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을지로 같은 시장 세계에도 몇 없어요”

을지로의 영고성쇠를 같이한 40년 토박이 상인 강인석씨

등록 : 2017-01-12 14:51
을지로에서 40년 넘게 장사하며 살고 있는 강인석씨가 지난 5일 을지로동 주민센터 2층 카페 ‘을지다(茶)움’의 벽에 걸린 을지로동의 오래전 사진들을 보며 웃고 있다.

지난 연말 시민이 뽑은 서울 자치구 혁신 사례에서 중구 을지로동 골목탐방 ‘을지유람’이 모범 사례로 뽑혔다. “겉은 변해도 안은 그대로”라는 을지로 뒷골목을 돌아보며 산업화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추억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70~80년대 전성기 같지는 않지만 을지로 일대는 지금도 서울의 도심제조업, 도매 물류, 전통시장 등이 가장 밀집한 지역으로 꼽힌다. 도시개발의 측면에서는 그만큼 ‘현대화’가 필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요컨대 개발과 보존이 다 같이 중요한 이런 요소들 때문인지 을지로가 품고 있는 반세기에 걸친 개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요즘 새롭게 주목을 받는 것 같다.

5일 을지로동 동장 김주례씨와 주민 강인석(72)씨를 만났던 을지로동 주민센터도 관공서라기보다는 지역의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소개하는 복합문화공간 같았다. 카페 ‘을지다(茶)움’으로 올라가는 2층 계단부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을지로동’의 사진들이 줄지어 손님을 맞이한다.

“시장이 있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 시장이 커지던 시절에는 초등학교 2개가 아이들로 꽉 찰 만큼 주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법정동(법으로 정한 동) 11개를 합쳐도 주민등록 인구가 1780명밖에 안 되지만.”

을지로에서만 40년 넘게 살고 있는 강씨는 1970년대 초반 방산시장 부근에 차린 여성맞춤옷집으로 성공 시대를 연 사람이다. 당시는 브랜드 옷이 없어 옷집에서 옷을 맞춰 입던 시절. 고도 성장기를 타고 고급 옷 수요가 늘자 솜씨 있고 감각 있는 맞춤옷집들이 번창했다. 방산시장 ‘강 의상실’도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 시절 여기서 돈 못 벌었다면 거짓말이죠. 가게 건물도 사들이고, 큰 집도 짓고. 1980년대 후반 기성복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는 정말 좋았지요.”

그는 을지로에서 장사하고 을지로에서 결혼해 지금까지 을지로에서 살고 있다. 20대에 상경한 지방 사람치고 지금까지 한 차례도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참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수록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수도예식장 아세요? 2014년 철거된.” 수도예식장은 당시 을지예식장과 함께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결혼식장.


“예식장에 홀이 수십 개나 있고, 30분 간격으로 웨딩마치가 울렸지요. 저도 74년에 거기서 아내와 결혼했는데, 그만 없어졌다네요, 글쎄.”

없어져서 좋은 것도 있다. 청계천 고가도로. “이 일대의 가장 큰 변화였어요.” 

청계고가 철거와 청계천 복원 등에 따라 많은 점포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을지로로 유턴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오히려 그전보다 더 커진 형국이다. 약 2㎞ 반경 안에 방산시장, 중부시장, 광장시장, 평화시장 등 큰 시장들이 연결돼 있고, 건축자재, 공구, 조명, 미싱, 가구 등 10여 개 도매업과 소규모 공장들이 담을 같이하며 밀집해 있다.

“요즘은 캔들, 초콜릿 등 젊은 층 대상의 품목도 들어오고 있답니다. 이런 시장이 세계에 몇 개나 될까요?”

그는 이 ‘세계적인 시장’에 맨손으로 들어와 성공을 일군 을지로 상인들의 도전정신과 생활력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군대 제대하고 고향에서 올라와 거여동에서 장사하는 사촌 누나를 돕고 있었는데, 제 장사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던지 한 아주머니가 그래요. ‘장사를 배우려면 사람 많은 곳에서 부대껴봐야 쇼부(승부)가 빠르다’고. 그길로 들어선 곳이 을지로입니다.”

그의 승부처 ‘강 의상실’은 이제 ‘쇼부’ 칠 일이 없다. 사실상 문을 닫은 것이다. 드문드문 찾아오는 옛 단골에게도 다른 집을 소개해주고 만다. 의상실은 말동무들이 모여드는 동네 사랑방이 되어 있다.

“여기는 겉은 도시지만 속은 시골 그대로입니다. 40~50년 을지로에서 터를 닦은 사람들이라 척하면 통하고, 인정도 오히려 더 넘칩니다. 골목 사람들끼리 돼지 잡아 잔치하는 정서가 지금도 남아 있지요.”

그래도 장사로 이골이 난 사람들. 개발이익에 관심이 없을 수 없을 듯.

“시내 쪽을 기준으로 보면 을지로 초입은 이미 고층빌딩 지역이니 점차 을지로 전체로 확산되겠지요. 어떤 식으로든 개발이 이뤄져야겠지만, 을지로가 이룩해온 생활의 역사도 잘 간직해야 합니다. 전통시장은 시장대로 보존하고, 전문도매 및 제조산업은 빌딩 아래 지하상가를 조성해 명성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삶의 터전을 빼앗으면 안 되는 거죠.”

동석한 김 동장은 “누가 시장, 구청장이 되든 보존과 재생은 거역하기 어려운 흐름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을지로는 명동과 인접해 있으니 명동과 같이 묶어서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명동이 다양하게 넓어지면 쇼핑 품목도, 볼거리도 늘어나니 중국 관광객들이 더 좋아하지 않겠어요?”

요즘 을지로에서는 나이트클럽도 호텔로 바뀌는 중이다. 중저가 호텔 건축이 붐을 이루고 있다. 모두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변신이다. 현실은 을지로의 모습을 또 어떻게 바꾸어놓을까?

글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사진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