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봉사활동을 시작한 강서구 화곡1동 ‘절친’ 김철호(오른쪽)·윤대규씨가 화곡1동에 있는 두 사람의 사무실
에서 밝게 웃고 있다.
유치원 학부모로 만나 의기투합 15년
통장인 김씨가 먼저 봉사활동 제안
마음 상처 입고 벽 쌓고 지내는 노인들
봉사 뒤 새 삶을 사는 모습 보며 ‘기쁨’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어르신들과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니 저희도 기분이 좋죠.” 김철호(49) 강서구 화곡1동 38통장과 방역 회사를 운영하는 윤대규(39)씨는 지난 8월 무더운 날씨에도 묵묵히 화곡1동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해 방역 봉사활동을 펼쳤다. 두 사람은 바퀴벌레 등을 잡는 살충 작업과 곰팡이 등을 없애는 살균 소독을 함께 했다. 김 통장은 7일 “지난 3월에 통장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방역 얘기가 나왔다”며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지 못해 냄새가 나고 벌레가 꼬여 고민이 큰 집이 많다”고 했다.
“교회에서 목회하다 마음을 다쳐 사회와 벽을 쌓은 분이 있었죠. 마음의 문이 닫혀 말도 없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렸습니다.” 두 사람은 8월에 그 사람 집을 방문해 소독도 해주고, 미용실과 연결해 머리 염색도 해줬다. “그런 뒤 그분이 다시 교회에 나오고 한 신학대 교수로 임용됐어요.” 김 통장은 “우리가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면 이분처럼 다시 사회에 나와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분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기대감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마음 닿는 데까지 하겠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과 같은 반지하에서 사는 한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보행기를 잡고 움직여요. 화장실 이용도 힘들어하죠. 집에 냄새도 나고 짐보따리가 천장까지 쌓였을 정도로 주거 상태도 열악했어요.” 이 할머니는 화곡1동 주민센터에서 긴급 주거지원을 받아 다른 곳으로 거처를 잠시 옮겼다. 그런 뒤 소독하고 짐 정리도 깔끔하게 다 했다. 두 사람은 “할머니가 처음에는 안 해도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무척 고마워하더라”며 “앞으로 계속해야겠다는 결심도 생겼다”고 했다.
김 통장과 윤씨는 15년 ‘절친’이다. 두 사람은 유치원 학부모로 처음 만나 의기투합했다. 화곡동에서 35년째 사는 김 통장은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목 디스크로 잠시 사업을 쉬고 있다. 지금은 친구 윤씨의 권유로 함께 향기를 판매하는 대리점 대표로 일한다. 화곡동에서 25년째 사는 윤씨도 방역회사를 운영하며 향기를 판매하는 대리점 대표를 맡고 있다.
윤대규가 곰팡이가 피기 쉬운 곳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봉사활동은 김 통장이 윤씨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김 통장한테 지역 사회 어르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고 들었죠. 제가 소독과 방역도 하니 같이 한번 나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윤씨는 “한 달에 한 번만 나가자고 하는 것을 처음에는 힘들다고 했더니, 그럼 딱 한 번만 나가자고 해서 나갔는데, 그 이후로 코가 꿰었다”고 했다.
김 통장은 2018년부터 통장으로 일한다. “아내가 하던 것을 대신 제가 하다가 매력을 느꼈어요.” 김 통장은 “주변의 취약 계층을 자주 찾아가다보니, 웬만한 사정은 다 안다”고 했다. 통장을 맡고부터 사회복지와 노인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그래서 김 통장은 지난 4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해봤는데, 물품만 전달하고 오는 게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고요.” 김 통장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다보니 노인복지 사각지대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어떻게 도움을 줄지 고민이 많이 됐다”고 했다.
“몸은 건강한데 마음이 아픈 노인이 많아요. 상처를 받아 사회로 나오는 걸 꺼리죠. 그런 어르신은 물품보다 대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김 통장은 “어르신들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우울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어르신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김 통장은 교회는 상담업무, 미용실은 깔끔한 외모 가꿔주기, 부동산은 적합한 집 찾아주기 등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모이면 재능을 기부할 일이 많다고 했다.
두 사람은 향을 판매하는 대리점을 운영한다. “어둡고 음침한 곳에 혼자 있으면 우울증도 생긴다고 들었어요. 좋은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윤씨는 “향기는 치매에도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좋은 향이 나는 집을 만들어드리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 통장은 의외로 노인들이 전기 관련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희 두 사람과 함께 친한 친구가 한 명 더 있습니다. 그 친구가 전기 일을 하는데 앞으로 할 봉사활동에 꼭 필요한 친구죠.” 두 사람은 “함께 봉사활동을 하자고 계속 친구에게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자주 봉사활동을 못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죠. 이런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이 웃는 얼굴로 행복한 마음이 들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길 바라죠.” 두 사람은 “앞으로 재능기부팀을 만들어 동 주민센터와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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