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배달라이더 등 “눈치 안 보고 더위 피해”

성동구, 필수·플랫폼 노동자 쉼터 조성해 7월부터 운영

등록 : 2023-08-03 16:30 수정 : 2023-08-03 16:31
성동구는 2020년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뒤 지원정책을 펼쳐왔다. 지난달 11일 문을 연 ‘성동 필수·플랫폼 노동자 쉼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쉼터는 하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대상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된다. 지난달 25일 오후 배달라이더, 방문점검원 등이 쉼터를 이용하고 있다.

성수 지식산업센터 2층, 51㎡ 규모

이륜차 주차공간과 흡연실 등 갖춰

안마의자 3개로 칸막이형 개인공간

휴식·모임·회의 등 다용도로 활용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 오후.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낀 배달라이더 2명이 성동구 성수동 ‘성동 필수·플랫폼 노동자 쉼터’를 찾았다. ‘피크타임’ 점심 배달 일을 끝내고 잠시 쉬러 온 배달라이더 5년 차인 김현석(43)씨와 8년 차인 최무영(48)씨는 안내데스크에 있는 관리자에게 가볍게 눈인사했다. 이들은 방문 명부에 직종과 이용 시간을 적은 뒤 음료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생수를 꺼내 목을 축이고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을 때는 그늘진 곳에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어지럽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리는 등 온열 질환 초기 증상이 나타날 때, 시원한 물을 마시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최씨는 ”생명수 같은 얼음물을 부담없이 마시고 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김씨도 ”폭염뿐만 아니라 폭우, 한파로 일하기 점점 더 힘들어져 잠시라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는데 이런 곳이 만들어져 감사하다”고 했다.

성동 필수·플랫폼 노동자 쉼터는 지난달 11일 문을 열었다. 필수노동자는 돌봄, 청소·환경, 배달, 운수 등 사회에 필수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성동구는 2020년부터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를 만들어, 이들의 권익 향상과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을 펼쳐 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한다”며 “쉼터 조성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노동자에 대해 마땅한 대우와 존중을 하기 위한 지원 정책의 연장선이다”라고 했다.


쉼터는 성동구가 직영한다. 필수노동자 정책을 담당하는 일자리정책과가 맡아 기획단계부터 신중하게 진행했다.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기존 쉼터 가운데 이용률 저조로 문을 닫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적잖기 때문이다. 채현경 일자리창출팀 계장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 때부터 쉼터의 접근성, 주차 가능 여부, 운영시간, 쉼터 이용 분위기 등에 대한 사전 조사와 이용자 의견을 반영해 추진했다”고 했다.

공간은 성수동의 지식산업센터 2층에 자리 잡았다. 성동구에서 가장 상권이 발달한 위치로 기부채납 받아 임대료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건물 앞에는 오토바이 대여섯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흡연실이 있다. 외부 계단이 있어 들고 나기도 편하다.

쉼터의 공간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 이용 대상자 의견을 직접 들어 반영했다. 지난5월 간담회에는 배달라이더조합과 택배노동조합, 돌봄노동조합 등의 조합장과 조합원 등 15명이 참석했다. 이날 나온 의견을 반영해서 일반 냉장고가 아닌 음료 냉장고를 설치했고, 리클라이닝 의자보다 안마의자로 칸막이형 개인 공간을 꾸몄다. 채 계장은 “가능한 수준에서 공용과 개인 공간을 나눴다”며 “면적이 50㎡로 제약이 있어 남녀공간을 따로 만드는 것 등 반영하지 못한 의견도 있어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쉼터는 음료 냉장고와 정수기, 커피머신, 개수대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쉼터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7시로 잡았다. 배달과 방문 업무가 주로 이뤄지는 시간이다. 이용자를 대상으로 노무 상담이나 공간을 대여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9월부터는 주말 대관을 할 예정이다. 김정미 일자리창출팀장은 “간담회 때 모임이나 회의 등을 위한 주말 공간 이용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며 “예약제로 운영하며 구체적인 방식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구는 하반기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이용자들의 직종, 방문 시간, 체류 시간 등을 파악해 확대 방안을 마련할 때 반영할 예정이다.

이날 렌털 제품 방문점검원 중년 여성 2명도 쉼터를 찾았다. 이들은 “이전엔 주로 슈퍼, 은행 등에 가서 더위를 식혔는데 눈치가 보여 불편했다”며 “남녀 공간 분리가 됐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눈치 보지 않고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간식거리를 갖고 와 요기도 할 수 있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노무 상담에 대한 기대도 컸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 확대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적용받지 못해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 이들은 “고용센터 등에서 상담받고 싶지만 일과 시간에는 따로 짬을 내기가 어려워 못하고 있다”며 “틈날 때 와서 쉼터에서 상담받을 수 있게 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쉼터는 장기적으로는 모임·회의 공간 등 다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 평일 업무 시간에 쉴 시간이 없는 방문요양사 등은 소모임이나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상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완도 진행할 예정이다. 배달라이더들은 인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오토바이를 주차할 수 있기를,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이동하는 방문점검원들은 쉼터 찾기가 쉽게 안내가 잘 되길 바란다고 한다. 박혜미 일자리창출팀 주무관은 “조만간 이용대상자들을 포함한 운영위원회를 꾸려 의견을 모아볼 생각이다”라고 했다.

성동구에 이어 지난달 중랑구도 이동노동자 쉼터를 열었다. 쉼터는 경의중앙선 중랑역 인근 상권에서 가까운 중랑사회적경제센터 건물 1층에 자리 잡았다. 24㎡ 규모로 다소 좁지만 바로 옆에 주민커뮤니티 카페가 있어 함께 쓸 수 있다. 쉼터는 중랑구 직영으로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 2명이 교대 근무하며,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9시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앞으로도 이동노동자를 위한 지원사업을 더욱 다양화해 보다 나은 근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