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자장, 달강달강, 둥기야”…소리로 마음을 씻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㉞ 종로구 와룡동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등록 : 2023-11-02 16:10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별채 기획전시실 전시물. 아기를 업은 엄마의 그림자가 한지 바른 문에 비친다.

가장 오래된 소리 기억인 자장가부터

노동요, 사랑가, 마지막 상엿소리까지

구성진 소리로 듣는 각 지역 인생살이

눈 감아도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까지

우리소리박물관에서 만난 자장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취재까지 이어졌다. 그곳의 모든 공간이 그곳에 오래 머무르게 했다. 우리의 옛 소리는 한 편의 시였고, 한여름 한 줄기 소나기였고, 한겨울 구들장을 달구는 군불이었다. 우리의 옛 소리에 마음이 씻겼다. 소리가 치유였다.

종로구 와룡동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엄마의 자장가를 듣다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화석, 엄마 등에 업혀 듣던 자장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잠잘 적에 멍멍 개야 짖지 마라 꼬꼬 닭아 울지 마라….’ 엄마 등에 업혀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던 그 시간은 지금도 가장 큰 위로다.

그 소리를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떠올렸다. 박물관 본채 건물 옆 별채에 마련된 기획전시실에서 ‘자장자장 도담도담’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열린다. 자장가를 중심으로 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지혜가 담긴 육아 관련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전시라는 설명글보다 벽에 걸린 전시물 하나가 그 공간의 의미를 더 깊게 새기고 있었다.

엷은 주황 불빛이 퍼지는 한지 바른 방문에 비치는 아기를 업은 엄마의 그림자였다.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었던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토닥이던 손길과 엄마 목소리….

박물관 본채 지하 1층 상설전시실. 옛날 집안에서 볼 수 있었던 일상 풍경. 그 풍경에 어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전시물 아래 지방에서 실제 부르던 자장가 가사를 그대로 적어놓은 전시물이 놓였다. ‘하늘겉이 높이 되라 속은 바다겉이 널리 써라’라며 추키는 강원도 자장가. ‘금자동아 옥자동아 칠기칭칭 보배동아’라며 어르는 경상도 자장가, ‘돈을 준들 너를 사랴 금을 준들 너를 사랴’라며 보듬는 전라도 자장가…. 지역과 노랫말은 다 달라도 똑같은 하나, 사랑의 목소리다.

전시실 한쪽에는 실제로 옛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도 있다. 한쪽 팔로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팔로 아기의 등을 안고 아기의 눈을 보며 부르던 소리 ‘둥기둥기 둥기야’, 아기와 마주 앉아 두 손을 잡고 몸을 앞뒤로 당겼다 밀었다 하며 부르던 소리 ‘달강달강’, 아기와 함께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며 부르던 소리 ‘쪼막쪼막’, 아기 배가 아플 때 아기 배를 문지르며 부르던 소리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옛 소리에 담긴 내용도 그렇지만 목소리에 어린 성조와 정감에서 손주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게 느껴진다.

전시실 한쪽에 마련한 ‘다시, 자장가’라는 제목의 공간은 어둑했다. 엷은 조명이 한쪽 벽을 밝히고, 영상과 함께 자장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푸근한 마음이 따듯해졌다.

본채 1층. 옛 소리를 들으며 쉬는 공간.

옛 소리로 듣는 한생, ‘태어나고 사랑하고 일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획전시실을 나와 박물관 본채 1층으로 들어섰다. 세상에 태어나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한생을 우리의 옛 소리로 풀어낸 공간이었다.

첫 울음소리로 세상에 탄생을 알린 아기에 대한 사랑이 담긴 자장가는 대전 동구 어느 집에서 부르던 노래다. 청춘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노래는 경남 의령의 ‘남도령과 서처녀’다. 두 남녀가 놀러가서 점심을 먹는데 남도령 밥은 꽁보리밥이고 서처녀 밥은 율무 같은 쌀밥이었다. 서로 밥을 바꾸어 먹고 나서 ‘내가 니 밥을 묵었으니 백년언약을 맺어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소리는 강원도 횡성의 ‘밭 가는 소리’로 들려준다. 생의 끝을 알리는 소리는 경기도 김포에서 망자를 운구하며 부르던 ‘상엿소리’였다.

1층에는 우리의 옛 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노래를 부른 사람과 지역,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노랫말까지 작은 화면에 뜬다.

