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노는 남편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세요

두 아이 키우는 남성 주부 “내 폭력성을 어찌할까요”

등록 : 2016-12-29 11:59 수정 : 2016-12-29 16:27
Q) 전 남편입니다. 제가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아내가 직장을 다닙니다. 제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혼할 때부터 이랬고 이제 결혼한 지 만으로 11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은 9살, 6살 형제인데, 제가 전업주부지만 청소, 먹는 거, 설거지, 애들 데려다주고 받고 하는 정도를 하고 있고, 총괄적인 집안일은 아내가 합니다. 전 시키는 거 합니다. 제가 보기에 경제적 어려움은 딱히 없는 거 같습니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육아가 힘들었기 때문에 제 역할이 많았고, 아내도 그걸 인정해서 제가 집안일을 잘 못해도 묵인했습니다. 애들이 점점 커가니 육아 일이 줄어들고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아내는 점점 불만이 쌓여갑니다.

전 어려서부터 게으르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환경 변화가 정말 힘들고 미리 생각해놓은 게 아니면 하기 싫고 예민하고 그렇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짜증과 화를 달고 살고, 종종 때린다는 것입니다. 애들 어려서 육아를 할 때부터 첫째는 한 번인가 때렸고 둘째는 많이 때렸습니다. 부부 싸움을 수도 없이 하는데, 소리 지르고 화내다가 화가 많이 나면 폭발해서 아내를 때리게 됩니다. 총 5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물건을 바닥에 던질 때도, 아내에게 던질 때도 있었고, 발로 찬다기보단 밀고, 손으로 밀고, 들어서 침대에 던지고, 욕은 1번 했고 등등입니다.

진단서를 끊을 정도는 안 되지만 아내에겐 심각한 거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싹싹 빌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점점 제 정도가 심해지는 느낌이고, 아내도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하고, 이젠 물리적인 행동을 하면 이혼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항상 엄청 후회하지만 그 순간은 내가 다른 사람이 돼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애들은 안 때린 지 1년 된 거 같습니다. 그런데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내가 화가 났을 때 아내가 조금만 피해주면 좋을 텐데, 자기가 가장이라면서 눈을 치켜뜨면서 도발을 하게 되면, 전 또 노는 남편이라는 자괴감에 폭발을 하니 문제입니다. 저야 뭐 어려서 부모님 부부 싸움을 수도 없이 보고 자랐고, 지금 제가 하는 부부 싸움은 정말 애들 소꿉놀이 수준이라고 생각은 되면서도 아내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내의 입장을 이해는 되는 거고 저도 가정폭력은 싫고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올겨울에 부부 상담 이런 걸 받아보자고 한 상태입니다. 이걸 어디서부터 해결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최영진

A)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이렇게 자기 문제를 고백하고 고민 상담을 하시다니 먼저 그 점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부부 상담을 받겠다고 하셨는데, 그 또한 적극 지지합니다. 폭력의 문제는, 최영진 님도 말했듯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가정폭력은 피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폭력의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자에게도 일종의 지옥 경험이 되지요. 사소한 갈등에서 시작해서 위협적 상황이 전개되고 마침내 폭력이 난무하는 그 긴 과정에서 가족들은 장기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가장 불안하고 위협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생존 본능을 위협하는 참으로 극단적인 고통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족들이 평생 어떤 후유증을 겪는지 경험했고 또 많이 봤습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관계와 인간관계도 총체적으로 왜곡되고 파괴됩니다.

우려되는 것은, 당신의 글 곳곳에서 자신의 폭력을 상대화하고 사소화하려는 시도가 감지된다는 점입니다. 굳이 폭력의 횟수를 언급하는 것도 그렇고, 폭력의 내용을 열거하는 것에서도 자신의 폭력이 그리 심각하거나 격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또 과거 부모가 했던 부부 싸움에 비하면 소꿉놀이 수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방심하는 사이 당신도 느끼듯이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폭력의존증 또한 심각해질 것입니다.

육체적 폭력을, 너무 화가 나면 선택할 수 있는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폭력은 의사소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이나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한 동물들의 목숨을 건 투쟁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물리적 폭력은 피해자의 육체에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체에 남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심신치료 기법의 필요성이 부각되지요.

알고 보면 최영진 님도 폭력의 피해자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폭력적 싸움을 경험한 사람이니까요. 추측건대 부모의 폭력적인 불화를 지켜보면서 분노와 극도의 불안, 그리고 무력감을 자주 느꼈을 겁니다. 자신을 게으르다고 느끼는 것, 환경 변화에 고통을 느끼는 것, 예민한 것, 자주 화를 내는 것 등도 타고난 기질에 우울증이 더해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것에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부 상담과 함께 개인 상담도 권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당신에게 남아 있는 폭력의 흔적을 살피고 치유하세요. 또 자신의 정체성이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안전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일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거지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정체성 찾기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동시에 노는 남편이라는 편견과 자괴감에서 벗어나세요. 자기 역할에 수치심을 느끼면 그 일을 좋아할 수 없고, 잘할 수는 더더욱 없답니다. 사실 전업주부는 결코 노는 사람이 아니며, 그 노동의 가치는 실로 엄청납니다. 특히 남성 주부는 우리 사회의 강고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아주 중요한 몫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로사연을 보내 주세요.

글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