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비닐하우스에서 ‘잘 사는 법’을 묻다
굽고, 마시고, 묻고…한겨울 노루뫼농장에서 여물어가는 인문학
등록 : 2016-12-29 16:01
올해 2월에 열렸던 비닐하우스 안 인문학 강좌 모습. 도시농부들의 인문학 공부는 지식을 얻기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묻고 나누는 데 목적이 있다.
사실 농장을 조금만 둘러봐도 ‘잘 사는 법’이 속살을 드러낸다. 농장은 초입부터 어수선하다. 나뭇잎이나 왕겨가 담긴 대형 포대가 쌓여 있고, 버섯 배지나 나뭇잎, 농작물 부산물이 비닐에 덮인 채 퇴비로 숙성되길 기다리며 길게 쌓여 있다. 이어 10평이나 될까? 덧댄 비닐이 겨울바람에 휘파람을 불어대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풍신난 도시농부들’의 ‘생태적 가치와 자급하는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베이스캠프이자, 학당이다. 가족용 캠핑 텐트가 이어진다. 털다 만 콩대가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곳간이다. 옆에는 철제 선반과 나무 패널로 만든 농기구 거치대가 있다. 버려진 것들이 여기서는 이렇게 요긴하다.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 각목과 플라스틱 슬레이트 등을 얽어 만든 변소가 있다. 내부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앞쪽에는 남자 소변기. 플라스틱 통에 물받이를 끼워 만들었다. 안쪽에는 여자용 소변기가 있고 이어 큰일을 위한 변기가 있다. 옆에 왕겨 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을 본 뒤 한 바가지 퍼서 덮으라는 것이리라. 도시민들은 기겁할 구조지만, 청담동 여자도, 도곡동 ○○팰리스 남자도 거기서 일을 본다. 그렇게 모인 것들은 숙성되어 작물의 간식인 웃거름(오줌액비)이 되고, 주식인 밑거름이 된다. 최고급 유기농 매장까지 딸려 있는 팰리스에 사는 남자는, 그렇게 밑거름 웃거름 먹고 자란 무와 배추, 마늘, 양파가 대한민국 최고라고 평가한단다. ‘배출’도 생산이 되는 농장의 삶 ‘풍신난’이란 ‘개갈나지 않는다’(시원치 않다,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뜻의 충청도 사투리)는 뜻. 어느 날 한 관행농 농부가 벌레 먹어 망사가 되어버린 노루뫼 배추를 보고 혀를 차며 한 말이다. 약을 치지 않으니 벌레가 꼬일 수밖에 없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니 배추는 헐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법 숙달된 지금은 관행농 배추만은 못해도 속이 제법 실하다. 그게 똥과 오줌 덕이라고 풍신난 농부들은 믿는다. 900여 평의 밭은 서른 명 남짓 되는 도시농부들에게, 작물 공동체 농사에, 혹은 개인 텃밭으로 분양됐다. 텃밭 가드너 마늘공동체, 찬우물 양파 마늘 공동체, 팝콘 옥수수 공동체 등. 청담동 여자는 혼자서 20평씩이나(?) 경작한다. 물이건 퇴비건 인공적 투입을 억제하고, 김매기도 되도록 줄인다. 남는 시간에는 함께 먹고 마시고, 요컨대 많이 논다. 단 먹고 배출하는 건 농장 변소에서 한다. 그게 잎채소가 되고, 알뿌리가 되고, 열매가 되고, 밥이 되는 것이니. 욕심 낼 게 없다. 배도 부르고 불콰하니 술기운도 돌고, 밭으로들 나간다. 양파 싹이 벌써 한 뼘이나 자랐다. 왕겨, 짚으로 덮은 마늘밭은 조용하다. 갓은 이파리를 흙에 붙인 채 겨울을 이기고 있고, 새파란 시금치와 쪽파는 여전히 기운이 성성하고, 마른 풀 사이로 고수도 꼬물꼬물 새잎을 내고 있다. 지우도농이 변소로 간다. 글·사진 지우도농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