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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매 손맛 한번 보실래요?

영등포구 어르신 일자리 ‘꽃할매네’, 일하는 보람·수익, 두 마리 토끼잡다

등록 : 2017-01-13 10:13 수정 : 2017-01-13 10:20
영등포구 신길동 ‘꽃할매네’ 2호점의 올해 첫 영업일인 지난 2일 전행자(83·왼쪽부터), 송춘순(72), 정해순(63), 백인숙(70) 할머니 네 분이 주방에서 주먹밥을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2017년 첫 월요일인 지난 2일. 영등포구 신길동 ‘꽃할매네’ 2호점은 새해 첫 영업일을 맞았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손님의 발길이 이따금 이어졌다. 할머니들의 손맛을 찾아오는 이들이다.

“꽃할매주먹밥 하나, 제육주먹밥 하나, 잔치국수 둘이요.” 홀을 담당하는 오유림(57) 매니저가 큰 소리와 함께 주문서를 전달하자 잠시 한적했던 꽃할매네 주방에 활기가 돌았다. 주방의 맏언니인 전행자(83) 할머니가 주름이 깊게 팬 손으로 받아든 주문서는 A4 크기로 큼지막했지만, 여든을 넘긴 할머니 눈에는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지 주문서를 얼굴 가까이 가져간다.

그사이 백인숙(70) 할머니가 잔치국수 조리를 시작한다. 냄비에 국수 삶을 물을 붓고 가스버너에 올리더니 가스점화기 스위치를 눌러 파란 불을 키운다. “이 가스버너는 집에서 쓰는 가스레인지랑 달라. 밸브를 먼저 열고 불을 붙여야 하는데 그때 불길이 확 올라오거든.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하지. 빨리 불길을 피할 수 있으니까.” 백 할머니와 전 할머니가 주방에서 손발을 맞춘 지도 벌써 1년, 나이 차이가 열세 살이나 나지만 두 할머니는 30분씩 걸리는 출퇴근길도 함께 걷는 ‘절친’이 되었다.

주문서 판독을 끝낸 맏언니 전 할머니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 전자저울로 무게를 확인한다. 160g. 시중에 파는 즉석밥의 가장 작은 중량이 130g이니 주먹밥 하나에 밥 한 그릇이 들어가는 셈이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참깨와 김가루를 솔솔 뿌려 슬슬 비비고, 둥글게 뭉친 주먹밥에 주문에 맞는 내용물을 채워 세모 모양의 틀에 맞춰 누르면 먹음직스런 주먹밥이 완성된다. 재료마다 정해진 양이 있지만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 덕에 삼각 주먹밥은 동그래지기 일쑤다.

“언니! 그거 한 다음에 주먹밥 두 개를 더 만들어야 해요.” 그사이 다른 손님이 찾아왔는지 주문받은 주먹밥들이 채 나가기도 전에 다음 주문이 밀려든다. 허리조차 펼 사이 없이 이어지는 조리에 몸이 고될 만도 한데 할머니들은 오히려 싱글벙글한다. “바쁠 때가 제일 신나.” “집에 있으면 기운 없이 처져 있다가도 가게에 나오면 기운이 넘친다니까.”

‘꽃할매네’ 2호점은 영등포구에서 운영하는 시장형 어르신 일자리사업이다. 시장형 일자리는 월 22만원(2017년 기준)의 고정비를 받는 공익형 일자리와 달리 근무 시간에 따라 많게는 30만~4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어르신들에게 인기다. “어르신을 위한 시장형 일자리사업을 고민하던 중 할머니 손맛을 살리면서 쉽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주먹밥을 메뉴로 선정했다.” 영등포구 어르신복지과 이현호 주무관이 설명하는 꽃할매네 창업 배경이다.

2015년 6월 양평동에 1호점을 낸 ‘꽃할매네 주먹밥’은 같은 해 12월 영등포구 장애인사랑나눔의집 1층 사무실 26.44㎡(8평)의 공간을 새로 꾸며 2호점을 열었다. 주메뉴인 주먹밥과 국수의 가격은 1500~3000원 사이. 저렴한데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건강한 먹거리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일주일에 2~3번씩 꽃할매네 2호점을 찾는다는 단골손님 최용진(67)씨는 “잔치국수 국물이 끝내줍니다. 가격까지 싸서 점심으로 안성맞춤”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영등포구는 1, 2호점의 성공적 안착에 힘입어 지난해 12월에는 할머니들이 밑반찬을 조리해 판매하는 ‘꽃할매네 찬’ 가게도 열었다.

개점 1년이 지난 꽃할매네 2호점의 월평균 매출은 300만원, 지난해 누계 매출은 4320만원에 이른다. 하루 평균 90개 이상의 주먹밥을 만들어 판 셈이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모두 15명의 어르신이 일한다. 더 많은 할머니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하루 2~3시간씩 돌아가면서 일하기 때문에 개인별 소득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액수보다 일하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꽃할매네 주먹밥’을 시작한 뒤로 삶에 활력이 생겼다는 백인숙 할머니는 “평생 집안 살림만 해왔는데,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손주들 간식 사주고 딸 가족이 여행 갈 때 용돈을 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라며 환히 웃었다.


영등포구 신길동 ‘꽃할매네’ 2호점의 할머니 두 분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준비한 주먹밥과 잔치국수.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송춘순(72) 할머니는 “돈이야 작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써주지를 않으니 달리 일할 곳도 없어. 그래도 알뜰하게 살림에 보태어 쓰고 있는데, 요새 같아서는 가게 손님이 많지 않아 걱정이야”라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손님이 없을 때 잠시라도 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송춘순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아니여. 받는 돈값을 해야지. 손님이 없으면 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하신다. 몇 년 전까지 기사식당을 운영했다는 할머니는 “다른 노인 일자리도 해봤는데 주방일이 훨씬 힘들지. 그래도 주방에서 땀 흘리며 일하면 예전 생각도 나고 진짜 내 식당처럼 할 수 있어서 신이 나”라고 덧붙였다.

꽃할매네 2호점의 관리를 맡은 영등포구 장애인사랑나눔의집 강희수 대리는 “어르신들은 책임감이 강해요. 이곳을 본인 가게라 생각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대합니다. 단체 주문이라도 들어오면 오히려 신이 나서 ‘뽕짝’을 틀어놓고 웃으며 주먹밥을 만드는데, 그럴 때면 주방이 잔칫집 분위기가 돼요”라며 꽃할매들의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는 할머니들의 새해 소망이 벌써 이뤄진 걸까. 2일 오후에 접어들자 새해 첫 영업일 매출이 기대 이상이라며 꽃할매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퍼진다. 꽃할매네, 2017년 시작이 좋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