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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일자리 지방정부가 앞서 뛴다

동작구 어르신행복주식회사, 성북구 공동작업장 등 “복지에서 자립으로”를 목표로 어르신 일자리 창출

등록 : 2017-01-13 10:18
동작구 어르신행복주식회사 소속 어르신 다섯 분이 지난 4일, 동작구 문화복지센터 안 주차장 통로를 물청소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2016년 정부는 7557억원의 예산을 들여 38만7000개의 어르신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예산 가운데 국비는 3907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감당해야만 했다. 일자리 수도 취업을 희망하는 60세 이상 고령자 450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중앙정부가 어르신 일자리 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12년이나 지났지만, 법률적 근거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18대 국회에서 보건복지부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고령자 고용 촉진 사업 통합 노인복지법 개정 또는 개별 법률 제정 등이 공론화되기도 했지만 입법이나 관련법 개정 등의 조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천정배 의원이 ‘노인일자리 창출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해 그나마 기대를 갖게 한다.

생활임금 보장해 어르신 경제 안정 도와

중앙정부가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대책은 지방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물꼬를 튼 곳은 동작구다. 동작구가 2억9000만원을 출자해 ‘어르신행복주식회사’를 2015년 11월 설립했다. 지방정부가 어르신 고용을 목적으로 상법상 주식회사를 세운 최초의 시도였다.

어르신행복주식회사가 올해 고용한 어르신은 모두 84명. 주로 구청사와 문화복지센터, 공중화장실 등 동작구 내 17곳에서 청소 용역 업무를 맡고 있다. 입사 자격은 만 61살 이상이다. 계약은 1년 단위이지만 71살까지 고용을 보장받는다. 여기에 생활임금을 적용해 어르신들이 안정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 동작구의 생활임금은 시간당 8197원으로 서울시 최고 수준이다. 주 40시간 일할 경우 한 달에 171만3173원을 받을 수 있다.

“친구들이 만나서 부러워하지요. 아직도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대요. 손자 돌보고 자식한테 돈 받는 것보다 떳떳하고 좋아요.” 동작 문화복지센터에서 만난 박춘자(62) 할머니는 이 건물 청소를 맡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일을 시작해 벌써 8년째지만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연차도 나이도 어린 편이다.

동작구 어르신행복주식회사의 휴게실에서 어르신들이 쉬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어르신들의 작업복에는 ‘어르신행복주식회사’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짧게는 8년, 길게는 12년째 센터 건물을 청소해온 이들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어르신행복주식회사’ 작업복을 입고부터다. 박경자(62) 할머니는 “그전에는 민간 용역업체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니까 혹시라도 내년에 잘리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이 회사에 온 뒤로는 그런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만 71살까지 앞으로 10년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훨씬 좋다고 귀띔한다. “90살까지 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올해 정년을 맞은 작업반장 변형석(71) 할아버지가 아쉬움을 토로하자 동료 어르신들은 “우리 반장님은 백 세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어르신행복주식회사의 박은하 대표는 “민간 용역업체보다 급여가 높은 편이고 고용도 안정돼,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다. 올해 신규 인력 20명을 채용하는 데 133명이 지원할 정도로 지역 어르신들에게 인기”라고 말한다.


2016년 어르신행복주식회사의 매출은 13억4500만원이다. 퇴직급여를 포함한 직원 인건비가 13억1500만원이어서 올해 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출범 첫해인 2016년 손익은 적자지만, 회사가 창출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따지면 10억원 가까이 된다. 사업 영역을 아이 돌보미 등으로 확대해 사업의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 것”이라며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성동구도 지속가능한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미래일자리주식회사’를 설립하려 준비 중이다. 지난해 관련 조례를 공포하고 출자금 2억4000만원을 올해 본예산에 편성하는 등, 5월 설립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미래일자리주식회사는 만두, 찐빵 등 어르신의 손맛을 살려 식품을 제조·판매하고 카페를 운영하는 등 어르신들에게 적합한 업종을 주요 사업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사업 수익금은 어르신 복지와 지역발전을 위해 쓸 예정이다.

의지도 강하고 생산성도 기대 이상

지역의 마을기업과 청년 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단위가 지방정부와 손잡고 어르신 일자리 제공에 나서기도 한다. 성북구의 어르신 공동작업장의 경우다.

2013년 9월 석관동에 1호점을 열면서 시작된 성북구 어르신 공동작업장은 지난해 9월 4호점까지 확장했다. 공간은 구가 제공하고 운영은 어르신 복지를 담당해온 기관이, 일자리는 기업이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공동작업장 4호점은 길음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사용빈도가 준 대동경로당을 고쳐 만들었다. ‘실버그린이’라는 명칭을 얻은 어르신 30명이 일을 하고 운영은 어르신 마을 택배 사업을 경험한 길음종합사회복지관이 맡았다. 일거리는 청년 기업 ‘밈’이 제공하는 친환경농산물 소분을 통한 한박스 사업, 이새fnc가 제공하는 쿠키를 비롯한 친환경 먹거리 제조 등이다. 성북구마을부엌협동조합, 마을기업 ‘키득키득’ 등도 일거리를 제공한다.

청년기업 ‘밈’의 이종근 대표는 “처음에는 기대가 높지 않았어요. 막상 일을 시작하니 할머니들의 의지도 높았고 생산성도 매우 높아요”라며 어르신들의 열정이 청년들에 비해 높으면 높았지 떨어지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이 대표는 성북구 공동작업장과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강서, 성동, 양천, 송파, 강동 5개 자치구로 공동작업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동작구 어르신행복주식회사 박 대표는 “어르신 일자리를 다양화하고 많이 만들려면 어르신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힘주어 말한다. 어르신 일자리를 늘리는 문제는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우리 사회 전체의 부담을 더는 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