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내 고통 부끄러워하지도, 두려워도 마세요

[내 삶의 주인 되기] 삼대독자 며느리 “효자 남편에 지쳐 자해까지”

등록 : 2016-03-31 14:41 수정 : 2016-04-29 01:20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두 아들을 둔 마흔다섯 살의 여성입니다. 얼마 전 저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내 손목을 그어 위험한 상태에 갔었습니다. 저는 사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요.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에게 고민은 남편과 시어머니입니다. 나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하늘이 내려주신 삼대독자 효자 남편과 15년째 살고 있습니다. 시댁은 우리집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지만 우리 가족은 한달에 한두번씩 꼬박꼬박 시댁 행사에 참여하고, 저는 거기서 늘 노동하는 하녀, 먹을 것을 대령하는 식모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명절이면 남편보다 며칠 앞서 내려가 시부모가 사시는 단독주택을 대청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먹거리 준비에 철저한 시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밭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뼛골이 쑤시게 식모 노릇을 합니다.

처음엔 장한 며느리, 예쁜 며느리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나중엔 시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노력도 해봤지만 그 노력은 늘 나를 배신했습니다. 삼대독자의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한 것이고, 시어머니 눈에는 제가 여전히 부족한 며느리일 뿐이었으니까요.그렇지만 남편은 어머니 생각만 하면 늘 눈시울부터 붉히며, 어머니 말씀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징글징글해요.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고, 술 먹고 소리도 쳐보고 해봤지만 남편은 변하지 않습니다. 감기몸살이 겹쳐 얼굴에 열꽃이 핀 채로 앓아누운 아내에게 김장하러 어서 시댁 가라고 하는 남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취업을 했습니다. 남편의 효도놀이에서 빠지려고요. 복수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출근을 합니다. 김미영(가명)

A.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해를 하셨다니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제 마음이 다 서늘해집니다. 왜 자해까지 하시게 됐을까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증이 깊어진 상태인 것 같습니다. 님의 글을 읽어보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지, 분노와 소외감이 얼마나 깊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김미영님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야말로 관계의존적 모자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밀착된 관계에서는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됩니다. 어쩌면 그 반대로 상대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밀착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님의 남편은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과 애틋함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며, 그럴 때 자신이 따뜻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더 말할 나위 없지요. 그녀는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정체성 안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독립적인 자기에 대한 정체성 없이 상대가 존재할 때만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관계의존적인, 더 정확히는 관계중독적인 성향을 갖게 됩니다. 사실은 김미영님도 관계의존적 성향을 가지고 계셨을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그런 효자와 자식사랑이 지극한 어머니에게 매력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 안정된 관계 안에서 자식 같은 며느리를 꿈꾸셨겠지요.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와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밀착된 모자관계는 자기애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성향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타인이 들어갈 틈이 별로 없습니다. 또 자기애적 특성에 말려들면 그들의 사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니 이런 건강하지 않은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일은 이제 그만두셔야 합니다.  

어떤 관계 안에서만 자기의 정체성을 찾을 때 그 관계는 건강할 리 없습니다. 나는 없고, 상대만 존재하는 이상한 관계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우리는 상대의 관심과 칭찬과 평가에 목매게 됩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면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무엇보다 치명적인 문제는 상대가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식대로 나를 규정하고 이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주인 없는 빈집에 들어와 자기 멋대로 인테리어를 바꾸고, 아무렇게나 어질러놓는 무례를 범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유린당하는 것 같고, 늘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게 됐을 겁니다. 우리는 의존적 관계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리고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술을 찾지만, 문제는 술이야말로 의존성을 중독의 수치까지 끌어올린다는 데 있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이제 효도놀이에서 빠져나오세요. 더 이상 시집 식구들의 도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을 구하신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하지 마시고, 자신을 찾기 위해서, 진정한 자신과 접촉하기 위해서 일하십시오. 누군가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그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욕구의 다른 측면입니다. 만약 그들이 당신의 분노를 알아채고 일시적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다면 당신은 금방 마음이 녹아서 다시 그들 주위를 서성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그 어떤 관계에 있지 않아도,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내가 여기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느끼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알코올중독과 관련한 치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의식을 놓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뒤 자해까지 하셨다면 상당히 긴박한 내면의 과제가 당신 안에 있으며, 그것이 당신의 관심과 해결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중년 이후의 의식 발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융 심리학은, 중년에 겪는 고난과 고통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이 중년의 시기에 겪는 혹독한 어려움은 일종의 강력한 내적 촉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탐색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와 만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일종의 응급 신호라는 것이지요.  

김미영님도 자신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나란 누구인가? 나는 왜 그런 삶의 패턴을 반복했는가? 내 고통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것이어도 좋고, 내가 가장 행복해하는 일, 충만하게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이 가진 고통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시작은 괴롭지만 진정한 자기와의 만남이 가까워질수록 기쁨이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됩니다. 그 시절의 고통이 사실은 기쁨으로 가는 출구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