‘순풍에 돛을 달고 만경창파로 떠나간다. 자 한 배 잡었으니께 말이지, 고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겄나?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우리 고장 어서 가세.’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에 전해지는 소리다. 조기를 잡아 뭍으로 돌아가는 흥이 묻어난다. 함경남도 북청군에는 ‘구름 속에 뜬 달은 뜨나 마나 하구요 모조리 남편은 있으나 마나 해요 어랑어랑 어허야 어람마 디여라 모두 다 내 사랑이요’라는 소리가 전해진다. 남편에 대한 원망을 소리로 풀어내며 그래도 내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자배기에 물을 붓고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들기는 물바가지장단에 맞춰 노래했다는 설명도 화면에 뜬다.

모심고, 논매고, 밭 갈고, 바다에 나가 명태잡이 그물을 당기고…. 노동요로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달래던 그 소리를, 어느 들녘 어느 산골 어느 바다에서 마냥 떠돌던 그 소리를 운치 있는 한옥에 앉아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본채 지하 1층 상설전시실. 놀이, 세시풍속과 관련한 민요 등을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벽.

소리를 품다, 소리로 보다, 소리에 쉬다

우리의 옛 소리들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건 여러 기증자 덕이다. 그중 ㈜문화방송은 139개 시·군 90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1만8천여 곡의 민요와 답사노트, 가창자 사진 등을 전부 기증했다. 문화방송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하 1층 상설전시실로 들어섰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울타리 안 초가 방 안에는 아이를 어르고 재우는 엄마 모습이 보인다. 그림에 맞춰 자장가를 듣는다. 물레 앞에 앉아 일하는 여인을 표현한 그림을 보며 듣는 노래는 경남 고성의 ‘실 잣는 소리’다. 베 짜는 과정과 모습을 묘사한 노래도 있다. 옛날 집안에서 볼 수 있었던 일상을 보고 듣는다.

소를 몰아 써레로 논을 갈아엎는 걸 ‘논을 삶는다’라고 했다. 논 삶는 소리는 강원도 홍천에서 불렀던 소리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물을 푸는 소리, 모내기, 벼 베기, 타작하기, 방아 찧기, 노동요가 절절하다. 밭일, 임업, 가사노동 등에 얽힌 소리도 가득하다.

강화도에서 마포나루까지 조기와 땔감 등을 배에 싣고 한강을 오르내리며 부르던 뱃사람들의 노래도 빠질 수 없다. 그들은 주로 밤에 한강을 오갔다. 뱃노래가 깜깜한 한강에 울려퍼졌으리라. ‘저 달 지면 물참 된다. 달 지기 전에 빨리 저어… 선유봉을 지나치니 장유들 술집에 불만 켰네… 마포에다 배를 대고 사슬을 올려주면 한잔 두잔 먹어보세….’

아이들이 방에 모여 다리를 모아 세며 부르던 다리세기 소리, 여러 나무 이름을 엮어 부르던 소리, 널뛰며 하는 소리, 세시풍속과 관련한 민요 등을 모아 놓은 ‘소리의 벽’도 있다.

본채 지하 2층 영상감상실. 영상과 함께 소리를 듣는다. 눈을 감고 듣는 소리는 그 자체로 쉼이다.

세상이 온통 무채색이던 1970년대 산골 깡촌의 겨울 들판에서 총천연색으로 빛났던 건 꽃상여였다. 상엿소리는 구슬펐다. 만장을 펄럭이며 지나던 들판 바람 소리도 생생하다. 세상을 떠난 망자를 배웅하고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우리의 옛 소리, 다시래기, 상엿소리, 달구소리를 들으며 그해 겨울을 생각했다.

지하 2층까지 내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곳에는 영상감상실이 있었다. 어둑한 공간 바닥에 놓인 1인용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영상을 보고 듣는다. 옛 민요도 흘러나왔지만 마음에 새겨지는 소리는 따로 있었다. 산골짜기 오솔길을 걷는 소리, 잔 나뭇가지를 쳐서 단을 묶는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를 지나는 소리, 아궁이에 군불 때는 소리, 삼을 삼는 소리…. 눈을 감고 소리만 듣는다. 마음 깊은 곳부터 밝아지며 그 소리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생하게, 맑게, 깊게, 새겨진다. 소리를 품고, 소리로 보고, 소리에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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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정보>

관람시간: 화~금요일, 일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7시. 입장마감 종료 30분 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관람요금: 없음 문의전화: 02-742-2600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