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노원구 아이들 “인형극 보면서 장애 이해력과 공감력 길러요”
노원구, 26곳 1300여 명 대상 ‘찾아가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 지원
발달장애인 극단 공연 보고, 배우들 이야기 들으며 자연스레 경험
등록 : 2023-09-07 15:07
“기다리고 이해하고…장애 친구와 더불어 살기의 시작”
발달장애 배우들의 차별 경험 다뤄
장애 특성 알리며 이해·응원 부탁
구, 교육 지원 아동 2배 늘릴 계획
지난 8월31일 오전 노원구 상계동 북부종합사회복지관 강당은 100여 명의 어린이로 북적였다. 인형극 ‘식빵가면’을 보러온 국공립 어린이집 4곳(은나래, 은빛, 중계 행복, 북부)의 3~7살반 아이들은 반별로 나눠 자리에 앉았다. 발달장애인 인형극단 ‘멋진친구들’의 김예은(24)씨가 밝은 표정과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한 뒤 공연 시작을 알렸다.
인형극 무대 배경은 어린이집 공간이다. 가면 만들기 모둠 활동에 나선 용철, 예은, 태환, 소정 네 아이의 이야기다.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막대인형을 조작하며 동작을 만들어내고 목소리 연기를 했다.
예은, 태환, 소정은 어떤 가면을 만들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용철이는 계속 혼잣말만 한다. 태환은 용철에게 짜증을 내고 따돌리려 했고, 예은은 용철이를 이해하려 하면서 아이들은 티격태격한다. 마침내 아이들이 용철이의 마음을 알게 되고 종이가방을 활용해 함께 식빵가면을 만든다. 서로 이해하며 배려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 인형극을 보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날 인형극은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노원구의 지원 사업으로 열렸다. 노원구는 26개 기관(어린이집, 유치원, 초교) 1300여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장애인 편의 증진 종합계획을 선포하고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6월에 시작해 11월까지 이어진다.
장애인 정책에서 시설 개선 못지않게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도 매우 중요하다. 구는 장애인과 가족들이 지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인식 개선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올해 교육 대상을 어린이로 잡고 장애인 극단이 직접 찾아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로 공연하는 방식을 기획했다. 이성미 장애인복지과장은 “유년 시절부터 장애인을 가까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의 장애 공감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구는 지난 4월부터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참여 기관을 모집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반을 운영하는 기관을 우선 선정했다. 소규모 어린이집은 두서너 곳이 합쳐 참가해 18번 공연할 계획이다. 박미향 장애인친화도시팀장은 “짧은 기간에 41곳이 신청했다”며 “사립 교육기관에서도 문의가 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은 다섯 번째다. 20여분의 인형극이 끝나자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모두 ‘멋진친구들 나와라’라고 외쳤다. 배우들이 각자 연기했던 막대인형을 가슴에 안고 객석으로 내려와 한 줄로 섰다. 인형을 움직였던 배우들 모습을 직접 보는 게 신기한 듯 아이들은 ‘우와’ 탄성을 내뱉기도 하고, 몇몇 아이는 ‘누구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배우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의 장애 특성을 말했다. 신용철(용철 역)씨가 “용철이는 생각을 말로 하는 게 어려워요. 친구들이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면 알아듣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기다려주실 거죠?”라고 묻자 객석의 아이들이 “예” 라고 입 모아 답했다.
예은 역의 김예은씨는 목소리 연기만 한다. 여러 차례 뇌수술로 손 근육이 약해 인형 조작을 못 한다. 예은이 인형을 조작한 정승환씨는 “남들보다 두세 배 더 걸려 반복해 연습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시간 오래 걸리는 친구를 만나면 응원해줄 거죠”라고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조태환(태환 역)씨는 레고 조립하기에 몰입해 고집 피울 때를 얘기하며 “생각 주머니를 옮기기 힘들어서 그런 거니 기다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정리가 안 돼 있으면 불안을 느끼는 이소정(소정 역)씨는 “친구마다 좋아하는 게 다를 수 있으니 저처럼 정리하는 걸 열심히 하는 친구를 만나면 이해해주세요”라고 했다.
