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야, 놀자

놀이터에 필요한 건 부모의 믿음

등록 : 2016-12-29 19:45
아이들로 북적이던 놀이터도 겨울이면 휴식기에 들어간다. 박찬희 제공
봄날부터 북적대던 놀이터. 찬바람 부는 겨울을 맞이하면서 아이들 모습이 하나둘 사라졌다. 아이들 소리는 봄이 다시 와야 놀이터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텅 빈 놀이터를 지나며 놀이와 놀이터를 떠올려본다. 흔히 놀이를 위해 필요한 요소로 놀 시간, 놀 친구, 놀 거리 세 가지를 꼽는다. 당연히 놀 시간이 있어야 놀 수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는 놀이에서 매우 중요하다. 놀 시간이 있어도 친구가 없다면 소용없다. 그리고 놀 거리. 시간과 친구가 있다면 놀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놀고야 마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동네 놀이터는 놀이의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졌다. 가끔 지인을 만날 때 “우리 동네 놀이터가 왁자지껄하다”고 말하면 십중팔구 “그런 데가 있어?”라며 묻는다. 그러면서 자기 동네는 놀려고 해도 놀 아이들이 없다고 덧붙인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이 북적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이들이 많고 집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고 늘 누군가가 놀고 있기 때문이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은 놀이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지만 어쨌든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중학생까지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노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면 놀이의 세 가지 요소뿐 아니라 또 필요한 게 있다. 놀이에 대한 부모의 믿음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본능이기 때문에 꼭 놀아야 한다고, 노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놀 시간이 어디 있어! 그 시간 공부해야 남는 거지’라는 생각 대신 ‘놀 때는 놀아야지’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부모가 놀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길수록 놀이터와 놀 거리가 아무리 좋아도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쉽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찾아주어야 시작되고 완성된다. 아이들을 놀이터로 보내는 건 아이들의 본능과 부모의 믿음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의 영향은 그만큼 크다. 아이의 놀 시간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도 상당 부분은 부모들이다. 부모가 놀이에 대해, 놀이터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볼수록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기회는 제한된다. 놀이라는 본능이 억압될수록 아이의 건강한 웃음이 줄지 않을까 염려되는 이유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고 한다. 믿는다는 말에 꼭 들어가야 할 것을 꼽자면 놀이가 빠질 수 없다. 놀이가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믿는 만큼 아이는 잘 자란다. 놀이를 놀이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아이들은 잘 논다. 놀이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줄수록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놀이의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때 아이들 노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부모들의 놀이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 놀이의 교육적 효과를 역설하는 말보다 자기 경험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부모들도 잘 놀고 난 다음 희열을 느끼듯 아이들도 그렇다. 놀이를 권하지 않는 사회에 사는 부모 자신에게 자문해보자. “나는 잘 놀고 있나?”

※이번 호로 ‘놀이터야, 놀자’ 연재를 마칩니다.

박찬희 자유기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