하는 수행기관을 선정했다. 사업총괄기관으로 선정된 팬임팩트코리아는 올해 3월 투자기관을 모집해 11억1000만원을 모았고, 수행기관인 대교문화재단은 8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시행에 들어갔다.

서울시 1호 사회성과보상사업은 서울지역 62곳의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느린학습아동’을 돕는 프로젝트이다. 경계선지능(아이큐 71~84)이나 경증 지적장애(아이큐 64~70)를 가진 느린학습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3년 동안 맞춤형 프로그램을 시행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립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는 사업의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투자원금과 보상금을 차등 지급한다. 대상 아동 100명 중 32명이 정상 범주(IQ 85 이상)로 올라오면 시 예산으로 투자원금을 지급하지만, 정상 범주가 된 아동이 10명 이하이면 투자기관은 원금을 받지 못하고 사회공헌활동으로 끝내게 된다. 정상 범주 아동이 43명 이상이면 최대 3억2100만원이 보상금으로 추가 지급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느린학습아동 30%가량은 시설 퇴소 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다. 예방적 복지 차원에서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해주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는 게 서울시의 계산이다. 서울시는 32명이 개선됐을 때 얻는 사회적 이익이 약 37억원 정도라고 분석한다. 강선섭 서울시 사회적경제 담당관은 “사회성과보상사업은 복지예산을 효율적으로 절감하면서 복지 분야에서 민관 협치의 새 가능성을 여는 실험”이라고 말했다.

사회성과보상사업은 느린학습아동 교육처럼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보면 중요한 복지사업이지만, 그동안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거의 없었던 사업을 민간에 맡겨보는 것이다. 사회성과보상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관심을 보이는 지자체가 늘고 있고 국회도 주목하고 있다.

민간투자자가 관심 갖고 참여해야 성공해


경기도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의 탈수급을 돕는 ‘해봄 프로젝트’를 만들어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 강동구, 노원구, 인천 남구와 같은 기초자치단체들도 서울시와 함께 지난 11월 사회성과보상사업 지방정부협의회를 만들어 정보공유와 사업 내실화를 모색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사회성과보상기금법 제정을 위한 모임을 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가 연 ‘2016 사회성과보상사업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한 해외 전문가들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한 좌담회에서 이구동성으로 정부, 투자기관, 수행기관, 평가기관 등 참여기관의 협력을 강조했다. 영국에서 사회성과보상사업을 처음 제안한 아서 우드 토털임팩트캐피털 대표는 “사회적 가치가 매우 큰 사업으로, 참여기관 각각이 기대하는 보상구조를 잘 짜야 하며 민간투자자의 관심과 참여가 성공의 조건이다”고 말했다.

정부의 세금 혜택, 행정 편의 등의 지원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골드만삭스에서 사회성과보상투자 담당 부사장을 지낸 안드레아 필립스 메이콤캐피털 대표는 “미국에서는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사회성과보상사업을 효율적인 복지사업 모델로 인식해 법제도 기반을 갖추면서 더 많은 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성과보상사업 확산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 가운데 서울시는 2, 3호 후속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박 서울시장은 “사회성과보상사업에 대한 인지도가 생기고 민간투자자와 사업자가 늘어나면 더 다양한 복지사업이 펼쳐질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사회성과보상사업

공공사업을 민간이 투자해서 한 뒤, 목표치를 달성하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예산으로 투자자에게 원금과 보상금을 주는 방식. 사회 성과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증권이란 뜻으로, 사회성과연계채권이라고도 하지만 법적으로 채권도 대출 상품도 아닌 일종의 금융 계약이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