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모두 함께 ‘문화예술 가치’ 공유해요”

청와대에서 진행된 2023 장애인문화예술축제 ‘A+ 페스티벌’ 취재기

등록 : 2023-09-14 16:40 수정 : 2023-09-14 17:40
2일 오후 청와대 헬기장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가능성, 접근성, 역동성 강조하는

국내 최대의 장애인 문화예술행사

1~3일 공연과 체험 등 ‘풍성한 잔치’

장애 예술인 특별전시는 15일까지


입구에서 휠체어 입장객 친절 안내

행사 진행은 수어 통역으로 상세 설명


자폐 작가가 그려주는 캐리커처 인기

“작가도 두려움 극복하는 훈련 기회 돼”

‘그곳에서 비로소 예술.’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2023 장애인문화예술축제 ‘A+ 페스티벌’의 슬로건이다. 서로 다름이 존재함을 이해할 때 다름의 가치 속에 예술이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2009년 시작돼 올해로 15회를 맞은 A+ 페스티벌은 국내 최대의 장애인 문화예술 행사로, 장애 예술을 널리 알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문화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화합의 장으로 통한다. 축제명은 장애 예술의 잠재적 가능성(Ability), 열린 접근성(Accessibility), 활기찬 역동성(Activity)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All Together)한다는 목표를 의미한다. 다름의 가치 속에 피어나는 예술은 어떤 양상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기자도 직접 축제가 열리는 청와대를 찾아 현장 분위기를 살펴봤다.

지난 2일 오후 2시30분, 종로구 청와대 춘추문 앞. 입구에 들어서자 휠체어를 탄 입장객에게 전용 입장로를 친절히 설명해주는 안내요원 어르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입구 근처에는 보행자 입장로와 함께 휠체어 입장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우선 홍보관에 들러 장애 예술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잠시 감상하고 장애인 서예가들이 만든 전통부채 등의 작품을 둘러본 뒤 본 행사장인 헬기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에서는 이날의 첫 공연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장애 예술인이 디자인한 한복을 장애·비장애 모델이 짝지어 입고 등장해 관객에게 선보였다. 관람 공간은 일반 객석과 배리어프리존으로 구성됐고, 대형 전광판 한쪽에는 사회자의 설명에 대한 수어 통역 화면이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는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공연은 장애 예술인의 실용미술 창작물을 소개하는 ‘예술을 입다’와 장애인 무용수들의 전문 공연 ‘댄스 라이트’,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이 함께하는 낭독극 ‘손 없는 색시’ 뮤지컬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휠체어를 탄 자녀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던 김은미(55)씨는 “장애인 관련 행사를 하면 관객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며 “우리 아이도 장애인 무용을 하는데, 장애인 무용이 점점 더 근사해지고 한 영역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예술은 자체로도 고유하지만, 장애인 무용수들은 각자의 몸의 형태가 유일하다”며 “비장애 무용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날 무용공연에 출연한 장애무용가가 직접 드로잉한 엽서를 시민들이 각자 채색해 이어붙인 모습.

무대 주변으로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촉각 점자 페어 구역에는 도서·옷감·조각 등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구역의 모든 안내판과 책자에 일일이 점자 설명이 기재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식개선 구역에서는 장애인 보조공학기기와 다양한 휠체어 체험도 가능했다. 음성 자막화 기능이 있는 의사소통장치(청각장애·언어장애)라든지, 한 손으로도 쓸 수 있도록 자판이 배열된 키보드(지체장애·뇌병변장애) 같은 공학기기들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으로는 시각장애 체험과 시각장애 연주자들의 라이브 공연, 장애인 작가가 그려주는 5분 캐리커처 체험, 장애 무용가가 그린 일러스트엽서 채색하기, 장애인 작가와 함께 캘리그라피 방향제 만들기 등이 준비돼 있었다. 캘리그래피 체험 부스에 들어서자 한 작가가 캘리그래피 제작에 몰두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가 소통이 가능한지 묻자 주변 스태프가 “해당 작가는 청각장애가 있다. 원하는 글귀를 적어주면 그대로 써준다”며 “작가들이 모두 지역에 사는데, 날마다 세 분씩 행사장에 와서 시연한다”고 대신 설명했다.

시민이 요청한 캘리그래피 작품을 제작 중인 청각장애인 작가의 모습.

시각장애 체험 부스에서는 체험용 안경과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을 건네받았다. 안경을 착용하니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스태프는 기자가 든 케인을 올바른 방법으로 다시 쥐여주며 “이 지팡이는 시각장애인들의 팔 역할을 한다”며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확인할 때 필요하다. 보폭에 맞춰 짚어보라”고 안내했다. 케인에 의지해 부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봤다. 제자리로 돌아와 안경을 벗으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 부스를 담당하는 천승수(26)씨는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위주로 설명하는데, 몰랐던 분들도 새롭게 알았다고들 말씀한다. 저도 비장애인으로서 시각장애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획”이라고 말했다.

캐리커처 체험 부스는 행사 진행 내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이날 시연에 나선 작가는 백종하(자폐)씨와 이명상(청각장애)씨. 이곳에서 만난 류영일 한국장애인미술협회 부회장은 “백씨에게는 이런 작품 활동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훈련”이라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교감하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쪽 눈에 의안을 착용한 시각장애인 류 부회장도 이번 행사에 그림을 출품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전시 구역을 기자와 함께 돌아보며 “거리 감각이 없다 보니 세밀한 부분을 그릴 때는 고통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행사 소감을 묻자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견 없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사랑이란 건 서로의 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류영일 작가는 이번 춘추관 특별전에 ‘변하는 마음’이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작품 앞에 선 류 작가.

춘추관에서 열린 장애 예술인 특별전시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에서는 68명의 장애 예술인이 참여한 70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7m짜리 대형 스크린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는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았다. 김용필 전시기획 팀장은 “(입구 쪽에 전시관이 있다 보니) 자연적인 관람객 유입이 많다. 오늘 오전만 해도 3천 명 넘는 인원이 관람했다”며 “그냥 지나쳐 가는 식이 아니라 하나하나 보고 ‘좋다’ 말씀하고, 사진도 찍고 도슨트에도 관심을 가져줘 저희한테는 굉장히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춘추관 특별전은 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축제는 우리나라의 상징적 장소인 청와대에서 개최됐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청와대에서 장애 예술인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지난해 8월 ‘제1회 장애 예술인 특별전’, 올해 4월 장애 예술인 오케스트라 춘추관 특별 공연에 이어 세 번째다. 춘추관에서 만난 배은주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대표는 “대통령의 집무실로 상징적 의미가 있던 장소인 만큼 책임감도 컸다”며 “품격에 맞는 작품과 공연이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갖고 작품성과 프로그램 구성에 많이 신경 썼다. 장애 예술을 확장성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대학로나 광화문에서 행사할 때는 관객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며 “예술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관광객이 있지 않나. 사람들이 작품을 다 둘러보고 간다. 장애인 예술은 늘 외로운 곳에 있었는데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관객을 만나면서 비로소 예술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서로 마주할 때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술에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없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이해하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하며 통합사회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축제를 즐기는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문화예술의 힘을 어렴풋이 느꼈다. 예술을 매개로 하나 된 시민들의 웃음이 바람을 타고 청와대에 울려 퍼졌다.

글·사진 이화랑 객원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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