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0일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테러가 일어나자마자 희생자를 애도하고 테러를 규탄하는 베 를린 시민들의 마음이 잇따랐다.
베를린 살이 20여 년 중에 2016년처럼 유럽공동체란 말이 실감 나던 해는 없었다. 2016년 3월23일 브뤼셀 테러가 있던 다음 날에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까맣고 노랗고 빨간빛이 비쳤다. 벨기에 국기였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 파리광장은 그 불빛 속에서 작은 벨기에가 되어 추모객들을 맞았다. 꽃과 양초를 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희생자들을 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 파리의 에펠탑에도 벨기에의 삼색기가 빛으로 드리워졌다.
그로부터 몇 달 뒤 7월에는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여름휴가와 축제를 즐기던 유럽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날의 에펠탑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냘파 보였다. 자국의 3색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간신히 서 있는 듯한 모습은 마치 상복을 입은 여인네 같았다. 베를린 속 파리광장도 역시 파랗고 하얗고 빨간 슬픔에 잠겼다. 그날은 유독 많은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응시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쩌면 그들을 보고 있는 내 눈동자 속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저곳에 독일 국기가 비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2016년 12월20일, 브란덴부르크 문은 결국 까맣고 빨갛고 누런빛에 휩싸였다. 테러리스트 아니스 암리가 탄 검은 트럭이 베를린의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시장에 난입해 12명의 무고한 목숨을 짓밟고 지나간 다음 날이었다.
테러가 훑고 간 자리는 상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상했던 대로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동안 상상만 했던 테러당한 도시의 참담함과 베를린의 실제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총리 메르켈의 움직임은 민첩했고, 시민을 향한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의연했다. 물론 기다렸다는 듯 정치적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들로 인해 곳곳에서 거센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비판보다는 먼저 수습을 원했다. 테러 다음 날 시내 크리스마스 시장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아주 합당하고도 명백했다.
“우리는 내일 하루 시장들을 폐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뜻입니다.”
약속대로 하루가 지나자 크리스마스 시장들은 다시 문을 열었다. 테러가 일어났던 시장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복구되어 발을 맞췄다.
“너희들은 도시를 잘못 골랐어. 베를린은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동네야. 아직도 골목골목의 양로원에는 널브러진 시체들 위를 걸어오신 어른들이 살아 있지. 우리는 이미 지옥을 알아. 그까짓 트럭 한 대로 우리를 넘봐? 베를린을? 잘 들어. 우리는 부상자를 치료할 거고 사망자들을 묻을 거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하지만 절대, 오늘을 잊진 않을 거야.”
<빌트>지에 실린 한 시민의 메시지였다. 테러 이후 나는 20년을 살면서도 본 적 없는 도시의 숨은 저력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베를린이 마치 한 마리 거대한 곰처럼 툭툭 털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글,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