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제야의 종을 울릴 날도 머지않았다. 2016년 병신년은 어느 해보다도 헤아릴 일이 많았다. 지난 길을 돌아보고, 내일을 그려볼 때다. 먼바다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 폭포를 거슬러 오른 잉어 한 마리가 솟구친다. 조선 시대의 그림 ‘약리도’의 풍경이다. 온 힘을 다해 헤엄쳐온 잉어가 용이 되는 기적을 그렸다. 해돋이의 시각을 상서롭게 여기는 건 대대로 내려온 의식이다. 해돋이를 보러 동해까지 달려가지 못해도, 도심 곳곳에 못지않은 명소들이 있다. 동살 가득한 아침놀에 서서히 깨어나는 도시. 이는 서울에 남은 이들만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정취다. 각자의 사정으로 도시에 묶인 이들에게 서울 곳곳에 숨은 ‘해돋이·해넘이 명소’를 소개한다. 갓 밝아오는 햇살이 이마에 젖어들면 후회는 뒤로하고 행복을 덕담할 차례. 어쩌면 그 시각 한 마리 잉어처럼 솟구쳐 올라 용으로 거듭날지 모른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1월1일 서울에 해 뜨는 시각은 오전 7시 46분 55초다.
해맞이 행사가 기다리는 도심 명산
중구 남산
남산은 접근성이 좋아 아직 해맞이 장소를 찾지 못한 시민들에게 부담 없는 선택지이다. 남산공원에서 출발해 약 20~30분 걸어올라가는 가벼운 산행을 하고, 남산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며 청명한 겨울햇볕을 머금기 좋다. 팔각정 앞에서는 해돋이에 맞춰 ‘해오름 함성’을 지른 뒤, 행복기원 만세 삼창, 새해 덕담 나누기, 노래, 시 낭송, 소
망 풍선 날리기 등의 행사를 열 예정이다. 마을버스 03번이 남산자락 따라 팔각정까지 수시로 순환한다. (용산구 남산공원길 105 부근/ 02-3396-4614)
광진구 아차산
아차산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해마다 4만여명이 몰릴 정도로 뜨겁고 활기찬 해맞이 명소다.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는 시민들이 새벽길을 깨우고, 어느덧 해가 오른 해맞이광장에 모여 덕담을 나눈다. 올해는 아차산 들머리에서 해맞이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을 청사초롱 250여 개가 환하게 밝힐 예정이다. 아차산 해
맞이광장에서는 타북 공연, 사랑의 차 나누기, 소원지 작성, 윷 점 보기 등 시민들을 위한 행사가 열린다. (광진구 아차산 해맞이광장 /02-450-7575)
종로구 인왕산
새해 ‘백호’의 기운을 받아 건강하게 시작하고 싶다면 종로구 인왕산으로 가보자.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 덕인지, 운이 좋으면 호랑이를 닮은 들고양이들이 위풍당당 길잡이도 해준다. 약 1시간 30분 산행하면 바위산 너머 아침놀에 물드는 서울 절경을 볼 수 있다. 인왕산 청운공원(시인의언덕)에서는 새해 첫 해맞이 행사로 풍물패 한마당 공연, 소망 박 터뜨리기, 대고각 북치기, 새해 소망이나 가훈 써주기, 새해 소원지 달기 등을 마련한다. (종로구 청운동 7-4 / 02-2148-5002)
그 밖에 서울 전역의 도심 명산마다 해맞이 행사가 있다. 강북구 북한산, 노원구 불암산(중턱 헬기장), 도봉구 도봉산 천축사, 서대문구 안산 봉수대 등지에서는 새해 기원문
낭독과 타북 공연, 축시 낭독, 새해 박 터뜨리기, 풍물놀이, 덕담 나누기 등이 열린다. 서초구 우면산 소망탑, 동대문구 배봉산 전망대, 양천구 용왕산 용왕정, 강동구 일자
산 해맞이광장, 금천구 호압사에서도 다양한 해맞이 행사를 비롯해 새해 첫 아침 떡국을 나눈다. 성북구 개운산 운동장에서는 국악공연이, 마포구 하늘공원에서는 팝페라 공연도 마련해 시민들의 흥을 돋울 예정이다. 근처에 산다면 새벽녘부터 슬슬 걸어올라 동네 이웃들과 덕담을 나누고 따끈한 복떡국 한 그릇씩 먹어보자.
일몰이 아름다운 도심 곳곳
먼 곳 나서지 않고 가까운 공원에서 보는 노을은 언제나 운치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서른여 개의 다리 그림자가 강물에 번지며 만들어내는 금빛 윤슬이 아름답다. 해거름
무렵 서쪽 빌딩 뒤로 사라지는 태양과 차오르는 달빛은 도시의 정경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응봉산 팔각정의 ‘매직아워’
성동구 응봉산 근린공원에서 수직계단을 따라 15분쯤 땀을 내며 걸으면 응봉산 정상에 닿는다. 팔각정 지붕에 머물던 붉은 태양이 서쪽으로 떨어지며 서울에 저녁이 스미는데, 이 순간을 ‘매직아워’라 이르는 출사객들이 일찌감치 삼각대를 세워 해넘이만 기다린다. 응봉산의 해맞이 행사 역시 유명하니, 같은 장소에 올라 어제의 태양과 만나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해거름 무렵 동네 공원의 변신
‘낙산공원’은 다가가기 쉬운 대표적 일몰 경관지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도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힌다. 해 질 녘 ‘반포한강공원 세빛섬’은 노을과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고, 여의도 한강공원의 ‘물빛광장’도 바쁜 직장인들이 언제든 들러 저녁놀을 즐기기 좋다. 해 저문 강바람은 날카로우니, 따뜻한 손난로 하나 품고 노을 진 산책로를 걸어보자.
드라이브하며 보는 해넘이 풍경
한강을 가로지르는 서른 개 넘는 다리도 지는 해를 감상하기 좋은 장소다. 동작대교와 양화대교는 물론, 청담대교의 ‘자벌레 전망대’에서 보는 한강의 해거름 풍경도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한강의 주요 다리에서 편하게 감상하려면 시티투어버스 프로그램의 ‘야간 코스’를 활용하면 된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일몰에서 야경으로 이어지는 강물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글 전현주 서울앤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각 자치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