배우들의 인사와 이야기가 끝난 뒤 아이들은 키 크기가 서로 다른 동물 친구들이 사진을 찍는 이야기를 들었다. 커다란 천에 기린, 햄스터, 코알라, 악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들이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키 크기가 달라 고민한다. ‘키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다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지고 마지막 천에서 기린과 악어가 엎드려 모두가 다 나온 그림을 보여준다. 이렇게 아이들은 이해와 배려에 대한 생각을 한 번 더 해본다.
이날 공연은 동요 ‘모두 다 꽃이야’를 함께 부르며 마무리했다. 국악 리듬의 흥겨움과 가사에서 전해지는 감동이 강당 안을 가득 채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피어나든 모두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꽃이라는 가사가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어린이집에서 배워 노래를 안다는 진서연(7)양도 즐겁게 따라 불렀다. 진양은 “(인형극의) 예은이처럼 용철이 같은 친구를 만나면 잘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배건우(7)군은 “(처음에 나온) 방귀 얘기가 제일 재밌어요”라며 “집에 가서 엄마와 아빠에게 인형극 본 거 얘기할 거예요”라고 했다.
통합어린이집 장애아동 6명과 교사들도 공연을 함께 봤다. 교사들은 “배우들을 보니 우리 아이들의 미래 모습이 될 수 있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장애아동들 가운데 집중해 열심히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객석에서 함께한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재밌게 진행한 발달장애 배우들의 모습에 감동했다”며 “발음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해서 여기까지 오기 위한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고 칭찬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장애 친구들과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의 극단 ‘멋진친구들’ 배우 4명은 2010년 창단 멤버로 10년 넘게 막대인형을 조작하고 공연해왔다. 작품 내용은 대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통합교육을 받으며 직접 겪은 차별 경험을 다룬다. 극단의 기획을 맡은 박용연 소장은 “‘식빵가면’은 같은 말을 반복해 소통이 어려웠던 용철씨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배우들은 연습할 때 자신들이 겪은 상황에 대한 얘기도 더하고, 대본에서 어려운 표현이나 단어를 찾아 고쳐내기도 한다. 공연 앞뒤로 인형극 무대를 세우고 치우는 일에도 스태프와 함께한다. 박 소장은 “매일 4시간 이상 연습한다”며 “처음에는 막대인형 조작과 대사 외우기를 힘들어했는데, 오랜 시간 훈련과 반복으로 지금은 잘한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발달장애 배우 양성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박 소장은 “대부분의 자치구가 장애인단체 예산으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하는 것과 달리 노원구는 자체 예산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매뉴얼이 완성되면 노원구에서 시범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길게는 장애인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해 자립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노원구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 콘텐츠의 다양화 요구를 반영해 새로운 시도도 모색한다. ‘멋진친구들’ 배우의 일상 등 장애인이 동네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콘텐츠로 구민의 장애 감수성을 높여나가는 ‘시나브로+(플러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예산을 확보해 내년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시나브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낸 장경식 장애인친화도시팀 주무관은 “장애인식 개선 필요성은 높은데 연 1회 의무교육의 효과는 낮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장애에 대한 공감과 인식 개선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해냈다”고 했다. 장 주무관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5개 테마 홍보 영상을 만들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다섯 번째 찾아가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 인형극 공연이 끝난 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발달장애 배우들,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 구청장은 “장애인식 개선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며 “교육 지원 대상 아동을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노원구가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어린이 1300여 명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한다. 구는 장애인 정책에서 시설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장애인식 개선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통합교육을 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26곳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구는 유년기 아이들의 장애 이해력과 공감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은 8월31일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장애인식 개선 교육 인형극 공연장 모습. 발달장애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막대인형을 조작하며 목소리 연기를 하고 있다.
이날 인형극은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노원구의 지원 사업으로 열렸다. 노원구는 26개 기관(어린이집, 유치원, 초교) 1300여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장애인 편의 증진 종합계획을 선포하고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6월에 시작해 11월까지 이어진다.
인형극 ‘식빵가면’ 무대 모습.
발달장애 배우들이 객석으로 나와 관객인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극단 ‘멋진친구들’ 소속 배우들. (왼쪽부터) 신용철, 정승환, 김예은, 조태환, 이소정씨.
8월31일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다섯 번째 장애인식 개선 교육 인형극 공연이 끝난 뒤 오승록 노원구청장(뒷줄 왼쪽 셋째)과 배우들, 참여 어린이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