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날로그 다이어리만 고집하는 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10~12월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는 월평균 4300여 종의 다이어리가 출시된다고 한다. 이 기간 다이어리 매출은 핫트랙스 전체 매출의 약 7%를 차지한다. 교보문고 강남점 핫트랙스 관계자는 “올해 들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디자인 다이어리가 많이 판매되고 있다. 속지를 꼼꼼히 보고, 무게까지 가늠하며 고르는 고객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내년에도 꾸준히 사랑받을 ‘아날로그 다이어리’ 세계를 훑어봤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강남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캐릭터 다이어리
아날로그 다이어리의 인기는 카페에서 시작됐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2004년부터 해마다 연말 한정판 다이어리를 제작해왔다. 커피 쿠폰을 모은 고객에게 다이어리를 무료로 주기 시작했는데, 다이어리를 받으려고 하루에 몇 잔씩 커피를 마시거나 쿠폰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사람까지 생겨 이슈가 됐다.
커피 가게부터 치킨집까지 다이어리 제작 열풍
스타벅스는 지난해 35만부 찍었던 다이어리를 올해는 80만부 찍었다. 시즌 음료를 포함해 커피 17잔을 마신 손님에게 다이어리를 준다. 분홍색 등 인기 색상은 이미 수량이 달린다.
국내 유명 커피전문점에서도 다이어리를 판다. 카페베네는 ‘월리를 찾아서’ 캐릭터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투썸플레이스는 묵직한 가죽 다이어리를 볼펜과 세트로 팔고 있으며(2만4000원), 탐앤탐스 역시 다섯 가지 색상의 양장 다이어리를 판매 중이다(9800원). 할리스와 커피빈도 각각 브랜드 다이어리를 내놓으며 ‘카페 다이어리’ 제작에 합류하고 있다. 커피전문점 다이어리에는 다이어리 값을 넘는 커피 쿠폰들이 포함돼 있다는 게 특징이다.
올해는 편의점과 식품업계도 다이어리 제작에 가세했다. 편의점 ‘GS25’는 커피를 사는 사람 중 도장 10개를 모은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다이어리를 준다. 세븐일레븐은 ‘포켓몬 다이어리’ 2종을 3만 개 한정 판매 중이다 (1권 7000원, 2권 1만원). 배스킨라빈스는 쿼터 사이즈 이상 아이스크림을 사면 ‘핑크팬더 다이어리’를 1000원에 팔고 있으며, 치킨점 bhc는 유명 일러스트 펠트보이와 협업해 제작한 다이어리를 치킨을 1마리만 사도 무료로 준다.
화장품 회사도 손님들에게 다이어리를 준다. 알록달록한 표지가 특징인 이니스프리 다이어리 (3만원 이상 구매 시), 깔끔한 책 한 권 같은 빌리프 다이어리(제품 구매 시)는 블로그 후기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나를 고백하는 ‘일기’ 문화
고급 문구 브랜드인 몰스킨에서는 일반 다이어리에서 나아가 개인 취미와 삶에 집중한 다이어리도 선보여 수집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와인, 커피, 영화, 음악, 요가, 여행, 서평 등 아이템 하나를 중심에 두고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다. 정원 가꾸기나 육아, 나만의 홈인테리어 다이어리까지 선택의 폭이 다양해 마니아들이 꾸준히 찾는다.
출판계는 ‘다이어리북’에 관심을 둔다. 2011년 출간된 <5년 후 나에게 : Q&A a day>는 미국과 영국 아마존에서 5년 연속 ‘가장 많이 팔린 다이어리북’으로 기록되며 한국에 번역돼 소개되기도 했다. 다이어리북은 ‘오늘 기분 좋은 일은 무엇이었나?’ ‘하루를 어떻게 시작했는가?’ ‘마지막으로 수영을 한 건 언제인가?’ 등의 가벼운 질문이 다이어리에 쓰여 있다. 사용자는 다이어리와 대화하듯 질문에 대한 답을 적는 것뿐인데, 치유를 받았다는 후기가 대부분이다.
뉴욕과 런던 등 영미 문화권의 대도시 서점은 다이어리를 ‘저널’이라 한다. 이미 체계를 잡은 ‘저널’은 ‘맥북’과 스마트폰에 친숙한 이들도 여전히 들고 다닐 만큼 보편화됐다. 뉴욕 컬럼비아대학 출판사의 이창재 수석 북디자이너는 “미국은 일기와 편지를 기록물로 보존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
글쓰기를 생활화하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출판사 역시 일기와 서간집을 중요한 출판 장르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손맛을 키우는 다양한 채널 등장
아날로그 다이어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다이어리 꾸미는 법을 알려주는 채널도 덩달아 인기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어리 꾸미기’(아래 사진)를 검색하면, 일명 ‘금손’들이 알려주는 비법이 화려하다. 나만의 서체를 개발하는 방법부터 마스킹테이프와 스티커, 포스트잇, 사진과 엽서 등을 이용한 다이어리 꾸미기까지 다양하다. 찬사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밥장은 지난봄에 발간한 <밥장, 몰스킨에 쓰고 그리다>를 통해 나만의 기록법에 대해 차근히 설명하기도 했다. 그림과 단상으로 채우는 자유로운 일기 쓰기 방법과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비교해 보여주며, 아날로그 기록 방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강남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신년다이어리
서점이나 문구점에 설치된 다이어리 진열대를 보면 신년이 코앞임을 실감하게 마련이다. 2017년은 5월, 9월, 10월에 연휴가 몰려 있다. 특히 10월 첫 주는 최대 10일까지 추석 연휴를 활용할 수 있다. 미리 여행 계획을 세워 항공권을 예약하는 것도 방법이다. 바쁜 연말이지만 시간을 내어 내게 꼭 맞는 다이어리 한 권을 마련하자. 하루에 한 장씩 나만의 책 한 권을 써나가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글·사진 전현주 문화창작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