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불암골 행복발전소’의 북카페는 중계본동 주민들의 무료 봉사로 운영된다. 지난달 28일 주민들이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중랑구 면목동 다가구주택가 골목 중앙에 있는 오거리공원 놀이터.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오르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여느 놀이터라면 당연한 모습이지만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게 된 지는 두 달이 채 안 됐다.
“대낮에도 무서웠어요. 놀이터에서 노는데, 갑자기 술 냄새 나는 아저씨가 와보라고 해서 도망갔어요. 갑자기 큰소리로 욕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10살 나희는 노숙자, 술주정뱅이를 놀이터에 올 때마다 봤다고 했다. 놀이터는 사방이 나무와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노숙자들이 저절로 모이는 곳이었다. 게다가 전통시장 바로 옆에 있어 먹을거리를 사와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쌓여 있는 쓰레기도 많았다. 어른들도 피해서 돌아가는 곳이었지만, 동네에 놀이터는 이곳 하나여서 아이들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미끄럼을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중순, 공원 공터에 건물 하나가 들어서면서 놀이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바로 중랑구가 주택가 안전과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만든 안전커뮤니티센터 ‘ㅎㅎㅎ행복터’다.
순찰로 못 잡은 안전, 단박에 확보
안전커뮤니티센터 ‘ㅎㅎㅎ행복터’는 2층 건물로, 1층에는 중랑경찰서 초소와 자율방범대 모임터, 센터 프로그램 교실로 쓰이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2층 전체는 독서와 책 대출을 할 수 있는 마을문고로 만들었다. 마을문고 벽 한쪽은 전면 통유리로 만들어 놀이터를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센터 개관에 앞서 공원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를 베어내, 탁 트인 환경을 만들고 감시카메라(CCTV)도 설치했다.
“저게(ㅎㅎㅎ행복터) 생기고 나니까요, 밝아졌어요. 밤인데도 놀 수 있잖아요! 술 취한 사람도 이제 여기 잘 안 와요.” 7시가 넘어 깜깜해졌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나희 모습에서 초조함이나 무서움은 찾아볼 수 없다. ‘ㅎㅎㅎ행복터’가 반가운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 “이사 가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던 곳이에요. 더럽고 위험했으니까요. 이제는 밝고 안전해진 거 같아 정말 좋아요. 이런 센터, 주택가마다 꼭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6살 딸과 함께 마을문고를 찾은 오정현(43)씨가 말했다.
물론 그동안 자치구에서 오거리공원 치안에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찰들이 순찰을 하고 신고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 출동해 조처했다. 면목동 주민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는 17년째 주기적으로 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개선되지 않아 아예 안전 강화를 목표로 안전커뮤니티센터를 만든 것이다.
“저희가 신분을 밝히고 단속을 해도 없어지지 않던 노숙자, 주취자들이 커뮤니티센터가 생기면서 주변이 트이고 밝아지니 이제 찾지 않습니다.” 구하서 중랑구 디자인팀장이 이유를 설명했다.
2시간마다 24시간 동네를 순찰하는 경찰들도 ‘ㅎㅎㅎ행복터’가 가져온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용마지구대 이다희 경장은 줄어든 신고율이 가장 눈에 띈다고 했다. “놀이터 관련 신고 전화가 거의 없어졌어요. 또 ‘ㅎㅎㅎ행복터’에 초소가 생겨 2시간마다 경찰들이 들르고 있어 주민들이 느끼는 안정감도 커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주택가에 새로 들어선 센터만으로도 주변이 밝아진 곳이 또 있다. 노원구 중계본동 주택가에 있는 아주 현대적인, 마치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은 ‘불암골 행복발전소’다. 지상 1층, 270㎡(82평) 크기인 불암골 행복발전소에는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인 지역아동센터와 북카페가 있다. 노원구가 공동체 활동과 돌봄, 문화생활과 안전 서비스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난해 7월 만든 곳이다.
“이 책은 신간이라 구립 도서관에 가도 잘 빌릴 수 없는데, 여기서는 바로 읽을 수 있죠.” 행복발전소에서 5분 거리 빌라에 살고 있는 김효정(41)씨가 북카페에 자주 들르는 이유를 말했다. 동네 주민이라면 북카페에서 책은 무료로, 커피나 차는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데,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나 수준이 놀랍다.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인문, 사회과학 전문서는 물론 소설, 하드커버 양장본, <해리포터> 원서까지, 없는 책이 없다. 비결은 도서관 사서 몫을 하는 중계본동 주민이자 카페지기를 맡고 있는 허선영(44)씨와 주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허씨가 책 구매와 북카페의 전반적인 관리를, 허씨처럼 책을 좋아하는 중계본동 주민들이 무료 봉사로 나서며 북카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구에서는 건물과 관리비만 지원해준다.
저녁 무렵 어두워지는 놀이터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중랑구 ‘ㅎㅎㅎ행복터’.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책 함께 읽으며 주민들이 직접 공간 가꿔
불암골 행복발전소는 건물 전체가 나무로 되어 있고, 내부는 유리문과 흰색 페인트로 포인트를 줬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도 매우 독특한데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오가는 동네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끈다. 하지만 지난해 행복발전소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은 빈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밤이 되면 어두운 건물 탓에 지나가기도 무섭고 비행 청소년들이 모이기도 했다.
“행복발전소 바로 양옆 주민들이 제일 좋아해요. 안전해졌다고요. 장소가 예쁘다 보니 밤에 대관 행사가 열려 불이 켜지거든요. 낮은 말할 것도 없죠.” 허씨가 주민들의 말을 전했다. “저는 남자인데도 지날 때 좀 무서웠어요.” 14살 장아무개군은 학원 갔다 오는 길이 이제는 무섭지 않다고 했다. 불암골 행복발전소는 동네 주민들을 책과 차가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모으고, 밖으로는 밝고 안전한 기운을 확산해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가에 들어서는 편의센터가 주민 편의는 물론 심리적, 물리적 안전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서초구 반딧불센터, 중랑구 ㅎㅎㅎ행복터, 노원구 행복발전소 모두 운영을 주민에게 맡긴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처럼 특정 업체에 운영을 맡기면 비용이 들지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니 비용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 주인의식과 공동체 의식도 성장하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ㅎㅎㅎ 행복센터, 반딧불센터, 행복발전소 모두는 주민들이 모이고 토론하며 공동체 의식을 키워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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