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중학교에서 학부모회 활동
순회단 만들고 학교폭력위에도 참석
4년 활동 뒤 왼팔, 다음해 오른팔 수술
활동 정리 뒤 집에 머물며 연락도 끊어
매일 글 쓰니 “무기력 생활 극복 새 활력”
학부모 활동 정리해서 책으로 펴내고
‘가수 하현우 대상 덕질’ 한 내용도 출판
매일 그린 그림으론 ‘독립출판 그림책’
“그림책 출판기념식에 갔는데, 사람들이 작가를 축하해주더라고요. 환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그 순간 조용미(55)씨는 그림책 작가라는 꿈을 마음에 품었다. 6년 전 일이다. 조씨는 지금 여섯 권의 책을 펴낸 작가가 됐다.
조씨는 딸 셋, 아들 하나인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와 남동생 틈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학창 시절 글로 상을 받긴 했지만 문학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어른이 되면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서점을 차리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출판 쪽에서 일했고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레 교육 운동에 관심이 갔다.
2010년 조씨는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학부모회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학부모순회단으로 학교 주변을 돌며 학생들을 학교로 들여보냈다. 순회단이 이름을 기억하는 학생이 늘수록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이 줄었다. 다음해 조씨는 학교폭력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대책은 없이 가해 학생 처벌안을 찬반에 부치더라고요.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데, 저도 딱히 대책이 없는 거예요.”
독립출판으로 만든 그림책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와 그 외 독립출판물.
그는 어딘가에 있을 해법을 찾아다니다가 교육청에서 ‘회복적 정의’ 강의를 듣게 됐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가 회복하도록 도와주고 가해자에게 자기 잘못을 직면케 해 그 책임을 지게 하는 거다. 학교도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회복적 정의 강좌를 마련했다. 학교를 감싼 어른들이 학생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학교에 변화가 생겼다. 더 나아가 그는 평화마을공동체를 만들려 했다.
학부모회 활동을 하며 힘들었던 건 무엇일까? “치맛바람 아니냐는 눈초리죠.” 공사 구별을 위해 조씨는 회의하러 학교에 갈 때 교사들에게 ‘누구 어머니’가 아닌 ‘조용미씨’로 불러달라고 청했다. 조씨뿐 아니라 학부모회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지루하고 반복된 학부모회의 요청으로 결국 교사들도 호칭을 바꿔 불렀다.
남편은 그의 활동에 대해 뭐라 했을까? “각자 서로의 활동을 존중해요. 또 남편도 교육 운동에 동의해서 한 번도 반대한 적은 없어요. 고맙죠.”
조용미 작가가 쓴 책들. <사고뭉치 맞춤법 박사>는 예전에 쓴 책으로 조용미 작가의 이름으로 내지 못했다.
4년 뒤 조씨는 통증으로 왼팔을 수술해야 했다. 재활이 너무 힘겨워 그는 몸 관리를 잘해서 다른 팔은 수술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다음해 오른팔도 수술하게 됐다. 그는 절망스러웠다. 게다가 수술 직후에도 노트북을 끼고 살아야 할 만큼 학부모회 일이 많았다. 재활 기간에 갱년기까지 겹치면서 몸 상태가 바닥을 쳤다.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학부모회 활동을 정리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에게 뜻을 전하고 집에 틀어박혔다. 연락도 다 끊었다. 몸이 아프니 모든 게 다 의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씨는 우연히 가수 하현우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가수 영상 보는 게 부끄러워서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이불 속에서 숨어서 봤어요.”
그는 자신이 ‘덕질’(팬 활동)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 콘서트장에 갔는데 끝나고 집으로 바로 올 수가 없었어요. 영혼을 거기에 두고 오는 거 같아 공연장 주위를 계속 돌았죠.” 덕질을 할수록 조씨가 느낀 기쁨을 본인의 삶으로 가져가라고 덕주(팬 활동 대상)가 다그치는 거 같았다. 만사가 시들한 삶에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조용미 작가가 <돌멩이 치우는 마음> 관련 강의할 때 사용한 도구들. 액자는 강의가 끝나고 학부모들에게 받은 선물.
그때 조씨는 그간 학부모회 활동을 정리하는 원고를 쓰고 있었다. 때마침 지인의 그림책 출판기념식이 열려 조씨도 참석하게 됐다. 그림책 작업은 조씨가 당시 쓰던 학부모회 관련 원고작업에 비해 말랑말랑하고 따스할 거 같았다. 그런 예술적 작업이 하고 싶었다. 그는 이전과 다른 삶이 살고 싶어 새로운 분야인 그림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일상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꾸준히 올렸다.
그해 말 조씨가 쓴 학부모회 관련 책인 <어서 와 학부모회는 처음이지?>(맘에드림 펴냄, 2017년)가 나왔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학부모회 활동을 실패라 평가했다. 다른 부모들이 자신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책을 냈다.
2년 뒤 조씨는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준비했다. 그림책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를 독립출판으로 100권 만들었다. 독립출판은 개인이 직접 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는 이렇게 그림책을 펴냈고, 정식 출판으로 그림책 작가가 되는 꿈은 여전히 품고 있다.
다음해 조씨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덕질 관련 글을 본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나온 책이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초록비책공방 펴냄, 2020년)다. 책에는 덕질 예찬론이 담겼다.
2021년, 조씨는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편소설 <돌멩이를 치우는 마음>(내일을여는마음 펴냄, 2022년)이 나왔고, 그가 생각하는 학폭 해법을 책에 담았다. 올해는 왕따를 소재로 동화책 <단톡방이 사라지다!>(하마 펴냄)를 냈다. 가을에 <상담실에 불려 갔습니다>(가제)라는 제목의 동화와 조씨 주변의 ‘그녀들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출간 예정이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은 ‘갱년기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거예요. 기사 나가고 출판사에서 연락 오면 좋겠어요.”
인생 2막으로 글 쓰고 싶은 사람에게 해줄 말은 무엇일까? “글쓰기 하면서 저는 많은 것이 해소됐어요.” 매일 그림 그리고 글 쓰다보면 어느덧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그때 조씨는 행복했다. “글 잘 쓰고 싶죠. 그런데 욕심이라 생각해요. 잘 쓰려고 하면 아예 못 쓸 거 같아 그냥 욕심을 버렸어요.” 같이 웃었다. “남편은 ‘덕질’ 책 내고는 기대감이 생겼는지, 취업 생각 말고 글만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딱 50만원만 벌면 좋겠어요.”
교육활동가로 학교를 넘어서 평화마을을 만들려 했던 그는 수술과 갱년기란 고비를 만나면서 대의만을 중시한 삶을 내려놓았다. 모든 게 무의미하던 시절 마침 덕주를 만나 삶의 동력을 얻고 작가라는 꿈을 품었다. 지금은 자신에게 닿기 위해 덕질도 하고 글도 쓴다. 조씨는 유명해지기보다 그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조용미 작가가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해진다.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