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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응원 펼침막’ 커피집에 핫팩 3만개 보내와

청와대 인근 통인동커피공방 박철우 대표

등록 : 2016-12-22 15:36
‘개념 커피집’으로 알려진 통인동커피공방의 박철우 대표가 17일 저녁, 커피를 만들고 있다.

올 한 해 서울에서 가장 ‘뜨거웠던 공간'을 꼽자면 지하철 경복궁역~효자치안센터의 1㎞ 남짓한 자하문로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이곳은 ‘민심의 바다’이자 ‘해방 광장'이요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다. 촛불의 목소리는 3차 집회인 11월12일 청와대에서 900m 떨어진 내자동로터리에서 시작해 500m(4차 집회·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200m(5차 집회·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거쳐 6차 집회부터는 100m 거리인 효자치안센터 앞까지 이르렀다.

그 두 달여 동안 이 거리를 지키며 누구 못지않게 뭉클하게 촛불과 교감한 사람이 있다. 촛불한테서 벅찬 감동을 받고, 촛불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기운을 북돋웠다. 자하문로에 자리한 ‘통인동커피공방’의 박철우(40) 대표.

박 대표는 6차 집회가 열린 12월3일 커피공방 건물 전면에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라고 쓴 대형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리고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커피공방 앞에서 시민들에게 따뜻한 보리차를 제공했다. 10일(7차 집회) 펼침막의 내용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였다. 작곡가 윤민석이 만든 세월호 추모곡의 가사다.

- 한 트위터 사용자가 펼침막 사진을 올리고 ‘개념 커피집'이라고 평했는데.

“고마운 말씀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지 않은가. 사진 찍기 좋고 인상적인 곳이라 의미 있게 봐 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커피에는 거창한 이념이 없다.”


- 펼침막을 내건 이유가 궁금하다.

“그 많은 촛불들이 이 거리로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청와대로 가지만, 커피공방 처지에서 보면 시민들이 ‘온다'. 토요일 오후에 촛불이 밀려오는 광경은 벅찬 감동이다. 그분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그리고 마을에 오는 손님들에게 물 한잔 드린다는 심정으로.”

- 혹시 겁이 나지는 않았나?

“솔직히 부담이 된다. 펼침막을 내건 뒤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소문이 나니 더 그렇다. 하지만 추운 날 고생하셨다고 물 한잔 드리는 소박한 마음이라서 유불리를 따질 일은 아니다.”

- 세월호 유족들에게 각별한 애정과 연민을 느끼는 것 같다.

“유족들은 2014년 8월부터 76일 동안 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그분들에게 그때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 12월3일 유족들이 촛불의 맨 앞에 서서 청와대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분들에게 ‘그래 아직 여기에 우리를 기억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구나' 하는 느낌 하나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라는 펼침막을 달았다.”

- 많은 분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함께했다는데.

“지금까지 커피공방으로 전국에서 보내와 시민에게 나눠준 핫팩이 3만 개가 넘는다. 대부분 익명이다. 한 기업의 제빵 동아리는 토요일 오전에 빵을 400개 만들어 가져왔다. 커피공방의 오랜 단골 한 분은 보리차와 핫팩 비용으로 30만원과 5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일일이 다 얘기하기 힘들다.”

- ‘촛불’에 대한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그래도 국가가 자신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무능력하긴 하지만. 그런데 국가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마지막 바닷물을 마시며 숨져갈 때 (청와대에서) 누구는 고고하게 점심을 먹었다. 상상할 수 없는 7시간이다. 이것은 범죄다.”

- 커피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박 대표에게 커피란 무엇인가?

“커피는 맛이나 질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음료'라 생각한다. 졸음을 쫓고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하는 친구다. 가사노동을 포함해 일하는 모든 이들이 노동을 마친 뒤 가족들과 나누는 위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객들에게도 커피판매점보다는 일터나 가정에서 커피를 마시라고 권한다.”

지난 17일 촛불집회 때 커피공방이 내건 펼침막
박 대표는 대학을 마친 뒤 직장생활을 하다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자하문로의 지금 자리에서 통인동커피공방을 운영하기는 9년째다. 커피가 ‘일하는 사람의 음료'라는 믿음 때문에 노동절인 5월1일에는 커피공방을 쉰다. 대신 4월30일에 손님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드린다. 이 ‘커피 나눔'은 자연스럽게 손님들의 기부로 이어져, 그동안 4월30일에 도시농업, 감정노동자, 유기견 등을 지원하는 행사를 벌였다.

직원들은 주 5일제 근무가 원칙이다. 주당 45시간을 일하고, 그 가운데 법정 노동시간(40시간)을 초과한 5시간에 대해선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한다. 장애인·인권단체 등을 포함한 15개 시민·사회단체에 커피와 후원금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실 남는 게 없다”며 박 대표는 웃었다.

- 촛불은 꾸준히 이어질 텐데, 특별한 계획은.

“12월31일 올해의 마지막 촛불집회 때 세월호 유족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4160그릇의 밥을 마련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 밥상 준비를 도울 예정이다. 시민들이 기쁨과 슬픔, 희망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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