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아이
건축공학 전공한 뒤 건축회사 창업
2008년 금융위기 때 유통업도 시작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 50살 전 정리”
2013년부터 배워온 목공 일에 푹 빠져
“누구의 의뢰도 받지 않는 공방” 운영
‘조카 소반’ 등 자신 원하는 것만 만들어
일찍 찾는 ‘행복’…베이비붐 세대 새 모델
목공인 이창희(54)씨는 원래 건축 관련 일을 했다. 이씨에게 만든 가구를 판 적이 있는지 물었다. “없어요. 상대가 팔라고 말할 거 같으면 다른 방향으로 제가 말을 돌려버려요.” 그가 만든 의자가 예술작품같이 보여서 다른 이들에게 내주기 싫은 그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됐다.
어릴 적 이씨는 손재주가 많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나무를 주워서 조각칼로 돼지저금통만한 크기의 멋진 두꺼비 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무판자로 개집도 세 번을 만들었는데 만들수록 개집이 멋있어졌다.
이씨는 적성과 전망을 고려해 대학 전공을 건축공학으로 선택했다. 1993년 건설회사에 취업하고 1년 뒤 결혼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에 그의 회사도 부도가 났고 2년 뒤에 그는 아예 건설회사를 창업했다.
건축 일을 할수록 이씨는 본인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보다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다. 처음엔 건축주에게 의뢰받아 집을 지었는데 “저쪽 집은 평당 건축비가 얼마라더라”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씨는 오해받거나 얼굴 붉히는 상황이 체질상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땅을 사서 집을 지은 뒤 분양하는 자체 공사 쪽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2008년 상가를 지었는데 금융위기로 분양이 잘 안 됐다. 건물 짓느라 대출을 받아서 그가 이자를 감당해야 했다. 그는 이자라도 벌려고 마트를 차리며 계획에도 없던 유통업을 시작하게 됐다. “건축과 유통업을 20년 하다보니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에 신물이 났어요.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싶었죠.” 그는 쉰 살이 넘어서도 이 일을 계속하면 제명을 못 살 거 같았다.
이창희씨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의자.(EBS <다큐프라임> 의자 편에서 소개). 강정민 작가
이씨는 은퇴 뒤 무엇을 할지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다. 컴퓨터나 자전거 그리고 사진, 등산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씨는 한번 빠지면 밥만 먹고 그 일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무얼 하든 금방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는데 문제는 열정이 금방 식는다는 거였다. 이것저것 한다고 돈을 써서 아내가 뭐라 하진 않았을까? “한 번도 싫은 말 한 적이 없어요.” 이씨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길 아내도 바랐던 모양이다.
2013년부터 이씨는 회원제 목공 공방에 다니면서 목공 관련 하루 특강이 열리면 찾아가 배웠다. 대패 특강, 옻칠 특강도 듣고 목공 유튜브도 보면서 연구했다. 그가 만든 첫 번째 의자는 투박하고 튼튼했다. 두 번째 의자는 훨씬 멋진 걸 만들고 싶어서 의자 디자이너인 샘 말루프(1916~2009, 미국)의 ‘로백체어’ 만들기에 도전했다. 그는 로백체어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그가 만든 두 번째 의자는 초보자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는 가구를 만들수록 목공에 확신이 들었다. 단 한 가지 조건만 맞추면 좋을 거 같았다. 누구의 의뢰도 받지 않는 것. 즉, 팔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안 받고 평생 목공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씨는 자기만족에 집중하는 목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017년 이씨는 건설과 유통에서 손을 뗐다. 때마침 자녀도 학업이 끝났다. 씀씀이를 줄이면 연금과 상가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할 거 같았다. 그는 땅을 사고 다음해 공방 공사를 시작했다. 건축업을 한 그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건축방식을 택했다. 골조 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는 데 한 달이 걸렸다. 필요한 목공 기계와 설비를 갖추고 내장재 중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었다. 그는 모든 목공 기계에 먼지를 빨아들이는 호스를 달았고 호스를 외부 창고로 연결해서 톱밥을 모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의자와 한국 전통 가구 두 분야에 관심이 많다. “샘 말루프, 조지 나카시마(1905~1990, 일본), 한스 베그네르(1914~2007, 덴마크) 이분들이 디자인한 의자를 좋아해요. 외국은 할아버지가 만든 의자를 대를 물려서 쓰는 문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자기가 만든 의자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문화가 생기면 좋을 거 같아요.” 공방 2층에 그가 만든 의자와 한국 전통 가구가 전시돼 있다.
“한국 전통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서양 가구를 만드는 분들에 비해 나무 욕심이 많아요. 수백 년 된 보호수가 낙뢰를 맞아 잘리면 그 나무를 사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오래된 나무가 가진 고유한 나뭇결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화려해요. 그 나뭇결을 살려서 한국 전통 가구를 만들면 가구가 정말 예뻐요.”
이창희씨가 가구를 만들어준 사람은 있을까? “아내가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준 건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저한테도 필요하단 판단이 들 때만 해요.” 아내 말고 만들어준 사람이 또 있을까? “처조카 포함해서 조카가 모두 14명인데 다 원룸에 살아요. 소반이 가벼워서 혼자 사는 사람한테 정말 편해요. 그래서 소반을 만들어서 옻칠까지 해줬어요. 옻칠했다고 꼭 써 주세요. 아는 사람은 옻칠이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요. 우리 전통 옻은 정말 구하기 힘들고 칠하다보면 독도 올라요. 하지만 옻칠만큼 방수·방충에 완벽한 소재가 없어요.”
공방 내부의 집진시설. 뒤편 창고로 톱밥이 모인다. 강정민 작가
이씨는 2020년 EBS <다큐프라임> 의자 편(2020년 12월21일, 22일 방영)에 출연했다. 방송에 그가 의자를 디자인해서 만드는 전 과정이 나온다. 더불어 그의 공방 모습도 볼 수 있다. 공방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을까? “없어요. 너무 행복해요.” 고난거리를 쓰고 싶었는데 예상 밖의 답이다.
이씨에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는 인터뷰를 선뜻 승낙하지 않았다. 퇴직 뒤에도 여전히 돈을 벌어야 하는 분이 많은데, 그에 반해 자신은 꽃놀이하는 거 같다는 염려였다. 여건이 되어 조금 이른 나이에 은퇴한다면,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타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건강 잃기 전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마무리할 가을인데도 베이비붐 세대는 여전히 여름의 가치관인 근면 성실의 잣대로 사는 경향이 있다. 삶을 바꾸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백 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건강할 때 좋아하는 것 한번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공방을 나서며 이창희씨가 마음껏 꽃놀이를 즐기길 바라본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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