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히의 ‘최소율 법칙’이라고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나무 물동이의 나무판 하나라도 낮으면 그것 이상으로는 물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물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 가운데 하나라도 기준 이하가 되면, 그 생물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인간 사회도 리비히의 최소율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이 치명적 질환에 걸리면 삶은 무너지고, 최소한의 기본생계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돈도 있고 건강하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누구 하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정신적 고립감을 느낀다면 그것도 사회문제를 만든다. 이것처럼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연결망의 다양한 요소가 균형 있게 작동해야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2016년 서울 서베이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사회적 연결망에 결핍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베이는 서울 시민의 사회적 연결망을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그리고 경제적 상황 등과 관련한 연결망으로 측정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서울 시민 중에 몸이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20.4%였고, 낙심, 우울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25.4%였다. 아울러 서울 시민 중에 금전적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받을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39.2%였다.
서울 시민 중에는 사회적 연결망 세 가지 모두가 안정적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은 45.8%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54.2%는 무엇인가 결핍이 있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요소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충족되는 경우는 28.7%이고 하나만 충족되는 경우가 20.2%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들 세 가지 모두가 결핍된 경우가 5.3%나 된다. 서울 시민을 1000만 명으로 추정한다면 무려 53만 명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그리고 경제적 상황 어느 것 하나 도움줄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른바 사각지대 계층이다.
그리고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상이 부족한 계층이 20.2%이니 200만 명에 해당된다. 이른바 위험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200만 명 가까운 위험 계층을 안전하게 해주는 사회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의 탄핵 가결 이후 촛불은 지속되고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들의 열망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촛불 시민들의 열망은 그저 대통령 하나 바꾸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사회정책을 바라고 있다.
서민 생활의 기본 조건 중 부분적으로 결핍된 54.2%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함께 경제적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국민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혁신가가 탄생하기를 바란다. 이런 국민 생활을 발견하는 것이 유능한 정치인의 덕목이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전 서울연구원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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